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살리는 가까운 먹을거리, 꾸러미농산물 회원으로 살기
이 선 화 (유성구 노은동)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이 되고부터 내 삶에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세상 구석구석의 이야기에도 기웃거리게 되었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도 먹을거리에 대한 나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슈퍼마켓의 식품코너에서 무심코 집어 들던 먹을거리에서 유통기한과 원재료를 확인하게 되었고, 관심은 더 나아가 먹을거리가 내 손에 오는 과정에까지 쏠렸다. 신문과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와 유통경로 등 시장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되면서 철학 없는 이윤가치에 목메는 상업주의에 더 이상의 놀아남은 벗어 나야겠다는, 좀 더 현명한 먹을거리를 찾아야겠다는 의지가 내게 생긴 것이다.
먼저 시작한 것은, 농약을 안 뿌린, 혹은 덜 뿌린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가족의 건강에 불안한 마음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한살림과 생협의 조합원이 된 것은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식구들의 밥상을 준비하던 즈음에 우연한 계기로 이웃들과 텃밭농사를 짓게 되었다. 10평 미만의 땅을 분양 받아, 봄에 씨뿌림을 시작으로 새싹이 나고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첫해에는 먹을거리의 수급차원이 아닌 그것들의 자람에 눈이 빠져 정작 농작물의 수확은 관심 밖의 일이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욕심이 생겨 재배하는 작물의 가짓수도 늘어나고, 채소 키우는 노하우도 터득해 가면서 텃밭은 온 가족의 즐거운 놀이터가 되어갔다. 무엇보다도 행복했던 것은 내가 키운 채소들을 지인들과 나눠먹으며 정을 쌓아가는 일이다.
그러던 중 3 년 전에 지역 시민단체에서 개설한 도시농업교육과정에서 생태가치와 자립하는 삶에 대해 배우고 깨달은 시간은, 내 인생이 변화하는 참으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뿐 만 아니라 그 곳에서 시골농민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가까운 충남 청양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귀농 10년차의 농부인데 매월 일정액의 회비를 내고 그곳에서 철마다 나는 농작물꾸러미를 건네받고 있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보내오는 포고버섯을 시작으로 두릅 등의 산나물과 된장, 감자, 고구마, 알밤, 들기름, 참기름, 고춧가루, 쌀, 콩, 땅콩, 잡곡 등을 배달받는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우리 마을 회원들에게는 생산농부가 직접 배달을 온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농사를 짓는, 생산자의 얼굴도 모르고 먹는 먹을거리와는 느낌부터 다를 수 밖에 없다. 구수하고 향긋한 먹을거리에서 생산 농부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그에 대한 믿음이 내가 먹는 먹을거리에 대한 믿음으로 굳어졌다.
회원들은 회비만 내고 받아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 시간이 나는 대로 그 곳에 가서 농사일을 돕는다. 내가 먹을 쌀의 벼를, 봄에 내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잘 자라라고 눈길도 한번 주고, 가을이 되면 생산자와 같이 수확의 기쁨을 맞는다. 올해에는 봄철에 감자심고 손모내기 하였고, 여름에는 고추모종 심고 감자캐기, 붉은 고추따기, 가을에는 알밤을 줍고 고구마도 캐고 왔다. 내가 사는 노은동에서 승용차로 30분인 가까운 곳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시간 날 때 하는 일손돕기이면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기도 하였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농산물들은 단순한 먹을거리의 차원을 넘어 심오한 철학과 감사함을 함께 하는 것이기에, 그것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먹을거리를 통한 사람과의 소중한 관계와 소통, 그리고 그 너머 지구를 살리는 환경의 인식까지……. 그렇게 먹을거리는 나에게,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를 알게 해주었다.
결혼 10년 차에 접어든 나는 올해 처음으로 김장담그기에 도전을 했다. 배추는 물론, 배추 씨앗 하나하나를 포트에 심어 모종을 내고, 밭에 심는 일손을 내 손으로 돕고 나서야 내게 온 배추이다. 이번 우리 집 김장의 가장 큰 특징은 젓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황태와 다시마, 양파, 대파로 육수를 내어 그 물로 찹쌀풀을 끓여 양념을 했다. 매번 시어머님께서 담가주셔서 얻어만 먹던 김치를 내 손으로 직접 담그니, 그 감격과 뿌듯함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15포기의 김장,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하여 먹기조차 아깝다. 시어머님에게는 당신 고유의 할 일을 빼앗은 버릇없는(?) 며느리일수도 있겠다. 아이의 일기장엔, 우리 집 부엌에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며 김장 담그기의 레시피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렇듯, 우리 집 먹을거리는 생산지인 청양에서 농부의 손을 거쳐 보내오지만, 나의 작은 일손의 보탬과 마음이 함께 하니, 이보다 더 좋은 먹을거리는 없지 싶다. 아울러 지구 저 멀리에서 배타고 온 수입 농산물이 아닌 바로 가까운 곳의 먹을거리라니 누구에게라도 자랑할 수 있겠다.
첫댓글 제가 쬐끔 심부름했습니다 ~~ㅎㅎ
급한 부탁에, 자발적이지 못한, 이미 정답을 알고 쓴듯한 티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요.
여러모로 감솨~~
아하~ 우리가 먹은 밥의 정체가 이거였군요.ㅎㅎ 공주님 글재주가 남다름을 진작 알았는데
다시 보니 확실하군요. 짝짝짝!!!!!!!!
뭐 공주님 글발이야 표준버전 이상이라는 거 모를 사람없을테고...벌써 한턱 쏘셨다니 그게 좀...ㅎㅎㅎ
내가 금상 받은 글도 읽어봤는데, 공주마마 글이 훨씬 낫습니다. 심사위원들 글 볼 줄 몰라요.
내아들이 떨어진걸 봐도 심사위원에게 문제있어
것도 둘째아들 ㅎ ㅎ
버들치님 / 그러다가… 자칫하면 ‘孟母’가 아니라
‘盲母’가 된다오. ㅎㅎ
제 아들의 녹색생활 실천사례는 교훈적이라기 보다 엽기적이라서 떨어졌을꺼라는 심증이...ㅋㅋ
우리집은 아침에 일어나 식구 네명이 줄을서 소변을 보고 물을 한번에 내린다---물절약 실천사례
공주님, 글 잘 쓰시네요~~
잘 읽었어요.
그러나 글보다 그대의 삶의 변화와 실천에 더 박수를 보냅니다.
버들치 댓글을 보니, 상진이 글도 궁금해집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