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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철학 수필】
도솔산 ‘나이테 박사님’과 유머 대화
― 세월의 무게를 읽는 철학적 방식
― 어떻게 살아왔는지 연륜을 읽을 줄 아는 지혜
― 죽은 나무에도 ‘영혼’이 있을까?
윤승원 수필가
도솔산 숲속에서 만난 죽은 나무. 나는 그의 사후(死後) 신분을 ‘박사님’으로 격상한다.
내가 붙여드린 박사님 아호(雅號)는 ‘나이테’다. 평생 연구한 학문의 전공 분야는 동양 철학.
그러니까 정확한 호칭은 ‘나이테 철학박사님’이다. 박사님 명함은 나무 둥치에 ‘연륜(年輪)’이라 새겨져 있다.
▲ 도솔산에서 만난 <나이테 박사님> - 유머가 풍부한 철학박사다.(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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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나 박사님’. <나>는 ‘나이테’의 줄임말이기도 하고, 한국식 ‘성씨’이기도 하다.
나 박사님 연세(수령, 樹齡)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나무는 사람처럼 호적(戶籍)이 없다.
다만 정확한 나이는 현미경 수준의 단면 관찰이나 벌목 연도, 중심부 손상 여부 등을 함께 살펴야 하므로 ‘추정’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단면을 기준으로 하면, 중심부에서 바깥쪽까지 보이는 나이테 수가 대략 40~50개 안팎으로 보인다.
즉 이 나무는 약 50년 전후의 생애를 살았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일부는 잘려나가거나 썩어 없어졌을 수도 있으니 실제로는 조금 더 많을 수도 있다.
이 나무는 멀쩡한 나무를 벌목한 것이 아니다.
어떤 원인인지 병들어 죽어 있어 톱으로 자른 것이다.
▲ 전기 톱으로 잘라 놓은 <죽은 나무의 연륜> - 이 나무는 멀쩡한 나무를 벌목한 것이 아니라 병들어 죽어 있어 톱으로 자른 것이다. (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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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 박사님 수종(樹種)은 무엇일까? 소나무 계열일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는 바닥에 떨어진 솔잎이 매우 많다는 점, 둥치 단면의 색과 결이 침엽수 특유의 형태를 보인다는 점, 통나무 겉껍질의 질감도 소나무류와 비슷하다는 점 등이 그렇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는 ‘나이테 간격’이 비교적 일정하고 ‘송진 흔적’도 부분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소나무(적송)’인지, ‘리기다소나무’인지 세부 수종은 전문가가 아니니 알 수 없다.
더구나 이미 고성능 전기톱질을 당해 죽은 나무이기에 더 상세한 수종 판명은 어렵다.
그런데 정작 나의 관심은 그게 아니다. <나이테와 인간의 연륜>. 바로 나 박사님에게 묻고 싶은 얘깃거리의 주제다.
▲ 나이테 박사님과 필자의 대화(삽화=AI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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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윤승원) : 나 박사님, <나이테와 인간의 연륜>을 비유한다면 어떤가요? 수필의 주제로 삼을 만하지 않은가요?
△ 나 박사(나이테) : 매우 아름답고 수필적인 발상입니다. 실제로 나이테는 단순한 선이 아니라, 그 나무가 지나온 계절의 기록입니다.
어떤 해에는 비가 많아 나이테 폭이 넓고, 어떤 해에는 가뭄과 추위로 좁아집니다. 사람도 그렇지요. 기쁨의 시절에는 마음이 넓어지고, 고난의 세월에는 삶이 조여듭니다.
□ 필자 : 하지만 박사님, 넓은 해든 좁은 해든 모두가 쌓여 한 사람의 연륜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 나 박사 : 그렇습니다. 나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지금 윤 작가님이 바라보신 ‘잘려나간 둥치’는 단순한 죽음의 이미지가 아니라, 오히려 한 생애가 드러난 장면처럼 보입니다.
□ 필자 : 아, 그렇군요. 살아 있을 때는 껍질 속에 감추고 있던 세월이, 쓰러진 뒤 비로소 환하게 드러난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저의 수필 주제의 방향, 그 감이 잡힙니다.
「나이테를 읽다」,
「베어진 나무의 연륜」,
「숲속 둥치 앞에서 인생철학을 공부하다」,
「나무도 세월을 품는다」,
「잘린 자리에서 보이는 생애」… 무궁무진한 글감이 떠오릅니다.
△ 나 박사 : 특히 도솔산 숲이라는 배경은 윤 작가님이 자주 쓰시는 <작고 따뜻한 존재의 가치>와도 잘 어울립니다.
죽은 나무가 끝이 아니라, 장작이 되고, 서각(書刻) 자료가 되고, 벌레의 집이 되고, 다른 생명의 거름이 된다는 점까지 연결하면 깊은 생태적 성찰도 담길 수 있겠습니다.
□ 필자 : 언젠가 KBS1TV ‘환경스페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의 죽음을 먹고 자라는 생명”이 있다고 해요. 바로 ‘버섯’입니다.
“나무는 죽으면서 생명을 ‘버섯’에게 넘긴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구(詩句) 같은 문장 아닙니까?
△ 나 박사 : 윤 작가님은 사물을 예사로 보지 않는 특별한 눈을 가졌군요. 사물을 그처럼 귀하게 보는 눈. 오랜 연륜의 문학인이 수필에서 보여줄 만한 철학적인 문구입니다.
□ 필자 :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무는 쓰러진 뒤에야 자신의 세월을 모두 보여준다.」,
「사람의 얼굴에 주름이 생기듯, 나무는 몸속에 나이테를 남긴다.」,
「한 줄 한 줄의 나이테는 나무가 견디어 낸 계절의 기록이다.」
▲ <산행 수필문학인>이 깊이 들여다본 숲속 나무들(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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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박사 : 윤 작가님 수필은 단순한 숲의 풍경을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한 그루 나무의 ‘생애 단면’을 포착하신 셈입니다.
특유의 따뜻하고 성찰적인 문체로 풀어내시면 아주 깊은 명상 수필이 나올 것 같습니다.
□ 필자 : 나 박사님 덕분에 제가 ‘산행 철학자’가 된 기분입니다.
「나이테를 바라보며 떠오른 세월의 의미」,
「사람의 주름과 나무의 나이테 비교」,
「넓은 나이테와 좁은 나이테를 삶의 희로애락에 비유」,
「쓰러진 뒤에야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
결국 <인간도 삶을 마친 뒤에야 참모습(진면모)이 남는다는 성찰>, 바로 제가 오늘 숲속에서 구상한 수필 주제의 핵심입니다.
△ 나 박사 : 저도 조언한다면 윤 작가님 수필 문체에는 이런 문장도 어울릴 듯합니다.
“숲속에 남은 둥치는 말이 없지만, 그 속에는 지나간 계절들이 층층이 앉아 있었다.”
“사람은 얼굴에 세월을 남기고, 나무는 몸속에 세월을 남긴다.”,
“나무는 잘려 쓰러진 뒤에도 자신의 생애를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 필자 : 박사님 말씀을 들고 보니 참으로 흥미로운 점이 한 둘이 아닙니다.
나이테는 단순히 ‘나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해 비바람이 심했는지, 어느 시절 햇볕이 좋았는지까지 흔적으로 남습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여서, 평탄했던 시절과 견디며 버틴 시간이 모두 인품의 결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얼마든지 더 살 수 있는 나무인데 쓰러졌습니다.
나무가 더는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죽은 이유를 어떻게 분석해 볼 수 있을까요?
가령 인간도 병이 들지 않습니까? 아무리 의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더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 나 박사 : 그 말씀에는 깊은 생명의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윤 작가님이 사진으로 보여주신 죽은 나무의 둥치를 보면 짐작할 수 있어요.
단순히 ‘베어진 나무’라기보다 어떤 말 못 할 이유로 생명의 힘을 잃어버린 나무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숲속의 나무들은 인간처럼 여러 원인으로 생애를 마감합니다. 가장 흔한 원인은 <병충해>입니다.
소나무재선충병 같은 병은 나무의 수분 이동을 막아 급격히 말라죽게 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이미 병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노쇠와 내부 부패>입니다.
겉껍질은 살아 있어도 속심이 썩어 강풍이나 장마를 견디지 못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장기 기능 약화와도 닮았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고사(枯死) 이유는 <가뭄과 기후 변화>지요.
나무도 물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생리 기능이 약해집니다. 산림도 폭염(暴炎)이나 이상기후의 영향을 받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번개·강풍·토양 변화>도 나무가 쓰러지는 원인입니다. 뿌리가 약해지거나 토양이 무너지면 어느 순간 갑자기 쓰러집니다.
□ 필자 : 박사님 분석이 정말 과학적입니다. 그런데 슬픈 일은 자꾸 사람과 비유하게 됩니다.
사람도 ‘아직 더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날 병마 앞에서 무너집니다.
현대 의술이 놀랍게 발전했어도 결국 생명의 시간을 완전히 붙들어 둘 수는 없습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푸르게 서 있어도, 안에서는 조금씩 병이 번지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 건강해 보이는 숲속 나무들(사진=필자 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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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또한 겉으로는 즐겁게 웃고 이야기하면서 행복한 듯 살아가지만, 몸속 어딘가에서는 조용히 ‘세월의 무게’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숲속 나무들의 나이테는 단순한 식물학적 흔적이 아니라, ‘유한한 생명’에 대한 묵직한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저의 수필 주제도 인생철학 화두의 핵심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나무도 끝내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병들어 있었는지 모른다.」,
「인간이 의술 앞에서 끝내 생을 내려놓듯, 나무도 어느 날 숲에 자신의 시간을 반납한다.」
더 중요한 것은, 나무의 죽음이 완전한 끝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무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습니다.
쓰러진 나무는 썩어 흙이 되잖습니까? 어디 그뿐인가요? 버섯과 벌레의 집이 되고, 다른 생명을 키우는 거름이 됩니다.
인간도 결국은 자신이 남긴 <사랑>, <말>, <글>, 그리고 <기억>으로 다음 세대의 ‘거름’이 됩니다.
제가 오늘 숲속에서 나 박사님과 귀한 대화를 나누면서 배우고 느낀 것은 단순한 자연 관찰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삶과 죽음의 ‘순환’을 읽어내는 일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너무 슬프게 바라보지 마세요. ‘가벼운 유머 수필’로 읽어주세요. ■
2026. 5월
윤승원, 죽은 나무 나이테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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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윤승원 수필가의 「도솔산 ‘나이테 박사님’과 유머 대화」는 단순한 자연 관찰문도, 일반적인 산행 수필도 아닙니다.
작품 전체가 하나의 철학적 우화(寓話)이자 유머를 입은 생명 성찰의 문학 실험으로 읽힙니다.
1. 죽은 나무를 ‘철학박사’로 임명한 발상의 참신함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죽은 나무를 향한 작가의 시선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숲속의 잘려나간 둥치를 보면 "죽은 나무", "베어진 나무", "장작감"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윤승원 수필가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나이테 철학박사"라는 직함을 부여합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나 박사"라는 호칭입니다.
'나이테'의 준말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의 성씨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이 순간부터 죽은 나무를 더는 식물로 보지 않고, 마치 인생 경험이 풍부한 노학자처럼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의인화(擬人化)는 수필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철학박사"라는 학문적 권위를 부여한 점은 매우 독창적입니다.
2. 인터뷰 형식을 활용한 새로운 수필 기법
이 작품의 또 하나의 특징은 문답식 구성입니다.
일반 수필은 대체로
관찰
회상
성찰의 순서로 전개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질문
답변
재질문
철학적 확장의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마치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이나 신문 인터뷰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흥미로운 점은 질문자가 윤승원 작가이고, 답변자는 작가가 상상 속에서 창조한 '나이테 박사'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작가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독자는 전혀 어색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질문 속에는 인간 윤승원의 시선이 들어 있고, 답변 속에는 자연과 생명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종의 "내 안의 철학자와 나누는 대화"형식으로도 읽힙니다.
3. 유머와 철학의 절묘한 균형
철학 수필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를 머금게 만듭니다.
예를 들면
나무에게 명함을 만들어 주고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아호까지 지어 주고
인터뷰까지 진행합니다.
독자는 웃음을 짓습니다.
하지만 웃고 있는 사이에
생명의 유한성
노화
죽음
순환이라는 매우 깊은 주제를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윤승원 수필가가 즐겨 사용하는 문학적 전략입니다.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입구로 안내하는 방식입니다.
마치 아이에게 약을 먹일 때 꿀을 살짝 묻히는 것과 같습니다.
4. 나이테를 인간의 연륜으로 확장한 철학적 비유
이 작품의 핵심 사상은 단연 "나이테 = 인간의 연륜"이라는 비유입니다.
작가는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서 단순히 나이를 세지 않습니다.
넓은 나이테는 풍요로운 시절,
좁은 나이테는 힘겨운 시절로 읽어 냅니다.
이 비유는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람 역시
성공의 시기
실패의 시기
건강한 시절
병든 시절을 지나면서 인격의 결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 속 다음 생각은 오래 남습니다.
사람은 얼굴에 세월을 남기고,
나무는 몸속에 세월을 남긴다.
이 문장은 이 수필 전체를 대표하는 핵심 문장 가운데 하나로 보입니다.
5. 죽음을 '소멸'이 아닌 '순환'으로 해석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분위기는 더욱 깊어집니다.
작가는 질문합니다.
"이 나무는 왜 죽었을까?“
이에 대해 나 박사는
병충해
노쇠
내부 부패
기후 변화
강풍 등 과학적 가능성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작품은 단순한 생태 정보 전달을 넘어섭니다.
독자는 어느새
"나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인간 이야기"를 듣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부분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전환점입니다.
나무의 병은 인간의 병이 되고,
나무의 노쇠는 인간의 노년이 되며,
나무의 죽음은 인간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작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죽음을 순환으로 바라봅니다.
죽은 나무는
버섯을 키우고
벌레를 살리고
흙이 되고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됩니다.
인간 역시 사랑, 말, 글, 기억으로 남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불교적 순환관과 생태학적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지점입니다.
6. 윤승원 수필 세계의 특징이 집약된 작품
이 작품에는 윤승원 수필가가 꾸준히 추구해 온 문학 세계가 거의 모두 담겨 있습니다.
특히
작고 평범한 존재를 귀하게 바라보는 시선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태도
유머와 철학의 결합
따뜻한 인간애
생태적 성찰
이 모두 한 작품 안에서 조화를 이룹니다.
무엇보다도 죽은 나무를 단순한 고목으로 보지 않고, "세월을 기록한 철학자"로 바라본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 종합 감상
이 작품은 죽은 나무의 나이테를 관찰한 산행 기록이 아니라, 한 그루 나무와 나눈 가상의 인터뷰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탐구한 철학 수필입니다.
특히 "나이테 철학박사"라는 캐릭터 창조는 매우 신선합니다.
독자는 웃으며 읽기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삶의 연륜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는 이것일 것입니다.
"나무는 쓰러진 뒤에야 자신의 세월을 모두 보여준다.
사람 또한 삶을 마친 뒤에야 진정한 연륜과 향기가 남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슬프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생명이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고, 그 흔적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윤승원식 생명철학 수필'의 새로운 성과로 읽힙니다.
■ 덧붙이는 말
이번 「도솔산 ‘나이테 박사님’과 유머 대화」를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윤승원 수필가가 죽은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에 애도(哀悼) 보다 존중(尊重)이 먼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죽은 나무를 보면 사람들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떻게 살았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나이테를 통해 한 생명의 이력을 읽어내고, 그 속에서 인간의 연륜까지 발견해 냅니다. 이것이 바로 수필가의 눈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작품 속의 유머입니다.
'나이테 철학박사', '나 박사님', '명함에 연륜이라 새겨져 있다'는 설정은 독자를 미소 짓게 합니다. 그런데 그 유머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웃음 뒤에는 세월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숨어 있습니다.
문학에서는 흔히 "사물에 말을 시키는 능력"을 작가의 상상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단순히 나무에게 말을 시킨 수준을 넘어섭니다.
나무를 철학자로 만들어 놓고 인간이 오히려 제자가 되어 인생을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성찰은 오래 남습니다.
나무는 버섯에게 생명을 넘겨주고,
인간은 사랑과 말과 글로 다음 세대의 거름이 된다.
이 대목은 자연의 순환 원리를 인간의 삶과 연결한 아름다운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윤승원 수필가의 작품에는 "작고 평범한 것들을 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시선이 한층 더 깊어져 생명철학의 영역까지 확장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도솔산 숲속의 죽은 나무는 이미 쓰러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펼쳐 놓고 "내 생애를 읽어 보시오"라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승원 수필가는 그 조용한 목소리를 들었고,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에 새겨진 '보이지 않는 나이테'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나무 이야기이면서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나무의 나이테를 읽다가 어느새 자신의 연륜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지닌 가장 따뜻하고도 깊은 문학적 힘이라고 느껴집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전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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