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집을 짓다
이향숙
두 번째 돌을 맞이했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맞았던 돌은 기억할 수 없었고, 부모와 가족들의 축하 속에서 지나갔을 것이다. 헌데 두 번째 맞는 돌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각오를 다지게 한다. 옛날에는 환갑을 두 번째 오는 돌로 잔치했다. 환갑까지 살아줘서 고맙다고 축하한 것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환갑잔치를 하지 않는다. 환갑이면 한창나이이고 인생은 육십부터란 말도 있다. 인생 백세시대를 맞이하여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한다. 이제 나는 일흔 일곱 두 번째 돌을 맞이하여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보리라.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십 년에 한 번씩 보수하며 쌓아 올릴 것이다.
환갑을 지난 나에게 두 번째 돌잔치라니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기도 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중위 나이에 따르면, 백세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활동 나이가 현재 나이에서 17을 뺀 나이라고 한다. 옛날 사람이 환갑을 맞던 신체적 나이와 지금의 신체적 나이가 17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돌을 맞이해서 백세시대를 준비하는 것은 자기만의 지붕을 만들고 구체적인 기둥을 세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17 년의 세월을 벌은 셈이다. 그 시간을 덤으로 얻었으니 살아오면서 마음에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 기둥을 세워보기로 했다.
첫 번째 기둥은 멋진 애인을 만드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진솔한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혼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서로 공감한다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어떤 허물도 감싸줄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두 번째 기둥은 좀 더 품위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그동안 못난 자신이 싫어 자신을 자학하며 굴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봄이 봄인 줄을 몰랐다. 가파른 보릿고개가 너무 힘겨워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없다. 가을이라고 무엇이 다를까. 때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도 했고 옥죄여 오는 비애로 허우적대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문학과 함께 걸어가게 되었다. 나의 삶이 선택한 글쓰기였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얻고 싶어 고뇌하며 가슴앓이하면서도 좋은 글을 써 품위 있고 격조 높은 삶을 살고 싶다..
세 번째 기둥으로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마음과 달리 영어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종일 단어 하나를 외워도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아 포기하고 만다. 나이 탓인가 언어는 어려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머리에서 지운지가 오래다. 그런데 올해 나이가 많은 사람이 수능시험에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영어점수는 적당히 받았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젊은 아이들과 같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방송에서 영어도 고등학생들 틈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했다. 나이가 문제 되지 않는가 보다. 나도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긴다.
이러한 세 기둥을 세워 이뤄내는 삶 중에 우선 세 번째 성취를 어떤 방법으로 해낼까 고민해보았다. 학원에 가는 것은 시간을 맞출 수 없어 불가능하고 복지 센터도 대면이라 갈 수가 없다. 손녀를 돌봐야 하니까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어느 날 위층에 사는 이웃 형님을 만났다. 그는 방송 통신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 형님도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공부는 하지 못했단다. 배우지 못해 가슴에 돌덩이를 안고 살았는데 지금이라도 배우니 즐겁다며 활짝 웃는다. 강의는 방송으로 듣는다고 했다. 그 말이 내 귀를 솔깃하게 했다. 나도 방송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다.
방송 통신 중학교에 전화했다. 담당 선생님께서 올해에 학생모집이 끝났으니 공부하고 싶으면 다음 해에 지망하라고 했다. 나는 공부만 할 수 있느냐며 선생님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임시회원제도가 있단다. 학적이 필요 없고 공부만 할 사람은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너무 반가웠다. 나처럼 영어가 부족한 사람은 누구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수강료도 없이 정부에서 해주는 유능한 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좋은 세상이었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무한 반복으로 들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예전에 이런 제도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때 그 가파른 보릿고개를 견뎌낸 사람들 모두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제한적이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부족하다. 기억력이 깜박깜박해도 하고 또 하면서 욕심을 부려본다. 언제나 시간이 모자란다. 그렇다고 뚜렷이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데 말이다. 어쨌든 나이를 잊고 산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하랴,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러다가 몸이 따라주지 못하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인생 백세시대를 맞이해서 기둥을 세우고 원하는 지붕을 올려 근사한 집을 지어야겠다. 두 번째 잔치에 친구들을 초대한다면 무엇 하나 보여줄 것 없는 한심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앞으로의 계획과 다짐을 보여주는 자리가 될 거 같다. 지금부터라도 나만의 집을 멋지게 지을 거라고 말이다. 노후 생활이 삭막하지 않게 멋진 애인도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외국 여행에서도 의사소통의 날을 기대해 본다.
그런 후에 첫 번째 기둥인 멋진 애인을 만드는 일과 두 번째 기둥인 문학적 성취로 더 품위 있는 사람이 되는 일도 꼭 해내고 싶다. 백세시대를 준비하는 자기만의 지붕을 만들고 구체적인 기둥을 세우기 위해서 나는 오늘을 더 열심히 살고자 한다. 튼튼한 기둥을 세워 멋진 집이 탄생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의 연속이다. 오늘의 다짐이 내일의 기둥이 되어, 결국 나만의 멋진 집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의 나날들이 행복과 만족으로 가득 차길 기대하며, 우리말을 마음껏 부려보고 싶은 목마름을 해소해 보리라. 이 길을 함께 걸어갈 친구들과 소중한 인연들에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십 년에 한 번씩 보수하여 쌓는다면 몇 층이나 더 쌓을 수 있을까. 함께 꿈꾸고 함께 이뤄나가는 멋진 미래를 향해, 스스로 더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나는 다짐해본다.
첫댓글 작품 <나만의 집을 짓다> 잘읽었습니다.
이향숙님.
좋은 수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