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칼라는 다원주의(천주교) 배도의 상징
로만 칼라 입는 목사들에게서 분명한 복음이 보이지 않아
-정이철 목사-
『 로만 칼라의 복식문화를 통해 들여다보는 목사들의 신학적 사상체계는 물론, 그냥 생각없이 보기에 좋으니까 로만 칼라의 옷을 입는 목사도 있을 것입니다.그런데 최근 "진보!" 인지 "퇴보!" 인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소위 "진보"라 자칭하는 목사들은 로마카톨릭의 이교적 영성신학(관상적 묵상.침묵훈련 등)을 비성경적인데도 목회현장에 "여과없이 도입"하는 실정입니다.
로만 칼라가 과거 개신교 목사의 복식 문화이니까 되찾아 오자라는 개념보다... 천주교 신부들이 입는 "복식 문화" 조차도 "거룩성의 의미를 부여"하고 개념없이 따라하기를 좋아하며 스스로 "작은 집"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목사들이 신부들을 "큰 집"이라 부르며 친구로 사귐을 갖기 좋아해서 그렇게 하려는 경향이 크다 합니다. 결코 성경의 바른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사귀려는 자들이 아니라 비성경적인 사상을 교류하고자 하여 "복식 문화" "직제" 같은 따위에서 그 동질성을 찾아가며 그동안 "막힌 담"을 서로 허무는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요?
"신앙"은 신학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명 삶의 문화 속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로 나타나지요. 오늘날 "문화"는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사들의 복식 문화도 성경과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연구해야 할 이유가 있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림헌원 목사
영성운동의 대가로 알려진 최일도 목사가 로만 칼라를 착용하고 있다 요즘 특이한 와이셔츠를 입은 목사들이 자주 보인다. 최근에 목회자 모임이 있어 함께 모이면서 보니 몇 목사들이 그런 특이한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동안 무관심했으나, 최근 그런 와이셔츠를 입는 목사들이 부쩍 많아지고 있어 좀 알아보았다.
사람들은 그 옷을 ‘로만 칼라’(roman collar), 또는 ‘로만 칼라 셔츠’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성직자 셔츠’(clergy shirts)라고도 부른다. 원래 ‘칼라’(collar)는 의복의 목 부위를 뜻하는 말인데, ‘로만 칼라’라는 말이 그런 와이셔츠를 부르는 말로 자리잡은 모양이다.
보통 와이셔츠의 칼라는 길쭉한 형태이고, 비스듬하게 드러누워있다. 그런데 '로만 칼라'라고 불리우는 와이셔츠의 칼라는 길이가 아주 짧다. 예전의 중.고등학교 교복의 칼라처럼 꼿꼿하게 세워진 상태로 목을 감싼다. 칼라가 검은색 하나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검은 색 칼라의 앞이 조금 트이고 그 속에 ‘각대’라는 하얀 색 플라스틱이 목을 감싸고 있는 형태도 많다.
요즘 한국 목사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이 옷은 칼라의 길이가 더 짧아진 모습이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로만 칼라와는 무관한 중국 사람들의 옷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목회자들이 중국 사람들의 의복을 모방한다고 볼 특별한 이유가 없고, 그 옷을 입는 사람들이 로만 칼라의 다른 형태라고 여기고 있으므로 지금 한국 목사들에게서 유행하는 이 옷은 로만 칼라의 개량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최근에는 장로, 집사들 중에서도 이 옷을 입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체 이런 형태의 와이셔츠는 언제 어디에서 유래하였을까? 어쩌다 이제 기독교의 목사들까지 그런 옷을 입고 다니게 되었을까? 로만 칼라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의복이 종교개혁 이후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 발전된 그 옷은 현재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과는 모양과 형태가 달라 지금 유행하는 로만 칼라의 기원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한다.
현재 유행하는 로만 칼라의 직접적인 기원은 로마 천주교회의 사제들의 옷이다. 15세기부터 로마 천주교회는 사제들을 위한 특별한 옷을 만들기 시작했고, 16세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전문화되고 보편화되었다. 천주교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옷이 예수회 신부들의 의복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천주교에서 로만칼라의 의미는 "독신과 정결, 교황에 대한 절대 순종"의 의미를 갖는다. 천주교의 신부와 신자는 당연히 구분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 옷이 원래 천주교가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도록 세운 비성경적 직분인 ‘사제’(제사장)들에게 입히기 위해 만든 특별한 복장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있었고, 하나님은 그 제사장들을 위해 특별한 옷을 만들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장 직을 임시로 불완전하게 대행하는 인간 제사장들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성별하시기 위해서 특별한 옷을 입히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완수하셨으므로 더 이상 인간 제사장직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천주교의 제사장(사제) 직분은 매우 비성경적이다. 이런 옷을 개신교 목사가 입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포도주와 빵을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살로 변화시킨다고 하며, 그것으로 하나님께 죄사함을 비는 속죄의 제사를 여전히 드린다는 천주교의 사제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려고 특별한 옷을 지어 입힌다는 것은 성경에 반하는 아주 가증한 악이다. 천주교가 사제들에게 특별한 옷을 입혀 거룩하게 구별하고 성별하려는 것이 사람 보기에는 근사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바르지 못하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완전한 제사를 믿는 기독교 목사들이 비성경적인 천주교 사제들이 입는 그런 옷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마치 그 옷으로 말미암아 거룩해지고 성별되어진 것처럼 행동하는 가증한 복장을 동경하며 따라 입어 본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부적절한 일이다. 제 정신과 신앙을 가진 기독교 목사라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심각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단지 그 옷이 실용적이고 멋있어 보여 그 동안 입었을지라도, 그 옷의 기원이 되는 천주교의 사제들의 복장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제 더 입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어리석은 짓을 한다면, 그 사람은 제 정신을 가진 정상적인 목사라고 보아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입는 옷을 통해 자신의 영적인 정체성, 사상, 신념 등을 표현하는 문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굿하는 무당들에게 적합한 옷이 있다. 무당들이 색동옷을 입는 이유는 귀신을 섬기는데 적당하고 귀신이 그 옷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하는 군인들에게 어울리는 옷이 있고,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들에게 적합한 옷이 있는 것처럼, 그릇된 신앙을 가진 천주교의 사제들의 정신과 신앙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게 고안된 옷을 왜 기독교 목사들이 좋아한다는 것인가?
지금 유행하는 로만 칼라 속에 천주교의 신앙과 정신이 베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옷을 입고 다니는 목사들은 스스로 기독교의 구원의 진리를 전파하는 목사가 아님을 선전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로만 칼라를 입는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한다고 우길 것이다. 옷은 그냥 옷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옷에 비성경적인 의미가 배어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고 다니는 그런 목사들이 어찌 참된 목사이겠는가? 그 옷이 자신에게 적합하기 때문에 입는 것이니, 그에 맞게 대우해야 마땅한 일이다.
쉽게 말해서, 로만 칼라를 입는다는 것은 최고의 적그리스도 종교인 로마 천주교의 사상과 정신을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피해가려는 다른 모든 말은 변명이고 핑계이다. 실제로 로만 칼라를 애용하면서 천주교에 대해 지극히 경계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로만 칼라는 천주교 중심의 연합운동의 상징
최근 10여 년 동안 천주교 중심의 종교연합 운동이 무르익으면서 기독교 목사들에게 로만 칼라가 더 보편화되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주교 중심의 종교연합 운동에 심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목사들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로만 칼라가 더 유행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종교다원주의 성향’ 또는 천주교와 다른 종교에 대해 성경적인 자세를 가지지 못하는 ‘맨붕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목사들이 증가되면서 동시에 로만 칼라가 더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실제로 로만 칼라는 천주교 중심의 종교 연합 운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분명한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일찍 로만 칼라는 착용하고 다닌 목사들 가운데 유독 감리교 목사들이 많았다. 전 세계적인 조사 통계를 내 보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랬다. 왜 감리교 목사들이 비교적 일찍 로만 칼라를 착용하기 시작했을까?
지난 2006년에 감리교와 천주교 사이에 ‘의화교리’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의화교리에 대해 감리교와 천주교가 합의를 보았다는 것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가? 에 관한 신학적 합의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감리교 목사들과 천주교 신부들 사이에 종교적 소통의 대로가 열렸다는 것을 뜻한다. 서로 같은 신념과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떠나 천주교로 가는 신자들이 생기면 “뭐 어때요? 천주교도 하나님 믿고 구원을 얻게 하는 종교입니다!”라고 감리교 목사들이 쉽게 말하기 시작하는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를 같은 하나님 섬기는 종교로 인정하는 감리교의 목사들이 천주교 사제들의 복장을 따라서 입는 일은 별 일도 아니다. 그래서 감리교 목사들이 더 일찍 로만 칼라를 입기 시작했다. 혹시 감리교 목사들이 자신들이 입는 로만 칼라가 존 웨슬리가 애용했던 복장에서 유래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존 웨슬리는 일평생 로마천주교와의 신학적 관계를 단절하지 않았던 영국의 성공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감리교는 웨슬리가 죽은 후 그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 웨슬리가 영국 성공회의 울타리 안에 머물려고 했다는 것은 동시에 그가 로마 천주교의 사상과 정신에서 완전하게 벗어나려고 마음먹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감리교 목사들이 로만 칼라를 애용한다면, 어떠한 경우에도 천주교와 무관하다고 변명할 수 없다.
로만 칼라를 애용하는 목사들의 교단 배경을 조사하면 천주교와 연합하는 교단들, 종교다원주의와 종교통합 운동에 대해 호의적인 교단의 목사들이 월등하게 많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보면 천주교와 연합하는 CRC 교단의 목사들도 종종 로만 칼라를 입는다. WCC와 천주교를 동시에 수용하는 PCUSA 교단의 목사들도 로만 칼라는 자주 입는다. 천주교와 잘 소통하는 루터교, 성공회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천주교, 관상기도, 영성운동, WCC 등에 대해 그릇된 자세를 가진 목사들에게서 천주교 사제들처럼 일상에서 특이한 옷을 입는 경향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천주교의 마더 테레사 등에 대해 호평하는 설교를 자주하고, 천주교에서 발전한 관상기도에 심취했던 이동원 목사, 이동원 목사와 함께 레노바레 등의 영성운동하는 최일도 목사 등이 로만 칼라를 자주 입고 나타난다. 한국의 상황을 보면 대체로 WCC와 천주교에 대해 관대한 예장 통합의 목사들과 감리교, 성결교 등의 목사들이 로만 칼라를 자주 입는다.
반대로 천주교와 WCC에 대해서 엄격한 태도를 고수하는 예장 합동, 합신, 고신의 목사들 중에서는 로만 칼라를 입는 목사들이 많지 않다. 로만 칼라는 단순한 옷이 아니고 그 옷을 입는 사람의 정신과 사상의 표현이다. 그래서 로만 칼라를 입는 목사들을 곱게 보아서는 안된다. 로만 칼라를 입고 강대상에 서서 설교하는 목사들은 이미 영혼의 맛이 가버린 자들이다.
그들의 영혼 속에는 사탄의 시큼한 된장이 들어가 버렸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용인하며, 훌륭한 목사라고 존경하고 받들어 주는 교회들도 제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로만 칼라는 단순한 옷이 아니고, 배교하는 이 시대의 정신과 사상이 표현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로만 칼라를 입고 다니는 목사들에게서 된장 냄새가 난다.
[출처] 로만 칼라는 다원주의(천주교) 배도의 상징(로만 칼라 입는 목사들에게서 분명한 복음이 보이지 않아)/정이철|작성자 soph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