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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배다리 마을에서 태어나 귀향, 이제는 돌아와 이곳 봉동 마을에 터를 잡은 뜻을 그냥저냥 알 것 같아
대한민국 시인, 황지우 선생이 지금 전남 해남군 현산면 봉동 마을에 살고 있다.
황 선생의 대표작으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는 너다’, ‘게 눈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어느 날 나는 흐린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뼈아픈 후회', '너를 기다리는 동안'등이 있다.
시인 황지우의 본명은 황재우, 최근 ‘제28회 석은 김용근 선생 민족교육상’ 수상자인 황광우(64) 작가의 형이기도 하다.
황지우 선생은 1952년 1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배다리 마을에서 태어나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미학과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인터넷에 띄워져 있다.
해남북일초등학교 총동창회를 대신하여 해남북일향우회 홍성민 전 회장 일행이 이렇듯 유명한 황지우 선생을 찾아간 것은 선생의 고향마을에 있는 북일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축하하는 축시를 부탁하고자 였다.
선생은 4살 때 광주로 이사를 가서 그 학교 졸업생은 아니지만 축시와 당일 행사에서 직접 그 축시 낭송을 해 줄 것을 오로지 선생의 애향심에 기대 보고자 무작정 찾아 간 것.
봉동 마을 작은 저수지 위 야산자락 끄트머리에 터를 잡은 선생의 집은 멀리서 봤을 때 대단한 외관과는 달리 상당히 소박하게 지은 것 같으면서도 엄청 공을 들여 지은 티가 뒤뜰과 내부에 있었다.
60년 세월 넘게 한 객지 생활에서 은퇴하고 이제는 돌아와 이곳 봉동 마을에 터를 잡은 뜻은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지만 선생의 이야기 속에서 그냥저냥 알 것 같았다.
오는 11월 11일 북일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축시를 부탁드리자, 이내 기꺼이 화답을 하신다. 어떤 축시가 탄생하여 선생의 또 하나의 대표작이 될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북일초등학교의 ‘작은학교살리기’운동과 관련 현재 선생께서도 이곳 현산남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에 동참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작은학교 살리기에는 첫째 주거지, 그리고 일거리가 확보되어야한다”고 하신다. 정답이면서도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00년 전통의 북일초등학교가 전교생 22명에 그쳐 폐교 위기에 직면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학교살리기’를 시작하여 올해 초 22가구 97명이 이주를 완료했으며 이중 초등학교 32명을 포함한 학생 42명과 어린이집 및 유치원 원아 10명, 학부모 등을 유치했다.
현산남초등학교는 1939년 현산공립국민학교 부설구산간이학교로 개교한 이래 졸업생 4,700여명을 배출했으나 최근 들어 전교생이 10명에 그쳐 그야말로 폐교의 위기에 처해있는 학교다.
이에 북일초등학교의 사례를 들며 황지우 선생이 주민대표들과 ‘현산남초등학교 살리기’에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황 선생은 몇 일전 김대중 전남교육감 당선인과 간담회 자리에서도 이 문제를 화두로 꺼냈다고 한다.
학교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뛰고 있는 황 선생의 수고가 좋은 결실로 다가오기를 기대가 된다.
그리고 황 선생은 틈나는 대로 특강을 나서기도 하는데 근래 해남고등학교에서 가진 특강에서 학생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선한 자세에서 지역의 희망을 보았다고 하면서, 해남의 청년들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한편, 황지우 선생은 1973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에 가담한 혐의로 강제 수감, 1980년 봄에 5.18 민주화운동 가담으로 구속, 그 사유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제적,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학위,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 박사과정 수료, 1994년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97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한예종 총장을 역임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이 입선하면서 등단, 한국 해체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인, 1990년대 젊은 시인들에게 많이 영향을 주었던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