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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여행 일본 호후시(防府市) 모리박물관(毛利博物館) 모리 모토나리상(毛利元就像)<복제>
浮雲 추천 0 조회 10 26.07.07 03:25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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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7.07 04:04

    첫댓글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는 일본 센고쿠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지략가이다.
    초상은 독특한 문양(일문삼성 문양, 一文字三星)이 새겨진 옷을 입고 있다.

  • 작성자 26.07.07 04:01

    아키 국(현재의 히로시마현)의 작은 소영주로 출발했으나, 탁월한 외교술과 전술, 가문 연합 체제를 활용해 당시 거대 세력이었던 오우치 가문과 아마고 가문을 무너뜨리고 일본 서부(주고쿠 지방) 10개 국을 지배하는 거대 다이묘로 성장했다.

  • 작성자 26.07.07 04:02

    자식들에게 "화살 한 자루는 쉽게 부러지지만, 세 자루가 모이면 부러지지 않는다"라며 형제간의 우애와 단결을 강조한 일화로 매우 유명합니다. 이 가르침 덕분에 세 아들(모리 타카모토, 깃카와 모토하루,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은 분열 없이 가문을 단단히 지탱했다.
    이를 세 자루의 화살 (삼자훈, 三子教訓状)이라 한다.

  • 작성자 26.07.07 04:05

    이 초상화 상단에는 승려 기슌 료키(熙春龍喜)가 쓴 찬문이 있어 제작 연대(1591년)를 명확히 알 수 있으며, 센고쿠 시대 대다이묘의 위엄과 실제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 작성자 26.07.07 04:07

    釋文
    ​前防州太守日禋洞泰大居士肖像
    ​仲夏月上澣二日 旹 隆慶辛未 六月十四日
    ​共惟
    贊曰 大公之德 涵大業 天下竹帛 不足載...
    南國彈指 旹禪師住之 岬以精 大居士有像 於乎 融泉寺山下...
    祖老大聖一精舍 号 洞春寺...

  • 작성자 26.07.07 04:09

    ​... 公唯然 於是 乃事 卒能守能産 是亦久 爝資為 禋福 茲 占天下 憤慨也 抱眞 憂世...
    ​隆慶辛未 百战 洪 惟 守太守 州杰 亦 割巨 於 髫省 允 吾公 舉義 旗以乘玄 卒大軍 赴海西 戰精 兵下関 在祖聖
    ​天正十九 辛卯 仲夏
    前防州 贈一品 守日禋洞泰大居士肖像

  • 작성자 26.07.07 04:10

    ​찬문은 모리 모토나리의 법명인 '일인동태대거사(日禋洞泰大居士)'를 모시며 그의 일생과 가문의 영광을 찬양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 작성자 26.07.07 04:11

    "전(前) 스오·나가토 국(防州)의 태수이자, 사후 일품(一品)에 증직되신 일인동태대거사(모리 모토나리)의 초상화에 붙임."
    ​모토나리가 숨을 거둔 해인 '융경 신미(隆慶 辛未, 1571년) 6월 14일'을 명시하며 그의 서거를 추모하고 있다. (※ 융경은 당시 명나라의 연호)

  • 작성자 26.07.07 04:12

    "삼가 생각건대, 대공(모리 모토나리)의 덕은 거대한 대업을 머금었으니, 천하의 역사책(竹帛)으로도 그 공적을 다 기록하기 부족하다. 남쪽 국토를 평정하고 지략을 펼치시니..."

  • 작성자 26.07.07 04:13

    모토나리의 위패를 모신 보리사인 '동춘사(洞春寺, 도슌지)' 및 융천사(融泉寺) 계열 사찰의 유래를 언급하며, 장남 타카모토 등 자손들이 대를 이어 영지를 지키고 가업을 성산(能産)한 것을 기리고 있다.

  • 작성자 26.07.07 04:13

    "백 번의 전투를 치르며 고향과 주고쿠(中国) 땅을 지켜낸 영걸이셨다. 의로운 깃발을 높이 들고 대군을 거느려 해서(바다 서쪽)로 부임하였으며, 시모노세키(下関) 등지에서 정예 병사를 이끌고 싸우셨다."

  • 작성자 26.07.07 04:14

    글의 마지막에는 '텐쇼 19년 신묘년(天正十九年 辛卯, 1591년) 한여름(仲夏)'에 이 찬문을 완성하여 바친다고 기록되어 있다.

  • 작성자 26.07.07 04:15

    ​이 찬문은 단순한 종교적 추도문이 아니라, "융경 신미년(1571년)에 세상을 떠난 주고쿠의 영웅 모리 모토나리가 나라를 구하고 가문을 일으킨 백전노장의 영걸이었음을 천하에 알리며, 1591년 여름에 그의 초상 위에 이 기록을 남긴다"는 내용이다.
    ​소영주에서 시작해 대다이묘의 반열에 오른 모토나리의 영광스러운 일생과 사후 가문의 번창을 한문 미문(美文)으로 극찬한 귀중한 16세기 말의 1차 사료이다.

  • 작성자 26.07.07 04:17

    안내문

    ​모리 모토나리 초상화 (복제본) 1폭
    희춘용희(기슌 료키) 찬문 / 모모야마 시대 (16세기)
    지본채색 · 원본은 중요문화재
    ​모리 가문을 주고쿠(中国) 지방 제일의 대다이묘(大名)로 도약시킨 모리 모토나리(1497~1571)의 초상화이다.

  • 작성자 26.07.07 04:18

    텐쇼(天正) 19년(1591년)에 쓰인 찬문(초상화 상단의 글귀)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모토나리가 사망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토나리가 66세 때 장남인 모리 타카모토(毛利隆元)가 그리게 했던 모토나리 초상화(야마구치시 도요사카 신사 소장)와도 이목구비의 특징이 매우 닮아 있어, 모토나리의 실제 풍모를 오늘날에 전해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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