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세월의 빠름을 느끼게 하는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어쩌면 그만큼 바삐 달려왔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달랑 끝장만 남은 달력을 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드는 마음은 인정상정이 아닐까요.
편의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날짜에 대해 왜 이리 민감해지는 걸까요. 세밑이라는 단어에 왜 이리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희망을 품기 위함일까요.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2009년 반상 세상을 정리하는 페이지를 마련했습니다. 그 두 번째으로 한국바둑계를 둘러봅니다. 이세돌 파문, 윤기현 사태, 기전 중단 등의 그늘도 있었습니다만 프로보노 활동, 병영바둑교실 등 박수 받을 일도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 경제한파 속 12개 기전 시행, 신예기전 '올 스톱' 2009년 한국바둑계(국내기전)는 1월 5일 이창호-배준희의 KBS바둑왕전 본선부터 12월 30일 맥심커피배 안조영-최철한의 16강전까지 총 2188국이 반상을 물들였다. 한 달 평균 182국, 하루 평균 6판이 두어진 셈이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세계적인 경제한파 속에 시행된 국내기전은 12개. 단체전 2개, 여류기전 2개, 제한기전 1개였으며 종합기전은 7개의 타이틀을 놓고 다투었다.
전년도에 비해 전체적으로는 6개, 종합기전은 2개가 줄어든 숫자. 종합기전 중 왕중왕전, 여류기전 중 여류기성전은 올해 휴년을 가진 뒤 내년에 속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비씨카드 주최의 신인왕전이 폐지된 대신 우승 3억원의 국제기전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으로 업그레이드되어 탄생했다.
아쉬운 점은 신인왕전, 신예연승최강전, 신예프로10걸전 등 3개의 신예기전이 전부 중단됐다는 점이다. 미래의 동량들이 날개를 펼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고 말았다.
●○… 이창호ㆍ박정환, 타이틀 2개씩 접수 타이틀 전선은 이창호와 박정환, 두 신구 세력의 간판이 중심이 됐다. 이창호는 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3월에 KBS바둑왕전을, 한 해가 마감되는 12월엔 명인전을 우승했다. 바둑왕전에선 강적 이세돌을 꺾었으며 명인전은 우승 상금 1억원의 국내 최대기전이어서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이창호보다 18년 어린 박정환은 연초와 연말의 바둑가를 강타했다. 올해 첫 타이틀전인 1월의 십단전에선 백홍석을 2-0으로, 올해 마지막 타이틀전인 천원전에선 김지석을 3-0으로 완파하며 열여섯 살의 성주로 등극했다.
십단전은 박정환에게 첫 종합타이틀로도 기록됐다. 16세 7일 만의 우승도 화제를 불러모았다. '될성부른 떡잎'이 마침내 활짝 만개한 것이다. 올해 국내타이틀 2개를 획득한 기사는 이창호와 박정환 둘 뿐이다. 그 둘은 내년 1월 7일부터 5기 십단전을 놓고 결승 대결을 벌이게 된다. 바둑가의 주목도가 어느 때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창호 키드'로 성장했던 김지석이 우상 이창호를 2-0으로 꺾고 한국물가정보배를 우승한 감격(8월), '2% 부족'의 조한승이 2연패 중이던 박영훈의 GS칼텍스배를 빼앗으며 우승 갈증을 푼 쾌거(12월)도 잊지 못할 승부로 새겨졌다.
그밖에 이세돌은 1월에 국수전 2연패를 달성했고 강동윤은 2월에 천원전을 제패했다. 이세돌의 국수는 휴직에 따라 타이틀을 반납함으로써 현재 공석인 상태이며, 강동윤의 천원은 차기 대회에서 박정환이 새 주인으로 자리함에 따라 패권이 이양됐다.
타이틀 보유수에선 이창호가 휴년을 가진 왕중왕을 합해 3관으로 최다이고 박정환이 2관을 점령했다. 반면 지난해 이맘때 국내외 6관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이세돌은 1년새 무관으로 떨어졌다.
○●… 한국랭킹, 이세돌 독주 끝에 연말 이창호와 자리바꿈 한국랭킹은 이세돌의 세상이었다. 1월부터 10월까지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랭킹제가 첫선을 보인 2005년 8월 이후 통산 30번째, 24개월 연속 1위를 찍었다. 그동안 크게 앞서나갔던 랭킹포인트는 휴직에 들어간 이후에도 몇 개월간 1위를 고수하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활동 시계가 멈추고서도 영원히 천하를 호령할 수는 없는 법. 8차례의 기권패까지 더해진 이세돌은 11월랭킹에선 최철한에게, 12월랭킹에선 이창호에게 각각 1위를 내주어야 했다. 이세돌의 득세 속에 최철한은 42개월 만의 생애 2번째, 이창호는 26개월 만의 통산 20번째 1위에 올랐다.
한때 2위까지 꿰찼던 강동윤은 등락을 거듭하며 5위로 마감했고, 그의 동갑 친구 김지석은 1월의 19위가 12월에 4위까지 수직상승하는 오름세를 나타냈다.
반면 4위로 출발했던 원성진은 10위로 밀려났으며 박영훈ㆍ조한승ㆍ목진석ㆍ윤준상ㆍ허영호 등이 10위권 안에서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였다.
●○… 기록부문에선 김지석이 독보적 기록부문은 김지석을 빼고는 한마디도 논할 수 없는 한 해였다. <표>에서도 드러나듯이 다승ㆍ승률ㆍ최다대국ㆍ연승 등 전 부문의 맨 꼭대기엔 어김없이 김지석의 이름이 올랐다. 독보적인 기록 4관왕. 1991년 이창호 9단이 수립한 이후 18년 만에 재탄생한 대기록이다.
다만 생애 첫 우승한 물가정보배까지 더해지며 프로 데뷔 후 최고의 해를 장식한 김지석은 연말 들어 4년 후배 박정환을 만나 천원전 타이틀매치에서 맥없이 물러났으며 십단전 결승 티켓도 내주어 빛이 조금 퇴색됐다.
각 부문의 2위는 다승에선 최철한, 승률과 연승에선 박정환, 최다대국에선 이창호가 랭크됐다. 현재 13연승 중인 박정환의 후반 기세가 워낙 드높아 올해 일정이 조금 더 길어졌다면 승률과 연승 1위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도 솔깃하게 들려왔다.
전반적으로 올해 각 부문의 최고 기록들은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었다. 참고로 7월부터 휴직에 들어간 이세돌은 8차례의 기권패가 더해지며 9승 9패, 5할 승률로 마감했다.
○●… 여자다승왕은 조혜연, 루이는 전관 제패 여자부에선 조혜연이 30승으로 최고 순위에 올랐다(남녀 통합 24위). 그 뒤를 28승의 박지은(통합 29위), 27승의 루이나이웨이(통합 31위), 24승의 김혜민(통합 37위)이 따랐다.
또 윤지희ㆍ박지연(16승), 이슬아ㆍ문도원ㆍ김미리(15승), 이민진(14승), 김윤영ㆍ박소현ㆍ김은선ㆍ김수진(13승), 윤영민(10승) 등이 10승 대열에 들어갔다. 2차례 열린 타이틀전에선 루이가 각각 이하진과 조혜연을 따돌리고 여류국수전과 여류명인전을 제패했다.
●○… 최철한, 강자에게도 강했다 12월 한국랭킹 6위까지에 오른 6명의 기사들 간의 상호 전적을 살펴본 결과 최철한의 성적이 돋보이게 나타났다. 최철한은 총 15차례 대국에서 11승을 올려 7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했다. 이는 자신의 연간승률과도 비슷하다. 판 수가 적긴 했어도 나머지 기사들과의 차이가 적지 않앗다.
그중 이창호에겐 5승 2패, 박영훈에겐 3승 1패를 거뒀다. 그럼에도 국내 타이틀전에선 9단들만 참가하는 맥심커피배 우승 한 차례에 그친 것은 아쉬웠다. 이창호와 박영훈은 승률 4할에 못 미치며 부진했다.
○●…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더 높아진 위상 바둑팬들의 밤 시간대를 사로잡은 한국바둑리그에선 영남일보가 사상 첫 3연패 위업을 이뤘으며, 아가씨들을 울린 아저씨들의 관록이 빛난 지지옥션배도 팬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했다.
기전을 벗어난 반외 세계에선 그동안 바둑의 스포츠화에 발벗고 나섰던 대한바둑협회가 대회체육회의 정가맹단체로 승격되는 결실을 맺었고, 여자기사들이 주축을 이룬 병영바둑 보급활동도 나날이 확산일로를 걸으며 본 궤도에 올랐다. 바둑은 내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가 걸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 송홍석, 아마추어 랭킹 1위로 마감 아마추어 무대에선 송홍석이 랭킹 1위로 한 해를 마쳤다. 아마국수전과 국무총리배 세계아마선수권 우승이 주요 성적. 줄곧 1위로 달려 왔던 김현찬은 막판 아마국수전 부진 탓에 간발의 차로 2위로 밀려났다. 전국체전 금메달, 학초배 주니어부를 우승했다. 그 뒤로 유신환, 김종해, 정찬호 순으로 3~5위에 자리했다.
첫댓글 이세돌 사범 돌아와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