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인문학>-빨강(레드)/미셸 파스투로가 들려주는 컬러의 비하인드 스토리
오늘은 빨강(레드)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색의 인문학>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빨강은 흐리멍덩한 색이 아니다. 소심한 파랑과 달리, 빨강은
오만하고, 야심만만하며, 권력 지향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봐 주기를 원하는 색,
다른 모든 색을 압도하고자 하는 색이다.
하지만 이런 빨강의 거만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거는 썩 영광스럽지 않았다.
빨강에는 숨겨진 면이 있는데,
'나쁜 피'를 일컬을 때처럼 '나쁜 빨강'이 그렇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빨강은 폭력과 분노, 범죄와 과오로 얼룩진,
고약한 유산이 되었다.
빨강을 조심하라. 이 색깔은 이중성을 띠고 있다.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악마의 불꽃'처럼
신중히 다뤄야 하는 색인 것이다.
위 책 37페이지
본문 내용 중 '빨강'에 대한 몇 가지 내용 소개
빨강은 그 단독으로 모든 색을 대표하기도 한다. 영어에서 색을 의미하는 단어인 '컬러 color'의 어원이기도 하다.
고대 색 체계에서는 흰색, 검은색, 빨간색이 세 개의 극을 이루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사회적 규칙이 만들어졌다. 흰색은 염색 없이 깨끗하고 순수한 것을, 검은색은 염색되지 않았으나 지저분하고 염려스러운 것을 의미했다. 빨간색만이 색이었으며, 유일하게 '색'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
빨간색 염료를 만드는 기술은 오래전부터 매우 효율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런 이유로 빨강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본문에서 빨강의 양면성을 설명하는 내용이 흥미로워서 아래에 표로 정리해 보았다.
빨강 | 긍정적 해석 | 부정적 해석 |
초기 기독교가 형식화한 네 가지 강력한 상징체계 (오늘날까지도 폭넓게 쓰임) | 불의 색인 빨강: 생명을 상징 성령강림 대축일의 빨강, 성령의 빨강으로 재생의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의 기운 | 불의 색인 빨강: 죽음과 지옥을 상징. 불태우고 상처 주고 파괴하는 악마의 빨간색 |
피의 색인 빨강: 생명을 부여하고, 더러움을 정화하며, 영혼을 성스럽게 하는 빨강, 구세주의 빨강,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빨강 | 피의 색인 빨강: 더럽혀진 육체, 피의 범죄, 죄를 상징하며 성서에 언급된 금기의 더러움을 상징 |
구약성서에서 | 정신의 힘과 사랑의 징표 | 범죄와 금기의 상징 |
중세 시대 | 빛나는 빨강: 세속의 지도자 및 성직자들이 권력의 징표로 사용함(예수그리스도를 위해 자신들의 피를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의미) | 빨강은 악마를 그리는 데도 사용됨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에게 도전하는 불충한 기사를 묘사하거나 그의 마의馬衣의 문장을 나타내는 데에도 자주 사용함 |
| 19세기까지 여성의 결혼식 드레스 색깔로 남아있게 됨(당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드레스의 색이 빨간색이었음) | 오랫동안 매춘부들은 반드시 빨간색 천 조각을 몸에 걸쳐야만 했음. 사창가의 문간에는 빨간색 초롱을 달아야 했음. (육체로 지은 죄의 색) |
| 축제, 산타클로스, 사치와 공연활동 등 상징 | 혁명과 프롤레타리아 상징 |
동화 빨간모자(기호학적 관점) |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검은 옷을 입은 할머니에게 하얀 버터가 들어있는 작은 단지를 가져다줌 |
백설공주 | 백설공주는 검은 옷을 입은 마녀로부터 빨간 사과를 받음 |
여우와 까마귀 | 검은 까마귀가 하얀 치즈를 떨어뜨리자 붉은 털의 여우가 그것을 물고 달아남 |
남녀의 복식 색깔 변화 | 중세 시대에는 성모마리아의 영향으로 파랑이 여성적 이미지였고, 권력과 전쟁을 상징하는 빨강은 남성적 이미지였음 16세기 이후에는 파랑은 눈에 덜 띄는 색으로 여겨져 남성의 색이 되고, 빨강은 여성 쪽으로 이동하게 됨, 오늘날 남자아이의 색으로 파랑을, 여자아이의 색으로 분홍을 선택하는 경향이 남아있음. |
기타 빨강이 상징하는 것 | 금지를 나타내는 각종 표지판, 빨간 신호등, 핫라인(긴급전화), 적신호, 레드카드, 적십자, 이탈리아의 약국 등 |
석회암 동굴 속에 그려진 들소, 에스파냐 알타미라 동굴 벽화, 목탄과 붉은 오커, B.C. 35,000-B.C.11,000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에서는 적색, 흑색, 갈색이 주요한 색이었다. 황색은 드물었고, 백색은 더 적었다. 녹색과 청색은 아예 없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붉은색 톤을 얻기 위해 철의 자연 산화물인 적철석 또는 노란 황토(불로 데워진 다음에는 붉은 황토로 바뀜)가 풍부하게 함유된 점토를 사용했다.
키스 반 동겐, <팜 파탈>, 1905, 개인 소장
빨강은 이미 중세 말에 매춘의 색이었다. 창녀들은 귀부인들과 구별되기 위해 붉은색 드레스나 스카프, 천 조각을 걸쳐야 했다. 그 이후에는 방탕한 공간에 붉은색의 깃발이나 초롱이 표식으로 붙었다. 이런 경향은 난잡한 매춘부나 팜 파탈을 붉은색으로 즐겨 묘사하는 화가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로마 예술, 즐리텐 빌라의 모자이크에 그려진 물고기, 3세기
고대의 자주색은 동지중해 연안에서 서식하는 여러 종류의 연체동물에서 액을 추출하여 만들었다. 가장 인기 있던 것은 뿔소라류의 고둥으로 그림에서 두 물고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소량의 색소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뿔소라가 필요했다. 이런 이유로 가격이 비쌌고 결국 권력을 나타내는 상징과 얽히게 된다. 염색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과정도 매우 복잡했으며 섬유에 흡수되면서 붉은색이나 청색 톤의 색조뿐만 아니라 진한 빨강에서 진한 보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다양한 색조를 만들어냈다. 그뿐 아니라 색도 계속 바뀌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기도 했다.
좌:< 불꽃 모양의 혀 아래의 성령 강림>, 전례용 시편 채색 삽화 우: 프라 안젤리코,<그리스도의 수난과 성자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발(부분)
중세 기독교는 피와 불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빨강의 상징체계를 네 개의 극으로 나누었다.(위 표 참조)
젠틸레 벨리니, <총독>, 1460-1462
유럽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이탈리아에서 빨강은 오랫동안 권력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베네치아에서는 의식을 거행할 때 총독이 진홍색 옷을 입고, 사슴뿔 모양의 진홍색 공식 총독 모자를 썼다. 옷과 모자는 연지벌레를 말려 얻은 고가의 붉은색 염료로 염색했다. 위엄과 권세의 표상이었던 진홍색은 서양 중세가 그 비법을 잃어버렸던 고대의 자주색을 상기시킨다.
아서 래컴, <빨간 모자>,1902
'빨간 모자' 이야기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졌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함 (그 중 하나는 위 표 참조)
좌: 세실리오 플라 이 가야르도, <악마의 유혹>, 잡지 [블랙 앤 화이트],1900년 7월 1일 자 표지, 파리 우: 야코벨로 알베레뇨, <요한 계시록의 전례 병풍> 왼쪽 패널, 1360-1390
좌: 19세기 발의 도판에서는 매춘부뿐만 아니라 팜 파탈과 '여자 악마'도 빨간색과 연관되어 있었다.
우: 요한계시록에는 "자주색과 진홍색 옷을 입고, 손에는 금잔을 들고,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 개 달린 짐승 위에 올라탄" 신비한 여인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 바로 바빌론의 대탕녀다. 중세 기독교와 신교의 종교 개혁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이 기묘한 여인의 이미지는 빨간색을 피하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성, 퀴리쿠스와 그 어머니 성녀 율리타의 박해 > 중 일부, 발 데 보이에 위치한 두로 지역 산트 키륵 예배당에서 가져온 제단 가리개 일부, 12세기 중반, 바르셀로나
로마네스크 예술에서 사형 집행인은 붉은 옷을 입고 있거나 붉은색으로 몸이 칠해져 있다. 이런 방식의 묘사는 오랫동안 기독교 도상 속에 남아 있게 된다. 빨강은 정의와 박해를 동시에 나타낸다.
좌: 포스터, 옛 에콜 데 보자르의 일반 작업장, 1968년 5월, 파리 우: 1968년 5월 13일 파리의 대규모 시위 현장 사진
좌: 원래 적색기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로 사용된 평화의 깃발이었으나 프랑스 혁명기인 1791년 7월 7일 상드마르스의 학살을 거치면서 그들이 흘린 피로 물든 봉기의 색, 정치적인 색으로 바뀐다. 적색기는 이런 상징 역할을 19세기와 20세기 내내 간직하게 된다. 그러면서 좌파 성향의 정당, 진보의 힘, 진행 중인 혁명 등 붉은색 계열의 다른 상징들도 탄생시킨다. 하지만 적색기는 1968년 5월 파리의 시위 현장에서 아나키스트의 상징인 검은색과 함께 '왼편'에서 휘날리게 된다.
우: 68혁명의 기수 아니엘 콩 방디가 적색기와 검은색 기 아래에서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고 있다.
좌: 아마트, 마리 오데옹 유럽 극장 포스터. 1995
우: 중화인민공화국 35주년 기념식, 1984년 10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
좌: 오랫동안 유럽 대다수 연극, 연주회, 오페라의 공간들은 내부가 붉은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의자, 벽, 모켓, 카펫, 무대의 커튼 등에서 축제와 쾌락, 과장과 장중함의 색깔인 빨강이 선택되었다. 이런 전통은 비록 예전보다 덜하긴 하지만 오늘날의 다양한 공연장에서도 발견된다.
우: 1949년부터 공산당 치하의 중국에서는 적색기가 일종의 숭배 대상이었다. 모든 종류의 기념식에서 수많은 적색기가 휘날렸다.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빨강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강렬한 의미를 지니고 색으로써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놀랍다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지금도 빨간색은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양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로.
휴~ 파랑이 평온함을 느끼게 했다면 빨강은 그 강렬함 때문에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