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수가 나와 “서울의 달” 구슬프게 불렀다.
어쩌면 나와 같이 살았을까.
79년에 서울( 부천)에 와서 지금 서울 강동구에 있다.
긴 시간이지만 나름대로 희로애락이 느껴진다.
난 서울의 와서 많은 직업을 일을 했고, 또한 주경야독 공부도 했다.
나는 중학교가 전부는 아니었다. 친구 말에 따라 서울로 와서 검정고시를 준비 했다.
물론 새벽에 강남에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공부를 했다.
2가지 일, 또 돈이 모자라 잡부도 했고, 배달도 했다.
그렇게 하니82년에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친구들과 같은 해에 합격했다.
군대를 갔다 와 또 다시 일을 했다.
한국방송통신 대학교 경제학과를 선택했고, 열심히 공부, 연애를 했다. 봉산탈춤을 배웠고 세상에 부럽다. 돈 이 조금 벌고 내가 취미생활을 했다.
누나가 집이 싸게 나왔다고 해서 은행에 융자받고
내 이름으로 했다. 그랬더니 소문이 무서워 “총각이 집을 샀어”
그 여자가 내가 왔다. 결혼도 하고 사업도 했다.
난 그 집이 있다. 작은 빌라지만 서울에 집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잘 나가다 어느 날 병이 났다.
지금 11년이 됐다. 꾸준히 치료를 받고, 약 간에 취업을 하여 돈을 받는다.
“서울의 달을 ”보면서 앞으로 나갈 길에 생각이 깊다.
객지에 살면서 무수한 사연이 많다.
사기 당하고, 다단계 빠질 번했고, 열심히 살았다.
그래도 내가 20대에는 돈 보다 공부, 취미 생활을 하자.
가장 잘한 것이 20때는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
30대에는 강동 야학 학생들 가리켜 주고 있다.
50대에는 복지원에서‘옹심이’ 활동 하고 있다.
내가 글 쓰는데 무수히 글감이 많다.
아들과 토론해서 어떤 사람이 될까.
첫째로 꾸준히 운동해 몸이 나갈 것이다.
두 번 는 가족과 같이 철학이 있는 유머스럽게 행동하자.
세 번째 나만 있은 게 아니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 도움이 되자.
서울에 온지 40년이 지났다.
학교 다니고, 사업하고, 결혼하고, 병이 나고,
다시 재활 운동하고 취업하고 인생이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후회하지 않고 다 함께 동거동락(同居同樂) 할 것이다.
않을 것이다.
“서울에 달” 이 웃으면 살 것이다.
남은 인생(人生) 천천히 행복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