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오면 항상2015년 4월을 생각한다
인도를 거쳐 카투만두에 도착한첫날 카투만두에서 제일 좋은호텔로 하루잡자...포카라로 이동하면이제 숙소는 엄청 초라한곳으로 잡을것이다 이 생각이 우리의 목숨을살린것같다
로비로 300달러를 환전하기위해 내려왔을때 내앞에 앉은친구와 천장의 상들리에가 저만큼갔다가 오는 큰 움직임을 느꼈다
호텔정원의 화분이 무너지고 창밖엔 새들이 검게 무더기로 날아다니고 하늘엔 흰먼지가 가득찼다 아!! 뭔일이!!! 큰일이 났구나
환전하려던 300달러를 호주머니에 넣고 우리는 재빠르게 거리로 나왔다
후에 내친구가 달러300불을 빛과같은 속도로 챙기던 나의 모습을 두고두고 웃음소재로 이야기했다 ㅋㅋ
거리엔 전봇대가 무너지고 사람들의 웅~~웅 거리는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들려왔다
핸드폰이 되지않는다
정전이되고 어떤소식도 알수가없다
여진이 계속되고 이빨이 딱딱거릴정도로 공포가 밀려왔다
오후쯤 핸드폰이 되기시작한다
엄청난카톡과 문자와 전화가 폰에 기록으로 남아있고 남편과 아들딸의 문자가 거의 실신일보직전같은 내용으로 왔다
일단남편에게
지금상황이 살아나가긴어려울것같다
통장비밀번호와 혹시 보험이 된다면 좀더 가입하고 ~~여행떠난후 보험가입이 안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ㅠ,,,,,
보험알아보고 서랍몇번칸에 내보험증서있고 혹시내가잘못되면1억정도는 우리친정에 줘라고했다
또다시 핸드폰불통
여진이 시간걸려 계속되었다
사방에 건물이 없는 공터에 온시민이 다 노숙으로 밤을 지새우고 우리는 히말라야트레킹하고 포카라에서 넘어온 청년들의 탠트에서 침낭과 옷을 얻어 꼴딱 밤을 지새웠다
삶과 죽음이 찰나의 공간에 존재하며 50년넘게 살아온 고생 쌔빠지게한 나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래 ...그렇게 아등바등살더니 이제 죽게생겼다 하며 나를 몰아치고 휘두르고 ㅠㅠ
비행기표를 구해 탈출하려고 여기저기수소문하고 ...
한국현지인의 집에서 불안과초조속에 지내는데 마당의 붉은꽃은 어찌그리 이뿌든지 ~~
방콕은실이에게.
한국으로 바로가긴 너무억울하다 트라우마가 생길것같다
방콕으로오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비싼가격의 뱅기값으로 친구와나는 방콕으로갔다
5일만에 네팔을 탈출하게 된것이다
계속되는 여진속에 카투만두공항에서 9시간 딜레이가 되며 속은 까맣게 탔다
공항에서 만난 네팔여인이 우리나라네팔에 여행을왔는데 이런일을 겪어 정말 유감이라며 꼭 안아주었다
네팔사람들의 순수함과 착함은 정말최고인것같다
시외터미널같은 네팔공항에서 네팔돈은 숙소현지인에게 감사로 다주고 잔돈남은것으로 샌드위치와커피를 사먹는데 눈물이 흐를정도로 맛있었다
방콕에서 친구가 환영해주고 가장 힐링이될곳을 알려줬다
콧창이란 섬...꿔창이라고도 부른다
해변이 아주이쁜 섬이었다
정말힐링이 되는 섬이었고 바닷가옆에 방갈로 숙소를얻어 지진도 다잊고 일주일을 멋지게 보냈다
다시 방콕으로와 내친구를데리고은실이네가서 오래오래 태국을 즐기고 왔다
정말 고맙고고마운 친구다
4월이 오면
항상 네팔지진이 생각나고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한번더 생각해본다
욕심도
작은분노도 ......뭣이 중헌디 !!하며
내려놓게 된다
언제 자유로운 여행길이 열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걸었던 그 골목길들이 모두 그대로이길 ~~~
내려놓은 맘을 자꾸 주워올리는 내 욕심을 나무래본다
그때 신세진현지인사모님이 코로나로 귀국하셔서 동해에 터를잡으셨다고 연락이 왔다
몇번한국올때 마다 뵙지만 언제만나도 고마운분이다
다음주쯤 동해로 만나러 가야겠다
아름다웠던네팔
그리고 태국의 콧창섬
섬은 충분히 두려움을 치유해주었다
흰모래
밤이면 들리는 해변옆카페
해산물로가득찬 해변레스토랑 ...
죽다가 살아온 우리는 후회없이 돈을 팍팍썼다
파도소리 커피 그리고 방갈로에서 듣던 음악 ~~~ 우리는 힐링에 온힘을 기울였다 다시가고픈 섬이다
첫댓글 네팔지진때 신세졌던 한국인네팔가족들이 코로나때문에 한국에 돌아와 새터전을 동해시에 잡았어요 .며칠전 연락이와서 5월엔 동해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어요 코로나가 이렇게 전세계를 바꿔놓는군요
그때의 인연으로 몇번씩 만나게되어 참좋습니다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교차되고, 그느낌이 생생히 전해지네요. 살아난 슬로우님 축하하고, 그대의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 쭈 ᆢ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