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고 미음을 먹이란다.
젖을 땐후 이유식을 잘 해 먹여야 하는데,
위로 이복 형이 4살 누이가 7세 연년생 8세 짜리가
세 명이나 있으니 넉넉지 않은 살림의 어린 아기 라고
이유식을 따로 해 먹일 수가 없어서 큰 것 들 먹는대로
그냥 같이 먹였더니 잘못 된 것이다.
나는 아이를 없고 집에 와서 보리차를 끓이고
미음을 쑤어서 약과 함게 먹였다.
그런데 큰 것들도 이 것이 별식인줄 알고 미음을 먹겠단다.
지금처럼 연료나 깨스불을 쓰는 것도 아니고 연탄 난로
하나로 모든 취사를 해 먹고 사는 때인데,
겨울 같으면 방마다 불을 때야 하니까 불을 넉넉히 쓰지만
5월이니 방안에 난방이 필요 없는 때니까 취사용
난로 하나에다가 어른들 먹을 취사를 해야하고
아기 미음쑤고 보리차 끓이고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였다.그런데 글세 이아이들이
보리차를 큰 주전자로
하나를 끌여 놓으면 무슨 음료수나 되는 것 처럼 들락날락
세 놈이 다 먹어 버린다.
밥을 먹고도 아기 미음을 끓여 노은 것을 먹어 버린다.
거기다가 중2짜리 막내 시누도 보리차를 때 없이
먹어 버린다. 그 때는 수도물도 그냥 받아 먹던 때라서
전염병이나 돌아야 끓여먹었지 그냥 수도에서 받아 먹어도
아무렇지 않던 시대다. 지금 생각하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유를 딱 돌만에 끊고 밥을 먹이는데 왜
나라고 이유식을 해서 먹이고 싶지 않았겠나만도,
아기가 아파서 보리차를 끓여서 먹여야 하고 미음을
먹여야 하는데도 중 이짜리도 이런 모양인데.
아기를 이유식을 해 먹일 수가 없는 형편이라서
그냥 큰 것들 먹는대로 둔 것이 화근이었다.
내 나이 29세의 세명의 전처소생의 아이들의 엄마에다가
시 할머니 홀 시어머니 시누이 大多 식구들의 빨래도 세탁기가
없는 시대니 다 손 빨래를 해 입어야 했고,
아기 기저귀도 일회용이 없던 시대라
다 소창 기저귀를 사용했으니 설사를 하는
기저귀 삶아서 빨아야 하고,
나는 일에 뭍혀서 헤여 날수가 없는 형편이 었다.
그런데, 보리차를 끓여서 시켜 놓기만 하면 큰 것 들이 다
먹어 버려서 아기 약을 먹인다든지 물을 먹이려면
보리차가 없다.
그런데 일주일을 병원엘 다녀도 아기가 차도가 없다.
시어머니께서 아기가 그냥 설사가 아니고,
복학이 걸려서 그런 것 같으니 독립문이 있는
서대문 영천에 청대문 집 복학 전문 집으로,
가 보라는 것이었다.
이 미련한 나는 아기를 없고 그 집으로 갔다.
얼마나 미련 한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모두 설사를 하는 아기들을 없고 왔다.
내 차례가 되어서 아기를 진단을 하는데,
복학이라고 손바닥을 째고 무슨 익자를 비지 같은 것을
꺼내고 소독을 하고 붕대를 감아 준다.
일주 동안을 물이 다으면 안된단다.
그렇게 했지만 소용이 없다.
참말로 미개한 짓이었다.
만약에 그 손에 세균이 들었더라면 어린 것이 파상풍이
걸리지않았을까? 지금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그래도 파상풍 걸려서 죽었다는 소리를 못 들었다.
정말로 미개한 짓이 아닌가 싶다.
아이는 점점 수척 해가고 병은 차도가 없고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다녀도 소용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 불광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아이가 설사를 한지가 한 달이 넘었다.
아이는 죽을 것 같았다.
이제는 곡기를 통 안 먹으려고 한다.
빈 속에 약을 먹일 수도 없고 보리차로
입을 적시는 정도다.
나는 애가 타서 죽을 것 같았다.
불광동의 모자의원으로 아기를 없고 같더니
의사 양반이 곡기는 먹이지 말고 보리차를 아주 진하게
끓여서 약을 먹이란다.
그런데 보리차도 제 때로 먹이기가 힘들었다.
큰애들이 다 먹어 버려서 냉장고가 없던 시대다.
그러니 더운 염천에 펄펄 끓는 보리차를 식히는 것도
어려운 시대다. 그런데 이 큰 애들이 아기 약 먹일 물은
남겨 놓아야 한다고 해도 馬耳東風이다.
그러니 나는 너무 힘이 들어서 나 또한 심신이 다
지쳐서 죽을 지경이다.
정말로 나는 좋은 새 엄마가 되고자 해도 상대방이
알아 주지 않으면 아무리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 때사 알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살아갈 가치를 느겨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려운 가운데서도 병원엘 다녀서 오는데
뒤에서 할머니 한 분이 따라오면서 애기 엄마
그 애가 설사를 하는 모양이구먼 하신다.
나는 할머니 어떻게 아세요?하고 물었더니
내가 보면 다 알지 병원 말만 믿었다가는 애 잡지?
애기 엄마 집이 어딘지 어서 도로내려가서
닭을 한 마리 사다가 폭 과서 그 국물에다가
찹쌀을 넣고 죽을 쒀서 먹여요 하신다.
나는 할머니는 어디 사세요?
하고 물었더니 나는 절라도 사는데, 독박 골에
아들이 살아서 거기를 가는데,
내가 오늘 도로 집으로 가야 하는구만 하신다.
나도 독박골 살아요 같이 가세요 했다.
이 할머니가 아니 돌아가서 닭을 사다가
닭죽을 쒀서 먹이라니까 말 안 듣는구만 하신다.
그런데 나는 닭을 살 형편이 안 된다.
간신이 병원비 마련해서 병워 다녀 오는데?
닭을 살 돈이없다.
그런데 이 할머니가 바로 우리 옆집의
시어머니었다.
집으로 가다가 보니까 그집이 아들집이란다.
나는 의사 말대로 보리 차만 진하게 끓여서
약을 먹일 생각만 했다.
의사가 그래야 설사가 멎고 애가 산다고 했으니까
의사 말만 믿고 처음 보는 할머니 말은 의심만 들었다.
이 할머니가 우리 집으로 오시더니
아기 엄마 이 애를 살리고 싶으면
내 말대로 닭죽을 쑤어서 먹여야지 그렇찮으면
이 아는 며칠 못 가네 내가 여기서 자고 가도 되면
내가 해서 먹이고 갈 것인데 내가 지금 바로
내려가야 하니까 못 해 먹이는구만
하시면서 병원 의사는 보리차만 먹이라고 하지만 안되요,
설사를 오래 해서 창자가 다 말라버려서 이럴때는
약도 안 받아요 그러니 내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해야
아기를 살리지 그렇찮으면 아기는 죽는단다.
나는 할머니에게 자세하게 물었다.
닭을 사다가 오지 항아리에다가 담아서
주발 뚜껑을 재켜 덮고 중탕을 하면 닭에서
기름이 쪽 빠진단다.
아마도 큰 닭을 사 오면 기름이 한 주발은 날 것이여
어른 같으면 그냥 닭죽을 쑤어서 먹이면 되는데 야는 어리고
아주 병이 중하니까 그러지 말고 닭 기름을 내서
그 국물에다가 찹쌀 죽을 끓여서 먹이란다.
닭을 중탕을 하는 동안에 찹쌀로 죽을 먼저 쑤다가
닭 기름이 다 빠지면 그 국물을 죽에다가 넣고
한번 우루륵 끓여서 먹이면 된단다.
할머니가 거듭 부탁을 하고 가셨다.
그런데 그 닭을 살 형편이 안 되었다.
너무도 가슴아프고 챙피해서 그 닭을 사온
이유는 내가 차마 기록을 할 수가 없다.
이틀 동안 생각의 생각을 하여서
닭을 살 수가 있게 되었다.
그 전에 나는 그 아이의 똥도 맛을 보았다.
죽을 사람의 똥은 달고 살 사람의 똥은 구리단다.
그래서 이미 똥을 맛을 보았더니 똥은 똥이지
달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닭을 살 일을 만들어서 닭을 사다가
할머니가 시킨대로 작은 오지 항아리에 넣고
큰 솥에다가 중탕으로 4시간을 끓였다.
항아리속에 닭 기름이
뽀얗게 울어나고 닭은 쪼그라 들어있다.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대로 그 죽을 쑤어서
아기에게 먹여 야 되는데, 큰 애들에게 같이 먹여야
하는데,그럴수가 없어서 내 마음이 너무도 아펐다.
그 때 시 할머니와 시어머니는 시골 시 삼촌 댁에
가시고 안 계실 때다.
시누이는 서울에 학교를 갔으니 늦게 올 것이고
양 어머니가 아랫 동리에 사시는데,
내가 가서 부탁을 드렸다. 나의 양 어머니 막내딸이
우리 큰 딸과 동갑이고 한 학 년이다.
내가 그 집에서 전세를 살을 때 이 아들을 낳았다.
그 어머니가 스스로 나의 양 어머니가 되어 주겠다고,
하셔서 양 어머니가 되신 분이다.
그분이 불광 동으로 이사를 가셔서 나도
그 분의 말씀으로 그 집을 사 가지고 가서 살게 되었다.
시장에 가기 전에 내려가서 그 막내딸에게 내가 사정 이야기를
다 하고, 내일 학교 끝나거든 네가 우리 애들 둘다 데리고
너희 집에와서 숙제도 하고 놀다가 오후에 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양 어머니가 들으시고는 빌어 먹을 팔자 어쩌다가 네가
그런 집에 와서 이 고생이냐?
하시 면서 내일 네가 닭사러 갈 때 근 놈을 데리고
와서 우리 집에 놓고 닭을 사가지고 가서 해서 아기에게
먹일 때 까지 내가 너희 애들 세 명을 봐 줄 것이니
걱정 말고 아기 약을 해서 먹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 다음 날 그렇게 했다.
닭 죽을 아기에게 먹이니 아주 쨥쨥
입 맛을 다시며 잘 받아 먹었다.
저녁까지 두번을 먹였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들어가면 직통으로 싸 버리던 것이
닭죽을 두번이나 먹였어도 설사를 안 한다.
큰 애들은 그 집에서 저녁 밥까지 먹여서 보냈다.
큰 애들이 피곤 한지 일찍들 잠을 잔다.
나는 남은 닭 죽을 가지고 아기를 않고
마당의 미군 야전 침대를 저쪽 마당 끝에다가 놓고
아기에게 죽을 먹이는데 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팠다.
무슨 죄를 짖는 기분이었다.
큰 애들도 갗이 못 먹이는 형편이 내 죄는 아닌데도
개가 죄인의 기분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말을 했다.
엄마 아들아! 하니까 네! 하고 대답을 한다.
아들 맘마가 맛 있니? 하니까 네~ 하고 대답을 한다.
아들아! 엄마가 너를 살리기 위해서 네 똥도 먹어 밨다.
이 맘마먹고 얼른 일어나서 건강하게 잘 커라?
네~ 하고 대답을 한다.
나는 울음 석인 소리로 아들 그렇지 안으면 너는
아주 오래오래 잠만 자고 일어 나지 말아라.
그러면 아프지도 않고 너도 좋고
이 엄마도 좋을 것이니까?
아프지 말고 내일 아침에 툭툭 털고 일어 나거라.
했더니 또 네~하고 대답을 했다.
나는 아기를 업고 밤 하늘의 총총한 별을 쳐다보면서
한 업이 울면서 기도를 했다.
아기가 들을 까봐서 말도 재대로 못 하고
속으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이 아이가 내게 살아갈 끈아풀이온데
대려가시려거던 그만 대려가시고
나의 살아갈 끈아풀이 되게 하시려거든 이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에 해가 떠 올라오듯이
우리 아기도 반짝 떠 오르게 해 주소서라고,
그리고 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뜨자 엄마 맘마 하고 먹을 것을 달란다.
나는 누름 밥을 박박 긁어가며 폭 끓여서
먹였더니 싫단다.
쉬운 말은 할 줄 알 던 것이 두 달 가까이 설사병을 앓고 나더니
말도 못하고 엄마 맘마 네 밖에 못 한다.
누른 밥을 입에 넣어 주니 도리질을 하면서 벹고 안 먹는다.
나는 그만 두고 큰애들 학교 가는길에
너희들 오늘 학교 갈 대 네 동생을 광희 할머니 집에다가
데려다 주고 오늘도 너희들 학교 끝나면 그 집에 가서 놀다가
져녘 때 집으로 와 오늘은 저녘 밥은 집에와서 먹어라.
엄마는 아기를 데리고 서울 병원에 갔다가 올 것이니까
하고 근 놈을 딸려 보냈다.
그리고 건져 놓은 닭을 칼로 다져서 찹 쌀을 넣고
죽을 폭 끓여서 먹였다.
그도 세번에 나눠서 먹였다.
잘 받아 먹었다.
그리고 그 무서운 설사가 막혔다.
그 아들이 55세다.
그 후로 그 아들은 닭죽을 잘 먹고 삼계탕도 잘 먹는다.
아버지는 삼계탕이나 닭죽을 안 좋아 하시지만 아들이 잘 먹어서
가끔씩 해 주었었다.뉴욕에서 아들과 둘이 살 때 이 모모 목사님이
설사병으로 돌아 가시게 되었을 때에도 아들을 먹이려고,
닭죽을 쑤어 놓은 것을 드려서 그 것 드시고 그 무서운
설사병을 고쳤다. 나는 젊어서 아들의 설사병을 고친 후로는
아이들이 설사병을 앓으면 닭죽을 쑤어 먹여서 많이 고쳤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도 지천명이 넘고 큰 애들은
耳順에다가 耳順을 바라보고 다 외국에서 사니
닭 죽으로 설사병을 고치는 일을 깜밖 잊고 남편의 설사병을 흰
죽만 대접을 해서 여러날을 고생을 하셨는데 어저께 저녁에는
정상 적인 변으로 회복이 되셨다. 하지만오는 점심까지 닭 죽으로
대접을 하고 저녁에나 밥을 해 드릴 것이다.
다 잊어버리고 살아 왔는데 남편의 설사병으로 인해서
그 옛날의 내가 살아온 일이 생생하게 생각이 나서
긴 글을 올리지만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서
요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일들이라서 진짜 쓰고 싶은
대목은너무도 가난하게 살아서 요세 사람이 궁상 맞다고
생각을 할까봐서 창피해서 다 빼고 안 썼다.
이 사실을 우리 큰 자녀들 삼남매가 알아야 하는데,
그들 또한 안 믿을 것이다.내가 회고록을 쓸 때도 진짜
써야 할 대목을 못 쓴 것이 많아서 아쉽다.영원히 우리
큰 애들에게는 베일 속에 일들인데 이제 와서 그 것을 밝혀서
무엇한단 말인가?그 인고의 세월을 다 넘겼는데,
영원 한 저 세상에 가면 다 밝혀 질 것을 믿고
내가 다 짊어지고 갈 것이다.
쓰다 보니 항상 긴 글이 되어서 회원님들 긴 글
읽으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실 것인데도 항상
사랑의 마음으로 들르시고 귀한 흔적을 주심을
이 지면을 통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2015 년 8월 3일 예향: 안성
예향 님은 82세이십니다.여러분의 진심어린 응원과 성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