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벗
박오은
그를 떠나 보냈다.
그냥 휴지통에 휙 버릴 순 없었다. 나와 함께한 세월이 얼만데 그 추억을 함부로 던져 버릴 순 없었다. 자신이 애용하던 소지품도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혹은 유행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거나 잊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내 곁에서 맛있는 찌개도 야채볶음도 하려면 그를 거쳐야 했고 언제나 나를 도와 식탁을 꾸미곤 했다. 그간 우리 가족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위해 몸을 바쳤고 아이의 이유식을 만드느라 몸을 사리지 않았다. 시부모님께서 처음 우리 집을 방문하셨을 때 고기를 썰고 야채를 다듬어 상을 차려 드렸다. 모든 것이 어설퍼 손을 베일 뻔 하기도 하고 썰어 놓은 야채 크기가 제각각 이었지만 어머님은 그래도 잘했노라고, 어려운 공부도 했는데 그깟 살림 못하겠느냐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또한 콩나물 국에 간장을 넣고 간을 하여 시커먼 국을 식탁에 올렸지만 남편은 그래도 국물이 시원하다며 나의 민망함을 덜어 주었다. 그 때 두부를 썬 것도, 며칠 전 두부를 마지막으로 썬 것도 그다.
그 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오래 전에 명동의 신세계백화점에 갔을 때이다. 내가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주방코너를 기웃거리다가 첫눈에 뜨인 게 그다. 그땐 아주 쉽게 골랐다. 명품은 아니었지만 날이 날렵하고 크기도 손잡이도 자그마하고 편해서 그 때로선 고가高價를 지불하고 나에게 온 것이 지금까지 주방에서 친구같이 지냈다. 그 말고도 용도에 맞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유독 그만이 나를 편하게 해 주어 함께한 지 한 세대가 지났으니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손잡이에 머리카락 같은 금이 생겼고 그를 대할 때마다 둔탁함이 느껴졌다. 날이 둔하면 날렵한 행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를 사용하며 지금까지 크게 다친 적은 없다. 내가 조심하기도 했지만 주방에서 둘이 만나면 자르고 잘리는 리듬의 조율이 잘 이루어졌고 서로 동지의식 같은 게 느껴져서 인지 그가 오히려 나를 배려해준 느낌이다.
그간 정이 들었지만 이젠 그와 작별하고 새 친구를 맞이하려 한다. 어떤 것을 살까 인터넷을 체크한다. 이곳은 외국이기에 독일산 프랑스산 그리고 일본산을 눈 여겨 보았다. 그 중에서 헨켈, 우스토부, 기셀 …… 독일산이 견고하고 모양도 무난하다고 장황하게 댓 글이 달려 있다. 식당에서 낯선 음식을 주문할 때도 설명이 긴 것이 맛있어 보인다. 백화점으로 향했다. 내가 생각한 것만큼 다양하진 않지만 보통 것에서 최고급에 이르기까지 모양새는 그런대로 갖추어져 있었다. 고급스러운 것은 진열장 안에 비스듬히 누워 있어, 보여 달라고 해야 문을 열고 대면을 시켜 준다. 마치 보석처럼 비단 옷을 입혀 안에 모셔 두었다. 16세기 영화에서나 봄직한 끝이 날렵하고 날이 곡선인 것, 고깃덩이가 뭉텅뭉텅 잘려 나갈 것 같이 머리가 크고 네모진 것, 바게트 빵을 자르기에 적당한 톱날 모양의 길쭉한 것, 사과깎기 좋게 날이 얇고 끝이 둥글어 귀여운 것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나는 음식점의 주방장도 아니고 TV에 나가는 유명 셰이퍼도 아니니 그저 평범한 것으로 고르려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크기가 적당하면 끝이 너무 뾰족하여 다칠 염려가 있고, 무게가 적당하면 손잡이가 불편하다. 내 손이 작으니 너무 크지 않고 손 힘이 그리 세지 않으니 무겁지 않고, 이왕이면 모양도 날씬하고 밉지 않으면 좋겠는데…… 그러다 세 가지 조건이 얼추 들어 맞는 것을 드디어 찾아 냈다. 날 길이는 먼저 것보다 1인치가 짧고 폭은 1인치가 넓고 무게는 40그램이 더 무겁다. 손잡이도 내 손에 꼭 들어 맞게 얄 상하다. 날에 약간의 물결 무늬도 들어 있는 게 세련된 느낌이다.
더운 물에 비누를 풀어 샤워를 시키고 말린 다음 안내서를 읽어 보았다. 고 강도에 고 품격 그리고 세련된 디자인이라며 자화자찬 일색이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독일의 자존심이다. 처음으로 무와 오이를 썰어 보았다. 사각사각 잘도 썰어진다. 날이 약간 더 무거우니 오히려 힘이 가해져 그런 것 같다. 날 선 친구를 당분간 조심해야겠다. 그 동안 무디다고 면박만 주었던 예전의 그가 이젠 필요 없어졌다. 어제까지도 주방의 터줏대감처럼 의젓하게 놓여 있던 것이 오늘부터는 쓸모 없는 퇴물이 되어 버렸다. 마음이 참 간사하기도 하지.
이젠 정말 그와 헤어져야 한다. 날카로운 날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두꺼운 종이로 싸고 전체를 한 번 더 싸서 끈으로 묶기까지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바늘이나 유리조각을 버리실 때는 헝겊이나 신문지에 싸서 끈으로 묶어 버리시곤 했다. 혹시라도 수거하는 사람이 다칠까 봐 남을 위한 배려라고 하셨다. 나도 어머니께서 하시듯 그대로 했다. 마치 고인이 된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띠로 묶어 고정시키고 관에 넣어 장례를 치르듯……
간혹 사물에도 인격을 부여하고 싶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30여 년간 사용한 주방용 칼을 애틋한 마음으로 그렇게 떠나 보냈다. (2013.10.문학의 강)
첫댓글 오랜 세월 함께 한 벗과 작별을 하셨군요
서운하고 아쉽겠지만 그의 명이 다함이니
이제 새로운 벗과 잘 지내보셔요^^
세상 그 어떤 사물이든 사람이든
서로 만나 관계되어 지면
한몸처럼 여기는 맘이 있어야 함은
저 역시도 마찬가지랍니다^^
30년, 짧은 세월이 아니죠. 이십삼 년 된 가디건 입고 댓글 달면서 저도 덩달아 서운해 합니다.TT;
왠지 이 수필을 읽으면서 소교님의 사람대하는 태도가 떠오릅니다. 살갑고 다정하면서 조심스러우시죠...^^
(낡아진 물건은 바꿀 수 있으나 우리몸은 하나뿐이니 열심히 운동합시다! ㅎㅎ)
서글픈 이별은 아니네요...새로운 것을 맞이 하셨으니 정감있게 잘 쓰시고 애정어린 지난 그는 이제 잊어버리세요 ㅋㅋㅋ
너무 매몰차나요?? ㅎㅎㅎ
길들어진 것을 떠나 보내는 마음 그걸 두고 시원 섭섭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새 벗을 들였으니좋은 시간을 보내시길.....ㅎㅎㅎㅎ
소교님의 섬세하고 사려 깊은 심성을 흠뻑 느끼게하는 글을 읽으며 저도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이제는 과감하게 작별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합니다.
그리고 미용사로써 새로운 가위를 살때 마다 저도 똑같은 심정이됩니다. 손에 익숙한 오래된 가위는 무뒤어도 일심동체인데 새것은 도도하니 저를 섬기게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참 잘 쓰시네요. 문장호응도 좋고 내용도 좋고---더운 물에 샤워를 시켜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네요.
남을 배려하여 염하듯 포장을 한다는 내용도 좋았습니다.
사물에도 인격을 부여하고 싶은 마음이 ~~
추억을 함께 버리는 듯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답니다.
이영춘 선생님, 달개비꽃님, 라일락님, 기숙님, 미현님, 장의순님, 진달래님 ~~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부모님께 올곧은 교육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어릴때 교육이 중요하고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생긴 거겠죠. 잔잔한 감동을 주는 소교님의 애틋한 글 잘 읽었어요.
교육자 집안 아니랄까봐 소소한 것까지도 부모님께 교육을 받았답니다.
산까치님, 들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교님~~~이제야 소교님글을 읽어보았네요....음...깜짝 놀랏어요...
첨에 의인화 시킨것과 문장이 넘 깔끔 세련요~~~얼마나 많은 퇴고를 하셨는지 짐작이 가고요..내요도 좋으네요...저도 20대 자취할때 쓰던 칼을 여기서도 계속 사용하고잇어요.무디어서 크게 손다칠일도 없고...정들어서 못버리고 델꼬 살아요...
ㅋㅋ그리고 깜짝놀란것 한가지...
요새쓴 글 제목에 안녕,...을 넣었는데...소교님꺼 컨닝한것처럼 돼버렷네요^^
어쩌죠~~~
남편, 아이들 캐어하고 ~~
그동안 많이 바빴지요??
물건을 휙휙 버리지 못하는 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지요. 뭐 ~~ ㅎㅎ
지난주 U 레이디 경향(11/30.2013)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