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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12회 설화 이야기 (제1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난 눈먼 거북이 ~ 제5 은혜를 갚은 꿩 )
* 본 회에서는 우리가 사찰벽화에서 자주 접하는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벽화를 통하여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분량이 많은 관계로 2회에 나누어 게재토록 하겠습니다. 본 회에서는 제1.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난 눈먼 거북이 ~ 제5. 은혜를 갚은 꿩 편이 게재됩니다.
Ⅸ. 설화이야기
1.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난 눈먼 거북이
2. 목탁의 유래
3. 옷 속에 숨겨진 보물
4. 아버지가 주신 약
5. 은혜를 갚은 꿩
6. 선혜동자와 구리천녀
7. 섬에 버려진 형제
8. 손순의 효심
9. 불서를 전해 준 여인
10. 큰 불을 피하려다 나무넝쿨에 매달린 사람
11. 극락으로 가는 배편
12. 꽃 속에 피어난 사람들
사찰법당에는 부처님께서 경전을 통해 들려준 이야기나 전래되는 설화들을 벽화의 소재로 삼은 것이 많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모은 경전인 『자타카jātaka』에는 수 많은 설화와 비유가 등장하는데, 과거 어느 때에는 부처님께서 코끼리나 토끼로도 태어나셨고, 비둘기를 구하려고 두 눈을 보시한 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수한 설화 속에는 마치 < 이솝이야기 >나 < 그림동화 >와도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불교설화는 재미와 더불어 불자들에게 교훈이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것이 특별합니다. 각 장면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등장하시며, 보살행菩薩行으로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고 계십니다. 벽화는 설화 속 가르침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벽화를 보면 해학적인 요소 또한 많습니다. 때문에 전래되는 동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황금백조의 전생이야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고, 용왕의 꾐에서 자신의 염통을 지켜낸 원숭이이야기는 별주부전으로 거듭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불전문학을 뛰어 넘어 오랜 시간 세계 각국의 문화에 영향을 주며 전해지는 불교설화인 까닭에 그림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입니다.
수 많은 설화가 전해집니다. 짧은 시간 많은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벽화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또한 부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고 계신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1.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난 눈 먼 거북이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성毗舍離城에 있는 미후獼猴 연못가 2층 강당에 계실 때였습니다. 하루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 온 어떤 눈 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은 백 년에 한 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한 가운데에는 구멍이 하나 뚫린 나무가 떠돌아 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마침 눈 먼 거북이 백 년에 한 번 머리를 내밀 때가 되었는데, 과연 거북이 머리를 내밀었을 때 그 나무의 구멍과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 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이렇게 네 방향을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눈 먼 거북과 뜬 나무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중생이 육도를 윤회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랴.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이치를 따르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 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랴." ☞ 『잡아함경』 「맹구경盲龜經」
범부중생은 육도를 윤회합니다. 육도는 위로는 천상天上, 아래로는 수라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을 지은 바 업에 따라 태어나는 세상입니다. 그 가운데,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하여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인간의 몸을 받고 게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다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이라는 속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도六道輪廻圖 / 육도六道는 삶의 업業에 따라 사후에 환생하게 되는 6갈래길로 천상계, 인간계, 수라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 6개의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천수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意 부처님의 심히 깊고 미묘한 법문은 백천만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것인데, 내 이제 보고 듣고 얻어서 닦아 지니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부처님이시여. 진실한 가르침을 깨우치기를 바라옵니다."
눈먼 거북이 숨을 쉬기 위해 백년에 한 번 물위에 올라오는 일 자체가 희귀한데, 마침 구멍 뚫린 나무가 떠다니다가 물위로 올라오는 찰나의 거북머리가 그 구멍 속으로 쏙하니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입니다. 하지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부처님의 법문을 배우는 일은 더욱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결코 게으름을 피울 겨를이 없습니다. 항상 법다운 행동으로 바르고 선하게 노력하여, 공덕이 되는 행동을 닦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 불가에서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한다. 인간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날 때 인간의 몸을 받을 확률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밑을 헤엄치다가 숨을 쉬기 위해서 100년에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오는데 우연히 그곳을 떠다니던 나무판자에 뚫린 구멍에 목이 낄 확률보다 더 작다는 말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기가 더 쉽다. 수미산 정상에서 겨자씨 한 알을 던지고 이어서 바늘을 던져 겨자씨에 바늘이 꽂히는 확률이나 갠지스강 모래알 중 한 톨이 우리 손톱에 오르는 확률도 비교가 안 된다. 모든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우연의 일치. 이 우연의 일치가 수천만 번 반복 되어야 한 생명이 만들어지는 역겁난우(歷劫難遇 : 수없는 세월동안 우연히 만나기 어렵다는 뜻)의 존재다
2. 목탁의 유래
옛날 어느 덕 높은 스님이 있었는데, 스님의 문하에는 몇 분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제멋대로 계율에 어긋난 속된 생활만 일삼다가 그만 몹쓸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죽은 뒤 그 제자는 물고기 몸을 받아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등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자라면서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등 위에 나무가 달린 물고기가 배를 가로 막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에 스승이 선정의 힘으로 물고기의 전생을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일전에 병으로 죽은 제자가 수행자의 몸가짐이 바르지 못했던 과보로 물고기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승은 이를 가엾게 생각하여 수륙제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을 벗도록 천도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스승의 꿈에 옛 제자가 나타나 스승의 큰 은혜를 감사하며 이렇게 말씀을 올렸습니다.
"스승님, 제 등에 있는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법당 옆 마루에 걸어두고 때 마다 쳐 주십시오. 그 소리를 듣는 스님들은 저를 교훈삼아 수행에 더욱 정진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불전사물 가운데 하나인 목어木魚가 만들어 졌습니다. 물고기는 눈을 뜬 채 잠을 잡니다. 이처럼 모든 수행자들이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수행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불전사물은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말합니다. 부처님께 예불을 올릴 때 항상 불전사물을 먼저 울리게 됩니다. 물고기 형상의 목어를 통해 수중의 중생을, 구름모양의 운판을 울려 허공의 여러 중생들을, 땅 위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법고의 북소리를 울립니다. 그리고 지옥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범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불전사물이 갖는 의미는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온 우주의 모든 중생이 고통을 벗어나고 다 함께 성불로 나아가자는 염원이 담긴 자비의 울림인 것입니다.
3. 옷 속에 숨겨진 보물
친구의 옷 속에 보석을 넣어주다 (단양 구인사) (좌) /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 소백산 구인사 대조사전大祖師殿 (우)천태종 법맥을 중창하신 상월원각대조사님을 모신 곳이다
옛날에 가난한 한 사람이 부자 친구 집에서 환대한 저녁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은 후 몰려든 포만감에 그민 깊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마침 급한 용무가 생긴 부자는 외출하면서, 자신을 찾아 온 가난한 친구를 위해 앞으로 먹고 살만큼 넉넉한 보물을 쥐어 주었습니다.
'이보게나. 자네가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안타깝네. 그래서 이 보물을 줄 터이니 돈으로 바꿔 유용하게 쓰시게. 가정도 꾸리고 자식도 많이 낳아서 행복하게 살게나.'
그렇게 잠든 친구의 속주머니에 넣어 주며, 행여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잘 꿰매어 주고는 용무때문에 급히 외출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가난한 친구가 눈을 떠 보니 친구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대접을 잘 받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
이 사람은 주머니 속에 친구가 보물을 넣어둔 것도 까맣게 모르고 다시 전과 같이 궁색한 몰골로 떠돌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두 친구는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준 큰 돈은 어쩌고 예전 모습 그대로인 가난한 친구의 행색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며, 그 친구의 옷을 살펴보니 자기가 넣어준 보물이 그냥 그대로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법화칠유(法華七喩 :법화경에서 설하는 일곱 가지 비유) 가운데 옷 속 보물이라는 뜻의 의주유衣珠喩로 불리며, 중생이 부처님의 성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낸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옷 속에 보물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생들은 이미 제 마음속에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으나, 깨닫지 못하고 또 꺼내어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마치 옷 속에 있는 보배을 모르고 빈궁한 생활을 하는 가난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4. 아버지가 주신 약
옛날에 어떤 명의가 있었는데, 집안에는 여러 가지 약초들과 진귀한 명약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자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집에 있던 자식들이 약을 잘못 먹고 그만 중독되고 말았습니다. 외출을 다녀 온 아버지가 집안을 보니 아이들이 심하게 앓으며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급히 해독약을 지어서 먹이려 하였지만, 이미 약을 먹고 중독이 된 아이들은 마음속에 약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선뜻 아버지가 지어준 해독약조차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묘수가 떠 올랐습니다. 일단 약을 병에 잘 담아둔 다음, '해독제'라고 크게 적고 '몸에 좋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됨'이라고 유의사항까지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그렇게 눈에 잘 띄는곳에 놓아두고는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아이들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합니다.
"아이고, 너희 아버지가 집을 나왔다가 그만 변고를 당했구나. 이를 어쩌면 좋으냐 ..."
이렇게 자식들에게 자신이 죽었다고 거짓으로 소식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그제야 비로소 정신이 차리게 되었습니다.이제 우리의 병은 누가 고쳐줄지 걱정이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일전에 아버지가 지어놓은 명약이 떠 올랐습니다. 형제들은 이제 앞 다퉈 그 약을 먹게 되었고, 병은 말끔히 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자식들의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의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방편方便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법화경』에 나오는 의사의 비유라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부처님이 항상 머물러 있어 멸하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싫증내고 게으른 마음을 품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않고,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방편으로 열반에 든다." ☞ <여래수량품>
사람들은 흔하면 소중하다는 생각을 미처 안 하게 됩니다.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신 것은, 결국 우리 중생들이 정신차려 수행하도록 방편을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익히고 실천한다면, 마치 약을 먹고 병이 낫게 되면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결국 부처님께서도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5. 은혜를 갚은 꿩
강원도 원주에 있는 치악산은 뱀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옛날 치악산에는 상원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서 수행하던 한 스님이 어느 날 법당 뒤로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큰 구렁이 한 마리를 목격했습니다.
구렁이는 독기를 뿜으며 꿩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스님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구렁이를 건드려 쫒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구렁이한테 놀라 날지도 못하는 꿩을 보듬어 멀리 날아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스님이 홀로 참선을 하는 방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것입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거기에 백발의 한 노인이 서 있는 것입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야심한 밤에 길을 잃으셨나 보군요."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오. 배가 고파서 들어 온 것 뿐이오."
"그럼 내 공양을 좀 준비해 드리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스님이 후원으로 나가려 하자, 노인이 팔을 제지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밥을 먹지 못하오. 살아 있는 것을 먹소. 죽은 고기도 안 먹소."
노인의 말에 스님이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죽은 고기와 밥을 드시지 않고, 산고기만 드신다니요."
"나는 구렁이올시다. 오늘 낮에 꿩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 했는데, 스님이 방해를 해서 놓쳐버리고 이제껏 굶었소. 그러니 대신 스님을 잡아먹어야겠소."
"아니 노인장께서 구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잡아먹는 것은 나중이고, 우선 노인장이 어째서 구렁이인지 그 사연이나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정색하던 노인이 이윽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전생에 이곳 상원사에서 주지로 있었소. 한 때, 불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범종을 만들기로 했소. 시주들에게 화주를 했지요. 그렇게해서 꽤나 많은 불사금이 모였소. 그런데 나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쓰고 범종 만드는데는 조금밖에 쓰질 않았소.
그랬더니 종소리가 영 나질 않게 되었소. 난 그런 죄로 그만 죽어서는 구렁이의 몸으로 태어나고 말았소이다. 나의 죄업은 한 없이 크다는 것을 알았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구렁이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니 산고기를 잡아먹어야만 하오."
"듣고 보니 참 딱하십니다. 내가 먹이를 뺏은 것은 잘못한 일이니 한 번 만 봐 주십시오."
그러나 노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 일은 그 일이고 지금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스님이 애원하며 매달리자, 노인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대한불교 천태종 치악산 성문사 / 강원도 원주시 소재
"좋습니다. 스님께서 정 그러하다면 내게 한 가지 제안이 있소. 이 상원사 법당 뒤에 가면 내가 전생에 잘못 주조하여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이 있소. 만일 내일 새벽까지 그 종을 울려 소리를 나게 하면, 나는 구렁이의 몸을 벗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가 있소. 그때는 나도 열심히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겠소이다."
과연 법당 뒤에는 종이 높다랗게 달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워낙 높은 곳에 달려 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종을 울릴 수가 없는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높은 곳에 달아맨 범종이기에 이 절에 그토록 오래 있으면서도 그런 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것입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선방으로 돌아와 새벽이 되기까지 마지막으로 수행이나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노인도 옆에서 새벽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침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노인이 구렁이로 변하여 스님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바로 그때 밖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스님이 듣기에 그처럼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종소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스님을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는 다시 노인으로 변하여 스님에게 큰 절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내, 저 종소리를 듣고 구렁이 몸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날이 밝거든 나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해 주십시오. 나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내 몸은 남쪽 처마 아래 땅 속에 있습니다."
노인은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날이 밝자 스님은 종이 달려있는 법당 뒤로 가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두 마리 꿩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지난날 구해 준 그 녀석들이었습니다. 꿩은 자기의 생명을 살려 준 은혜를 목숨을 바쳐 갚은 것입니다.
"미물이라도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저 꿩만도 못할 것이랴. 참으로 장한 일이로다."
스님은 꿩을 거두어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 주었고, 노인이 일러준 것처럼 남쪽 처마 아래 땅을 파 죽은 구렁이 한 마리도 잘 거두어 화장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산 이름을 '꿩 치雉'자와 '큰산 악嶽'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출처] <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12회|작성자 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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