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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촌의 여자친구
나오미
영수를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헤헤, 솔직히 놀린다기 보다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거다. 영수에게는 당근 보다 채찍이 제격이다. 허구헌날 준비물을 잊고 오는 영수가 한심스럽다. 나처럼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머리도 그리 좋아보이지도 않는다. 한 마디로 답답하다. 오늘도 영수는 나의 레이더 망에 걸렸다. 미술 준비물을 또 잊고 온 모양이다. 선생님께 혼나는 것도 영수에겐 대수롭진 않는 것 같다. 점심시간이 되자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 있는 녀석. 태연한 그 모습이 이젠 얄미울 정도다. “야, 베트콩! 넌 집에서 엄마가 콩 반찬만 해주겠지? 헤헤......” 영수가 밥을 먹다 말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넌 학교에 밥 먹는 재미로 오지?” “......” “하여튼 다른 건 몰라도 점심시간은 용케 안다니까. 너의 몸에는 굶주림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게 분명해.” “너, 말 다했어?” 영수가 화가 난 듯 쏘아붙였다. “뭐, 말 다했냐고? 얘가 갑자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하네. 다 알면서......” “현준아, 너 자꾸 나한테 왜 그래?” 영수는 정말 화가 난 모양이다.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이제 게임이 슬슬 재밌어지겠는 걸!’ 난 입이 근질근질해졌다. “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뭔지 아니?” “으이씨!” 영수의 입이 씰룩거렸다. “너희 나라 말로 끼루끼루 빼빼로 라는 말이야. 하하하.” “너 자꾸 그러면 선생님한테 이야기 한다.” “아휴, 너네 엄마한테도 일러바치지 그래? 베트남 아줌마, 하나도 안 무섭다! 그리고 팔이 안으로 굽은다는 말 몰라? 너 같은 외국인에게는 선생님도 관심 없다구.” 영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우리 아빠도 너처럼 한국 사람이란 말이야!” “그래, 그렇지. 너의 피 속에 50%뿐이겠지. 그게 온전한 사람이니? 하하” 영수는 화가 났는지 갑자기 밥을 먹다말고 뛰쳐나갔다. 그런 영수의 모습을 보니 더 재미있어졌다. 영수의 뒤에 대고 냅다 소리질렀다. “너, 그거 알아? 너 같은 외국인들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자리가 없어진다구! 외국인 고우 홈!” 난 마치 애국자가 된 것처럼 어깨를 으쓱거렸다. 사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외국인 문제가 나올 때마다 주먹이 쥐어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영수의 주먹이 돌진했다. ‘퍽!’ “그동안 내가 참아 왔다는 거 너도 잘 알 거야.” 난 얼굴을 감싸쥐었다. 다행히 세게 맞은 것 같진 않았다. 조금 얼얼할 뿐이었다. “때려서 미안해. 하지만 대한민국도 내 나라야.” 한 마디로 병 주고 약 주고다. “휴! 저게!” 고개를 들었을 땐 영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수업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영수를 흠씬 패주지 못한 것이 억울했다. ‘내일은 오늘 몫까지 합쳐서 혼내줘야지’라고 다짐했다. “엄마, 저 왔어요.” “응, 현준이 왔어? 얼른 너희 방 정리 좀 해라.” “에휴, 피곤해요. 그런데 오늘 무슨 날이에요?” 현관문 앞에서부터 맛있는 냄새가 폴폴 났다. “그럼 좋은 날이지. 너의 노총각 외삼촌님께서 드디어 집에 오는 날. 호호호.”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평소와 달리 콧노래까지 부르는 것이다. “삼촌한테 이쁜 여자친구까지 생겼다고 하더라.” ‘삼촌이 여자친구를?’ 외삼촌은 엄마의 유일한 동생이다. 난 외삼촌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신 후 우리 집에서 쭉 함께 살아와서 나에겐 형 같은 삼촌이다. 공부도 잘해서 엄마의 자랑거리였다. “현준이 넌, 삼촌 뒤만 쭈욱 따라가면 돼.” 나도 그런 삼촌을 닮고 싶다. 삼촌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곤 몇 년 후에 프랑스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삼촌은 가끔씩 파리의 에펠탑과 개선문 사진을 보내오곤 했다. 이번 방학 때는 삼촌 보러 파리에 가려고 벼르던 참이었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현준아, 삼촌인가보다. 문 열어드려.” “네.” 현관 앞에 서 있는 외삼촌은 멋있었다. 완벽한 파리지앵의 모습이었다. “누나, 저 왔어요. 어! 우리 꼬맹이 현준이도 많이 컸네” “어서 와라. 여자친구도 같이 왔어?” “네. 이리 와요. 린” 삼촌은 뒤에 서 있는 여자친구의 손을 앞으로 잡아당겼다. “현준아,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삼촌의 여자친구도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했다. 삼촌의 여자친구는 적당한 키에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누가봐도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말 수가 적었다. 거실에 들어와서도 내내 미소만 짓고 있었다. “정준아, 여자친구 소개 좀 해봐.” 밥을 먹기 전에 엄마는 외삼촌에게 눈짓을 했다. “누나, 제 여자친구는 베트남 사람이에요. 그리고 우리 결혼할 생각이예요.” 난 깜짝 놀라 하마터면 국물을 엎을 뻔 했다. “삼촌? 뭐, 뭐라고요?” “응. 프랑스에서 만난 친군데 서로 맘이 잘 통해.” “삼촌, 왜 하필이면......” “베트남에서 태어나 어릴 때 파리로 부모님 따라 왔대. 할아버지가 한국인이셔. 그래서 우리나라 말도 곧잘 한단다.” 엄마도 놀란 눈치다. 엄마는 삼촌과 삼촌의 여자친구를 번갈아보았다. “정준아! 혹시 나이가 많다고 서두른 건 아니니?” “아니. 누나, 많이 고민하고 결정한 거야. 이 사람과 남은 내 인생을 보내고 싶어” ‘말도 안돼. 나의 롤모델인 외삼촌이 베트남 사람이랑 결혼을? 농촌 총각도 아니면서.’ “삼촌, 그동안 외국에서 많이 외로웠나보네요” 난 조금 비아냥거리며 이야기했다. “그래, 현준이가 외로움도 아는 나이가 되었나?” 삼촌은 그저 헤헤거릴 뿐이었다. “누나! 저, 내년에 베트남으로 갈 것 같아요.” “왜, 베트남으로?” 엄마는 약간 못마땅해 하는 눈치다. 삼촌이 파리에 갈 때도 많이 서운해했었다. 사실 삼촌은 대학 다닐 때도 베트남과 캄보디아 봉사활동을 나가곤 했었다. 그래서 엄마는 삼촌이 한국에서는 살지 않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곳 현지 회사에서 입사 승낙 받았어요. 린과 결혼해서 하노이에서 한 번 살고 싶어요. 이 사람도 그걸 원하고.” 삼촌은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래. 내 동생이 어련히 결정했겠니? 나도 너가 좋다면 좋아.” ‘헉’ 엄마까지. 그때 삼촌의 여자친구 린이 입을 열었다. “저희 행복할게요. 현준 조카도 베트남 놀러와요.” 조금 어눌하지만 또렷한 한국 발음이었다. “삼촌, 실망이에요. 베트남으로 아예 가버려요.” 난 벌떡 일어나 내 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렸다. “저 녀석이 아까부터 왜 저러지?” 엄마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후 삼촌이 들어왔다. “현준아, 외삼촌이 베트남 가는 게 싫어? 그럼 현준이랑 한국에서 살까?” “그게 아니고. 왜 하필 베트남 여자랑......” 삼촌이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린은 배려 깊고 똑똑한 사람이야. 너도 분명 좋아하게 될 거야.” “왠지 삼촌을 다른 나라에 빼앗긴 것 같아서 그래요.” “무슨 소리? 오히려 프랑스보단 가까우니 우리 가끔 보자꾸나” “아무튼 전 싫어요. 우리 반에도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친구가 있는데......” “오, 그래?” “무지 눈치 없고 구제불능인 얘예요. 준비물도 맨날 잊어먹고.” “그럼 현준이가 잘해 주어야지. 이제 외숙모 될 분도 베트남 사람인데” “걘 내 밥이죠. 항상.” 오늘 영수한테 한 대 맞았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자존심 상해서. “그 아인 베트남어와 한국어 둘다 잘하겠네?” “베트남어는 물론 잘하고, 한국어도 잘한 편이죠. 공부는 못해도.” 그런데 생각해보니 영수는 그리 어눌한 얘는 아닌 것 같다. 내가 힘들어하는 수학문제도 척척 풀곤 했었다. 뭐, 나도 가끔 준비물을 잊어먹고 갈 때가 있으니까. “삼촌도 베트남 말 잘 못하는데 베트남 가면 현준이같은 친구 만날까 겁난다. 하하하” ‘설마. 삼촌은 똑똑한데 그럴 일 없을 거야’ “근데 삼촌, 저 분이랑 결혼하면 삼촌 아이는 50%만 한국인이겠네요?” “하하, 우리 현준이가 궁금한 게 많구나?” 영수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였다. “현준아, 피가 50%가 어디 있어? 100% 한국인, 100% 베트남인이겠지. 피는 나눌 수 없지. 안 그래?” “......” “프랑스에 살다보니 많은 외국인들을 봤단다. 세계는 점점 하나가 되어가고 있어” “언어나 문화나 모든 게 다르잖아요?” “그렇지. 사람은 모두 똑같을 순 없어. 물론 언어나 문화가 같아도, 한 국가 안에서 싸우고 돌아서는 사람들도 많잖니?” “그건 그렇네요” “그리고 우리나라도 예전에 못살 때 다른 나라로 일하러 갔었잖아. 그건 알지?” “네. 중동에 있는 나라랑 또 독일. 음......” “그래. 그런 것처럼 지금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도 그런 셈이지” 그러고보니 우리나라만 잘 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현준아, 낼 토요일이니까 점심에 삼촌이랑 린이랑 밥 먹을까? 너 친구도 데려오고” “영수도 데려오라구요?” “응. 베트남어로 이야기도 해보고, 린도 좋아할 것 같은데?” 아마 영수는 밥이라면 좋아할테니 거절하진 않겠지. 오늘밤에 전화할까. 내일 아침에 할까. 그러다 문득 잠이 들었다. 영수의 얼굴이 꿈속에 어른거렸다. 삼촌과 여자친구 린의 얼굴이 합성사진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미래에 태어날 사촌 동생 얼굴이 영수와 겹쳐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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