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중국영화 ‘ 붉은 수수밭’이다. 끝없이 펼쳐진 수수밭과 배갈을 제주하는 술도가가 배경이다. 배갈은 중국의 대표적인 술로 고량주라고도 하는 독한 술이다. 고량(高粱)은 수수의 한자이름으로 촉서(蜀黍), 당서(唐黍)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중국 고사에 ‘황량일취몽( 黃粱一炊夢)’이라는 말이 있다. 수수로 밥을 짓고 있는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즐거운 인생의 꿈을 꾸었다는 고사로, 영고성쇠의 덧없음을 비유한다. 황량은 수수를 말하는데 고사에 언급될 정도로 중국에서는 식량으로 비중이 아주 높다.
원산지는 열대아프리카로 4세기 초에 인도를 거쳐 중국에 전해졌는데 재배된 가장 오래된 곡류중 하나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그보다 훨씬 이후로 짐작하지만 재배면적이나 소비량이 매우 미미한 편이다.
수수는 잡초보다 강인하게 자라는 특성으로 재배한다기보다는 저절로 자란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곡물이다. 환경의 적응력도 강해 건조한 곳이나 척박한 곳을 가리지 않고 햇빛만 있다면 쑥쑥 키가 커서 다른 잡초는 경쟁 상대가 못된다. 수수는 알곡을 얻는 곡용수수와 사탕수수류에 속하는 당용( 糖用)수수, 비를 만드는 소경수수로 나눈다. 수숫대는 가축의 사료가 되고 알곡은 식량을 대신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재배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곡물용인 경우 껍질 잎에서 뻘건 핏빛이 배어 나오고 이삭에 붉은색이 돌때 거두면 된다. 수수에도 멥쌀성을 띠는 모수수와 찹쌀성을 가진 차수수가 있다. 모수수는 밥, 죽으로 이용되며, 동유럽에서는 이로서 만드는 비알코올성음료가 알려져 있다. 차수수는 떡이나 술, 엿 만들기, 작은 새의 먹이로도 이용되며 줄기나 잎은 사료로서 이용된다.
알곡을 떨어내고 남은 빈 이삭대는 비를 만든데 거칠어서 실내용이 아니라 부엌용으로 쓰인다. 수수 이삭대는 수수깡 공작으로 자주 활용되는 소재 중 하나였다. 별다른 놀이감이 없던 시절 칼만 있으면 수수깡안경과 집, 놀이터 등 다양한 용구를 만들 수 있어 어린이 들이 좋아하는 소재였다. 수수는 74%가 당질로 단백질 함량은 약 10% 정도 된다. 칼륨( 100g당 524㎎) 과 니아신(100g당 2.0㎎) 이 풍부한 곡류로 건강에 도움이 된다. 수확한 수수를 도정한 것을 ‘수수쌀’ 이라한다.
수수의 주성분은 전분이며 단백질의 함량도 쌀이나 보리보다 높다. 그러나 수수의 단백질은 절반 정도 밖에 소화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칼로리는 옥수수보다 높으며 지방은 훨씬 적다. 겉겨에는 비타민 B군이 많으므로 정제하지 않고 먹는 것이 좋다.
수수는 화곡류 식량작물 중에서 특이하게 탄닌을 함유하고 있어 위점막을 수축시켜 위장을 보호해주고 숙취에도 좋다. 골격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며 식욕을 증진하는데도 좋은 식품으로, 기침과 천식에도 좋다.
정월대보름의 오곡밥에는 찰수수가 찹쌀, 팥, 차조, 콩 등과 함께 필수 곡물이었다. 오곡은 다섯가지 곡물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온갖 곡식을 이른다. 수수는 쌀과 같이 밥을 지어 식용하거나 가루로 하여 떡이나 경단 등으로 이용하고, 부꾸미의 재료로도 쓰였다. 부꾸미는 찹쌀이나, 차수수, 밀가루, 녹두 등을 물에 불렸다가 갈아서 기름에 지지면서 소를 가운데 넣어 반달로 접은 떡이다.
‘돌에는 수수떡을 해야 명이 길다’ 라는 말처럼 붉은 빛의 수수떡을 해주어야 어린아이가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을 믿었다. 수수팥떡과 수수경단의 붉은색이 액(厄)을 막아 준다는 토속적인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두 사람 사이를 친하게 하기 위하여 ‘ 수수떡을 해먹어야 겠다’라는 말과 ‘ 수수팥떡이 안팎이 없다’말도 쓰였다. 경계나 구별이 없이 흐릿한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로 어른과 아이도 모른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