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복기(宋福基)
[본관] 야로(冶爐)
[진사] 선조(宣祖) 9년(1576) 병자(丙子) 식년시(式年試) (進士) 3등(三等) 30위(60/100)
[생졸년] 1541년(중종 36)∼1605년(선조 38) / 향년 64세
[거주지] 영천(榮川)
본관은 야로(冶爐) . 자는 덕구(德久) , 호는 매포(梅圃) .부친은 승사랑(承仕郞) 충순위(忠順衛) 송의(宋儀) 이고, 중종(中宗) 36년 5형제 중 4남으로 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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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조 학사집(鶴沙集)
소촌도 찰방 송공 묘갈명 병서(召村道察訪宋公墓碣銘 幷序)
야성 송씨(冶城宋氏)는 야성군(冶城君) 송길창(宋吉昌)에 이르러 비로소 현달하여 높은 벼슬이 연달아 이어졌다. 12세 송륜(宋綸)은 현령(縣令)을 지냈고, 송석충(宋碩忠)은 생원으로 지조와 덕행이 있었으며, 송의(宋儀)는 형조 참의에 추증되었다. 공에게 증조(曾祖)ㆍ조부(祖父)ㆍ부친이 된다. 숙부인(淑夫人)에 추증된 어머니는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공은 이름이 복기(福基)이고, 자가 덕구(德久)이다. 공은 가정(嘉靖) 신축년(辛丑年,1541, 중종 36)에 태어나 만력 을사년(乙巳年,1605, 선조 38)에 임종하여 예천군(醴泉郡) 동쪽 옹정산(瓮正山) 손향(巽向) 언덕에 장사 지냈다.
아, 공은 재주와 학문이 있어 병자년(丙子年,1576, 선조 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명성이 더욱 드러났다. 고례(故例)에 성균관 유생으로 재주와 행실을 겸비한 사람을 추천하고 조정에 알려 벼슬을 제수하였다. 공이 첫 번째로 선발에 들어 소촌도 찰방(召村道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서와 사서(史書)를 스스로 즐기고 산수(山水) 속에서 스스로 노닐며 날마다 명인(名人) 운사(韻士)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시를 읊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아 일생을 마쳤으니, 공의 고매한 회포와 우아한 풍류를 상상할 수 있다. 아내 의인(宜人) 영월 신씨(寧越辛氏)는 전법 판서(典法判書) 신당계(辛唐系)의 6세손으로 습독(習讀) 신홍조(辛弘祚)의 딸이자 퇴도(退陶 이황) 선생의 외종손녀(外從孫女)이다. 공보다 26년 뒤에 죽어 공의 무덤에 부장(附葬)하였다.
3남 3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상렴(尙濂)ㆍ상락(尙洛)ㆍ상엄(尙淹)이고, 딸은 김인달(金仁達)ㆍ박수검(朴守儉)ㆍ남잡(南磼)에게 시집갔다. 장남 상렴(尙濂)은 2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천추(天樞)와 천표(天杓)이고 딸은 권극정(權克正)과 김각(金恪)에게 시집갔고, 서자〔孽子〕둘은 천주(天柱)와 천재(天)이다.
차남 상락(尙洛)은 딸 하나를 두었는데 박빈(朴玭)에게 시집갔다. 셋째 상엄(尙淹)은 4남 3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천근(天根)ㆍ천식(天植)ㆍ천기(天機)ㆍ천상(天相)이고, 딸은 송적(宋樀)ㆍ장후경(張厚慶)ㆍ김일(金)에게 시집갔고, 서자〔孽子〕 둘은 천제(天梯)와 천영(天楹)이다. 내외(內外)의 증손과 현손 남녀가 모두 백여 명이다. 선을 쌓아 남은 경사가 대개 다하지 않았다. 명(銘)은 다음과 같다.
중씨의 〈낙지론〉과 / 樂志仲氏
반공의 〈한거부〉는 / 閒居潘公
공이 좋아했던 작품이네 / 公之操
천년의 간격이 있어도 / 隔千載
한 가지 법도이니 / 而一揆
어찌 고금 사람의 같고 다름을 논하랴 / 寧論古今人之同不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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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높은 벼슬 :
원문의 ‘헌면(軒冕)’은 고관의 거마(車馬)와 면복(冕服)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고관을 가리킨다.《장자》〈선성(繕性)〉에 “헌
면이 내 몸에 있는 것은 내가 타고난 성명이 아니요, 외물이 우연히 내 몸에 와서 붙어 있는 것일 뿐이다.[軒冕在身, 非性命也, 物之
儻來寄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02] 중씨(仲氏)의 낙지론(樂志論) :
중씨(仲氏)는 후한(後漢) 때 사람 중장통(仲長統, 179~219)을 말한다. 자는 공리(公理)이다. 중장통은〈낙지론〉에서 전택의 아
름 다움과 한가로운 산속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모습, 노자(老子)의 현묘한 도를 추구하는 생활을 추구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 1》
[주03] 반공(潘公)의 한거부(閒居賦) :
반공은 서진(西晉)의 문학가 반악(潘岳)을 말한다. 일찍이〈한거부〉를 짓고 서문에서 전원에서 한가로이 사는 즐거움을 설파하였
다.《文選 卷16 閒居賦》
ⓒ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권영락 (역) |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