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산악인하면 누구나 '고상돈'을 얘기했었다.
1977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파견된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정상등정 소식이 한국에 알려지던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롭다. 방송에서는 귀국한 원정대원들의
카 퍼레이드를 보여 주었고 원정대원들은 국민적인 영웅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 중에서도 고상돈 대원은 한국 최초의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세계 7번째 등정)
그러던 고상돈 대원이 북미 최고봉 맥킨리에세 불의의 사고로
영원히 산에 묻힌 후
우리 산악계는 침체의 늪에 빠져드는 듯 했지만
故 고상돈 대원의 뜻을 이어받은 젊은 후배들이 값진 희생을 치러가며
그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히말라야와 오지탐험에 끊임없이 도전하게 된다.
그 후발 주자중 단연 으뜸은 충북 제천이 고향인 허영호 선배였다.
검은 악마의 산이라는 세계 5위봉 마칼루를 오른 후
동계 에베레스트 등정과 에베레스트 횡단등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극지로 눈을 돌려 북극점 도달, 북극해 횡단, 남극점 도달 등을 비롯하여
세계 최초로 7대륙 최고봉과 3극점에 도달한 산악인으로도 기록되었다.
현재는 기업체 강연과 등반을 병행하며 산악계에선 한발 뒤로 물러난 상태가 되었고
남극점탐험대 당시 한국산악회 회원자격으로 참가하였다가
원정경비 일부를 개인적으로 사용하여 한국산악회에서 영구제명 당하면서
그 동안 쌓아온 자신의 명성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사실상
산악계 일선에서 물러나있는 상태다.
그 뒤를 이어서 한 때 두각을 나타냈던 여러 산악인들이 있었지만
그 당시 산은 직업이 될 수 없다는 산악계의 통념으로
자신의 자리를 일상으로 되돌리고 산은 시간날 때 즐기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산악인들이 늘어나게 된다.
세계적인 흐름은 달랐다.
산악계에서는 초인 혹은 철인으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쓰너가
최초로 14좌 완등을 이루고 7대륙 최고봉 마저 다 오른 후에도
각종 저술활동과 강연회를 열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산악활동은 그 나름대로 계속하면서도 억만장자의 위치를 확고히 한다.
산악인으로 부와 명예를 이룬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인 것이다.
그런 중에도 한국의 산악인들 중에는 먹고 사는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자신의 길을 고집하는 산악인이 여럿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이들을 산악계 '빅 3' 이라고 부름) 등이다.
이들 셋은 한국 산악계를 대표한다고 말해도 이견을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얘기는 불과 3~4년 전만해도 맞지 않는 얘기였다.
히말라야 8,000m급 이상 봉우리 14개(이를 14좌라 부름)를 다 오른 산악인이
지구상에 몇 명이나 있는가.
고작해야 15명이고 그중 몇 명은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오르다가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산악강국이라는 유럽의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폴란드, 러시아, 스페인 등등
을 비롯하여 미국, 일본 등의 나라에서도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은
쉽게 배출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한국의 젊은 산악인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14좌 완등자를
3명이나 배출 했으니 세계산악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우리보다 산악역사가
50년 이상 앞섰다고 늘 자부심이 대단했던 일본의 충격은 남달랐다.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신문, 잡지, 영화 등의 매스컴을 통해
이들 빅 3의 일거수 일투족이 다뤄지면서
일반인들의 뇌리에서 고상돈, 허영호의 이름 대신
요즘은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등 빅3의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
나름대로 등반을 하면서 이들 '빅3'와 등반을 같이해 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박영석 대장과의 인연이 가장 질기고 깊다고 할 수 있다.
동국대학교 산악부 83학번인 박영석 대장은 나의 대학 산악부 1년 선배이기에
가장 가깝게 접할 수 있는 동시에 깍듯이 모셔야하는 가장 두려운 한 해 위 선배였다.
대학산악부 시절부터 국내 등반은 물론이고 해외등반에도 열심이었던 박영석 대장은
히말라야 초창기였던 80년대 중반 랑탕히말라야의 6,000m급 미답봉 랑시사리를
세계초등하면서 자신의 길고도 긴 등반역사의 장을 열어간다.
1997년 7월 한국대학산악연맹에서 파견하는 가셔브룸 1(8,068m)봉과 2봉(8,035m)의
등반대장으로 참가했던 원정대에서 박영석 대장과는 첫 등반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 후로 14좌 완등을 할 때까지 5차례의 8,000m급 원정등반을 함께 했다.
1999년 겨울 어느날,
금왕 일출산악회의 연례 겨울행사였던 '사슴잡아 피 받아먹고 고기 샤브샤브로 먹기'에
원정을 앞둔 박영석 대장과 대원들이 금왕을 방문하면서
일출산악회 회원들과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작년 4월의 일이었다. 만화가 허영만 화백께서 동아일보에 연재하는 '식객'의 소재로
돼지를 집중 취재 중이라며 목도 근처의 한 마을에 유명한 순대꾼을 취재하기 위해
내려오는 도중에 금왕에도 들린다는 전화가 왔다.
"금왕에 거 저 뭐야, 생돼지머리 취재갈거니까 준비좀 하고 있어라"
평소 이민환 회원의 생돼지머리를 좋아하던 서울의 허정 PD가 모처 술자리에서 한 얘기에
돼지집중 해부에 생돼지머리고기를 넣게된것이다.
목도 근처의 작업장소로 먼저가서 준비된 재료를 보니
대창을 누군가 손질한다는 것이 잘못 해놓은 상태라서 다시 연락이 왔다.
"혹시 금왕에서 대창 구할 수 있으면 당장 구해 올 수 없겠냐?"
이민환 회원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겨우 냉동 창자를 구해서 물에 녹이며
작업장소로 갔다.
작업이 한 창 진행중인 작업장에서 취재중인 허화백 뒤로 박영석 대장이 이민환 회원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그러다가 금왕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민환 회원은 허화백 앞에서 평소에 갈고 닦은 솜씨를 발휘하며 머리고기를 발랐다.
박영석 대장과 허영만 화백의 만남은 산이 매개체였다.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에서 만나게 된 이후로 박대장의 등반에
시간 날때마다 동행하면서 돈독한 정을 쌓게 된다.
(좌 박영석 대장, 허정 피디, 이치상 , 히말라야에서)
이민환 회원이 부위별로 자르고 다듬는 동안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는 허화백과
언제 다 되서 먹을건지를 기다리는 듯 한 표정의 박영석 대장.
생돼지머리의 핵심은 코부위인데
"야, 영석이 네가 어울릴 것 같애. 한번 갖다 대봐라"허화백의 주문에
다 손질된 고기를 부위별로 쟁반에 다듬어 놓은 것을 스케치하는 허화백.
우영이의 성가신 참견에
"고놈 참..."하면서 멀리 쫓지는 못한다.
이 사진은 어제찍은 박영석 대장의 가장 최근 사진 입니다.
내일(금) 오후 5시 비행기로 베링해협횡단을 하기 위해 출국하는데
그 발대식 겸 회식이 월곡동 영원무역 2층 식당에서 있었습니다.
그런 행사가 있는 줄 알고 간 것은 아니었는데...
남극에 같이 갔던 오희준 대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14일(수) 점심을 막 먹은 직후 였습니다.
평소 느긋하고 낙천적인 오희준 대원답지않게 심하게 말을 더듬으며
"혀 형, 아니 혀 형 있자 있잖아요. 그게 다른게 아니고..."
무슨 얘기를 할 건지 짐작가는바가 없어서 그냥 듣고 있었습니다.
"아이 참, 서 성택이 형이 연락이 않되서 그러는데,
형 그 침낭있잖아요. 포 포 폴라가드 치 침낭..."
얘기는 대충 이랬다.
베링해협횡단(러시아와 알라스카 사이의 바다를 건너는 일)에
우모는 얼어 붙으니까 얼지않는 폴라가드 소재의 침낭이 1개 필요한데
서울에 있는 성택이가 1개 가지고 있고 기꺼이 빌려 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출발 2일을 앞두고 연락이 되지않아 필요하니까 빌려달라는 얘기였다.
버스로 보내려고 했지만 급할 때 일수록 일이 꼬일것 같아
퇴근 후에 직접 가지고 가겠다고하여 올라간 것이다.
회식 장소에는 횡단대원 3명과 sbs의 신 모 국장과 촬영팀 대원,
전창 기자(동아일보), 4월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신루트 등반대원을 비롯하여
여러 선후배들이 모여 있었다.
박영석 대장은 원정 출발을 앞두고 스폰서가 지원철회를 하는 등의 악재 속에서 어렵게
원정을 꾸리려하니 스트레스가 쌓일대로 쌓여
누가 옆에서 부르기만해도 신경질적으로 돌아볼 정도 였다.
자리가 정리될 즈음
다시 금왕으로 돌아올 길이 염려되어 인사를 하고
금왕분들을 위해 폼 한 번 잡아달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얼굴에 웃음이 묻어나며
장난기 어린 여러 표정을 지어보인다.
살아올 가능성 50%의 이번 원정을 떠나는 마당에
"이번에 못 오면 영정 사진으로 쓸려고 사진 찍냐?"는 농담을 건네면서
금왕 일출산악회 최범식 고문님의 안부를 묻는다.
박영석 대장에 관해서는 할 얘기가 몇 날 몇 일을 두고 해도 모자라지 않겠지만
험한 여행 떠나는 박영석 대장의 무운장구를
일출가족들과 함께 기원하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