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성당 수해로 피해가 가장 큰 곳은 옥탑방에 든 내 집무실이다. 지난 5개월 동안 성당 정돈으로, 사제 집무실 정리는 손도 못 대고 있다가, 2주 전에야 겨우 책장을 들여 정리를 시작한 참이었다. 다른 곳에 쌓아두었던 책 박스와 자료 상자들도 새 책장에 정리하려고 방에 모두 들여다 놓았었다. 그런데 며칠 뒤, 폭우가 옥상을 덮쳤고, 때마침 배수구가 막혀서 집무실 맞은편 옥상 문턱을 넘어서 철철 넘쳐흐른 것이다. 집무실을 먼저 물로 채웠고, 계단을 타고 성당 전 층에 흘러내렸다. 성당 건물 옆쪽 누수는 또 다른 문제였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바닥에 있던 상자는 완전히 물에 흠뻑 젖었다. 책들은 눈물을 흘리며 부서져 내렸고, 종이 자료들(대체로 엄선한 논문들)은 흥건하게 젖은 벽돌처럼 모두 달라붙었다. 젖은 책들은 대부분 구제 불가였으니, 몇 권은 펴서 말려볼 생각을 했다. 종이 자료들도 한 장씩 들춰보며 몇 개는 이곳저곳에 널어보았다. 조금은 건질 수 있겠다. 그러나 젖은 책과 자료 90%는 폐기했다. 방에 든 책의 1/3은 되겠다.
집으로 들어갔어야 할 앨범 상자가 어찌 성당으로 옮겨 있다가 물 피해를 보았다. 사택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책 박스들을 성당으로 옮겨 놓다가 이삿짐센터에서 섞어 버린 모양이다. 앨범 전체를 해체하고 젖은 사진을 조심스레 떼어 방바닥에 널어 말렸다. 금세 말랐고 손상은 없었다. 대체로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내가 찍은 사진들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떼어내며 옛 추억을 떠올려 크게 웃으며 보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고마운 일이다.
작은 피해로 호들갑일 수도 있겠다. 깊은 추억과 배움이 깃든 사물은 소중하다. 지금도 언제나 들춰볼 수 있는 연구와 사색의 도우미들은 좋은 친구이다. 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마음 아프다. 버려서 구겨 넣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도 버려야 한다.
동시에, 눈꼽만큼만 한 수해를 겪는 이 처지가 참으로 당황스럽고 언짢은데, 생활의 터전을 다 잃은 분들은 어떨까 마음이 아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반지하에서, 도로에서, 산에서 하릴없이 생명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니 무참하다. 그 처지를 두고 허황하고 무책임한 언행을 보이는 이들을 보니 치가 떨린다.
마르긴 하겠으나, 여러 구석이 부푼 책들과 비틀려 마른 종이 자료를 나중에라도 들춰보며 여러 상념이 잠기겠다. 이것은 이것대로 추억이 되겠지 싶다.
선풍기와 제습기를 돌려대며, 이리저리 돌려 말려보고 있으니 어디 좀 보자. 근사하게 집무실을 꾸며놓고 포도주 한 잔을 들고 조촐한 파티를 하려던 계획은 조금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