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왜 없겠는가마는 이번처럼 희한한 사건이 생기기는 처음이다.
예전에는 혼자, 또는 작가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지만, 나이 들면서 주로 남편과 같이 다니게 되었다.
내 남편은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억지로 꼬셔서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비행기 타기가 싫다며 절대 안 가겠다고 선언을 해버려서,
여행파트너로 가장 편한 동생과 함께 다니기로 했다.
우리 둘은 그동안 부모님때문에 힘들었으니 가서 바람 좀 쐬고 오자는데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이었다.
하나투어에 예약을 하고, 동생이 허리가 좋지 않아 큰맘먹고 비지니스석을 예약했다.
아시아나 비지니스석, 역시 좋긴 좋았다.
나이 들면서 비행기 안에서 절대 잠을 못잤는데, 좌석을 쭈욱 눕히니 침대가 되어서 숙면을 취하니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캐리어 분실 사건>
첫날은 시드니에서 호주 콴타스 항공으로 갈아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로 가는 여정이었다.
오클랜드공항에 내렸는데 우리 팀에 어떤 분의 캐리어가 분실됐다고 한다.
우리 팀은 모두 13명, 단촐해서 좋았지만 인솔자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여자분은(50대 초반 부부) 뉴질랜드에 있는 3일 내내 굉장히 고통 속에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보험에서 필요한 필수품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모처럼의 여행인데 필요한 물품이 없으니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말이다.
뉴질랜드 일정을 마치고 호주 시드니로 왔는데 이번에는 우리 팀의 두 사람 짐이 또 안 나온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내 동생!
이제 공항 안에서 우왕좌왕, 인솔자가 없으니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난리가 났다.
어쩌면 팀원 중에서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날 보고 해결하란다.
3일동안 짤막영어를 하고 다녔던 것이 그들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공항 직원을 찾아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급한 게 없다는 사실!
어쨌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처음 잃어버린 분의 짐은 공항 안 분실물 센터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동생을 포함한 다른 분의 짐은 오클랜드에서 착오로 싣지 않았다 한다.
기가 막혔지만, 다음 비행기로 보내준다 하니 호텔로 배송해 주는 걸로 일단락 되었다.
<싸움>
보안을 마치고 출구를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말하자면 욱하는 성질이 있는 한국남자들- 여행사에 불만을 터뜨리고, 현지 가이드에게 항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현지가이드 역시 욱하는 성질이 있는 한국남자라는 게 문제였다.
그게 내 책임이냐며 같이 싸울 기세였다. 그 가이드는 모 방송 <뭉쳐야 뜬다, 호주편>에 나온 사람이라나. 그러면 좀더 겸손해야지, 암튼 밥맛은 밥맛이었다.
겨우 무마를 시켜(우리 팀에서 내가 가장 연장자였다!) 여행일정을 시작했는데 호텔로 보내주겠다던 짐이 한밤중이 되어도 감감소식이었다.
무릎관절이 아픈 동생은 약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었고, 마침내 당장 공항으로 가서 찾아보자며 울며 보채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중교통이 그리 편하지 않는 나라에서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가면 요금이 엄청나고 한밤중에 공항에 직원들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할 수 없이 다시 가이드를 불러 부탁을 하는 과정에서 또 울그락불그락!
마음이 틀어질대로 틀어진 가이드는 나 몰라라 식이었다. 나쁜 x!
또 다시 내가 중재에 나섰고, 현지가이드가 여기저기 전화를 해보더니 마침 공항에 나가 있는 다른 가이드에게 찾아보라며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분실물에 보관되어 있는 캐리어를 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진국이라던 호주와 뉴질랜드. 참 이해가 불가했지만 만사에 느긋한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누가 탓하랴!
<더해진 악재!>
호주 여행 2일째!
밤늦게 호텔에 도착해서 나의 캐리어를 여는데, 잠금장치가 말썽을 부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픈 어머니를 두고 자식이 즐겁게 해외여행을 즐겨서 하나님이 벌 주시는 거 아니야? 할 정도로.
그 속에 혈압약도 있고, 피부염에 대한 한약도 있는데..... .
갖은 방법을 생각해보다 포크를 이용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러나 밤 12시가 가까웠으니 레스토랑은 문을 닫았을 테고 어디서 포크를 구하나?
몰래 레스토랑에 들어가 포크와 나이프를 훔쳐?
만일 들킨다면 어떤 핑계를 댈까?
머릿속으로 만약을 대비해 영어로 할 말을 준비해놨다.
그러나 천만다행인지,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방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바로 맞은편 룸에서 룸서비스인 듯한 음식 쟁반이 쏘옥 나오지 않는가!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얼른 포크와 나이프를 훔쳐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한참을 씨름 끝에 잠금장치를 열었다. 잠금장치는 망가졌으나 어쨌든 열긴 열었다.
<왕창 뒤집어 쓴 바가지>
나는 팔랑귀여서 물건을 잘 사는 편이다. 남편과 같이 다닐 때는 남편이 제지하는 바람에 맘껏 물건을 사지 못했다.
남편이 없는 지금, 적기가 아닌가!
특히 우리 나이 때는 건강식품에 눈이 갈 때다.
마침 호주와 뉴질랜드는 청정국가로 나를 현혹시키는 건강식품이 무궁무진했다.
남편과 나를 위해 건강보조약품을, 또 팔랑귀를 제지하지 못한 채 덜컥 구입한 몇 십만원짜리 알파카 이불까지!
카드로 북북 긁으며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을 했던 동생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언니! 호주 뉴질랜드 바가지로 소문났어. 우리 왕창 바가지 썼어. 건강식품도 바가지에 품질까지 보증못한대."
그러면서 웬 카페 하나를 알려줬다.
들어가보니 온통 난리도 아니었다. 한국사람이 파는 약품이나 물건들은 죄다 바가지고,, 가짜식품에 가짜 약품이란다.
세상에! 같이 여행했던 팀들에게 단톡을 날리고, 여행사에 항의하고 몽땅 취소하는 해프닝을 만들고 말았다.
호주와 뉴질랜드, 중국
이 나라들에 사는 교민들의 바가지와 속임수는 이미 정평이 나있으니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 그곳 여행을 간다면 현지 슈퍼나 약국에서 물건을 사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