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필사본을 우선 3부 만들었습니다. 그중 1부는 연희전문의 이양하 교수에게, 1부는 아우 같은 후배 정병욱에게 줍니다. 1부는 본인이 갖고요. 이양하에게 간 필사본은 행방을 알 길 없고, 윤동주의 소장 원고는 흔적이 없고요. 정병욱은 윤동주를 흡사 연인처럼 다정다감하게 지냈습니다. 윤동주 시집에 대한 답례로 정병욱은 윤동주 졸업을 맞아 현대 시집을 선물하면서, 시를 써 주었습니다.
정병욱 역시 1943년에 이르러 학병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전장으로 떠나기 전 정병욱은 전남 광양의 자기 집에 들러, 어머니에게 자신의 물건과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필사본을 맡기면서, 특별히 "일본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게 잘 보관하시고, 혹시 전장에서 죽고 못 돌아오거든 해방을 기다렸다가, 연희전문학교에 가지고 가서 여러 선생님들께 보여 드리고 발간을 상의하시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정병욱의 어머니는 이를 마루 밑에 숨겨둔 항아리 속에 넣어 잘 보관했습니다. 정병욱은 다행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연희전문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절친한 친구 강처중은 참회록과 일본에서 윤동주가 편지로 보낸 시편을 귀중히 보관해 두고 있었습니다.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해방 후 용정에서 서울로 와서, 정병욱, 강처중과 만나 그 시를 모아 드디어 1948년 2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내게 됩니다. 총 31편입니다. 당대의 시인 정지용의 심금을 울리는 서문과 함께 말입니다.
정지용은 윤동주의 시를 보면서,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이 없이!"라고 탄식하면서, 그의 시를 "冬섯달의 꽃,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라는 절구로 압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