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가 좁고, 자원이 거의 없는 국가인 스위스, 이스라엘, 스웨덴은 국제 무대에서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올라 있다. 강한 기술력과 격조 높은 문화 그리고 근면한 국민성을 바탕으로 국가 차원에서 국제 경쟁력을 높여 온 결과다.
험악한 스위스의 자연 조건은 국가전략을 일찍 결정지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데다 국토의 70%가 산을 이루고 있는 땅이다.
우리나라처럼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고 내수 시장이 좁아 밖으로 내다 팔아야만 하는, 그래서 스위스기업들은 일찍이 가격 싸움을 포기했고 틈새 시장에서 최고 제품, 최고 품질로 승부했다.
전세계에 공급되는 볼펜심의 80%가 스위스 동남부 루가노에 위치한 정밀 기계회사 미크론 아뇨(종업원 400명) 공장에서 제조한 기계로 생산된다. 볼펜심 제조는 볼펜 끝에 직경 0.3mm의 조그만 볼펜알을 조립해 넣는 초정밀 작업으로 0.02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대당 2억 7,000만원(400만 스위스프랑) 하는 볼펜심 제조 기계를 연간 100대 생산하며 전량 수출한다.
이 회사 마케팅 수석 부사장 로랑뷔유는 우리는 남이 만들지 않는 것만 골라 만든다. 전략적으로 승산이 있는 분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 세계 1위가 되는 것이 회사 전략이다"라고 말한다.
스위스에 자동차공장은 없지만 최고 품질의 자동차 부품을 만들어 BMW, 포드 등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에 납품하는 회사가 많으며, 선박 회사는 없어도 선박 엔진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한다. 탱크는 못 만들지만 탱크의 눈이라 할 수 있는 레이더 장치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스위스인들은 "독일이 머리카락을 만들면 우리는 거기에 구멍을 뚫는다"라고 말한다. 스위스는 더 이상 시계와 관광의 나라가 아니다.
승산있는 데만 역량 집중
좁은 국토(남한 면적의 41%)와 적은 인구(675만 명)에도 불구하고 1990년에는 636억 달러의 수출을 기록했다. 이는 4,300만 인구의 한국이 세운 수출 기록과 맞먹는다. 1인당 소득은 한국의 6배 (3만 4,000달러)나 된다. 대부분의 수출이 기계류(29%), 화학제품(21%), 금속, 자동차 부품(10%), 정밀 기기(14%) 등이고 시계는 7%에 불과하다.
패션시계 '스워치'와 스위스 군용 나이프로 불리는 스위스 포켓칼은 스위스라는 국가가 그대로 농축되어 있 히트상품이다.
1970년대 중반 마이크로 전자 기술로 무장한 값싼 일본 전자시계(카시오·세이코·시티즌)의 출현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스위스 시계 산업은 바로 이 스워치로 기사 회생했다.
롤렉스, 피아제 등 고급시계만 만들던 스위스는 10대와 여성 고객을 겨냥한 패션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품수를 91개에서 51개로 줄여 '고품질의 값싼 시계'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예술적 디자인이 가미된 데다 '스위스 메이드'가 보장하는 품질과 기술,부담없는 가격으로, 예술 작품으로 격상된 패션 감각이 어우러진 합작품이었다.
오메가, 론진, 티소트, 라도 등 네 개의 브랜드를 모두 합쳐 SMH라는 이름의 그룹을 만든 뒤, 엔지니어 출신의 니콜라스 하이에크에게 경영을 맡겨 젊은층을 위한 패션 시계 스워치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철마다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시계 디자인으로 채용했다. 과감한 디자인 투자로 '스워치 마니아'들을 만들었고,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자신의 수집품 목록을 공개하는 사이트들이 100개가 넘는다.
신기술·디자인의 승부
한편 1938년 네스카페 외에 인스턴트 코코아인 퀵(1948), 고급 커피 테이스터스 초이스(1966)등 수많은 인기 상품을 만들어낸 헨리 네슬레는 현재 74개국에 489개의 공장을 가지고 48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워치, 네슬레 등의 성공 사례는 신기술과 디자인, 시장 변화에 대한 적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스위스의 포켓칼은 최근 전통색인 붉은색 대신 파스텔의 연하고 부드러운 색을 사용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스나이프'라 명명하고 목표 시장도 스위치와 같은 10대와 여성으로 삼았다.
침대 기계 역시 스위스의 고가특화 전략이 성공한 분야다.
스위스 동북부 생갈론 시의 스퓰사는 종업원 550명으로 세계 매트리스 기계 시장의 60%를 장악한 회사로, 미국의 시몬스사도 무릎을 꿇었다.
침대 기계의 부품은 300개 밖에 안 되는 중소 기업형 산업으로 침대 메이커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는 기동성 있는 중소기업이 유리하다.
스퓰 사는 미국에 현지 공장이 있고 지난해 생산 제품의 98%를 수출했다.
대규모 생산 방식이 오히려 불쾌해지는 특수 분야를 찾아내 고품질로 승부하는 것이 스위스 기업의 공통된 전략이다. 작은 것으로 큰 돈을 버는 지혜다.
한국의 모나미, 문화연필도 미크론 사 제품에 의존한다. 스퓰사의 전자동 스프링 조립기 한 대 값은 66만 프랑(3억 6,300만 원), 에이스침대 등 한국 침대 업체 90%가 스퓰 사에 달러를 바치고 있다.
이 회사, 기술개발 책임자 한스크뇌펠 씨는 "기업은 연구하는 곳이 아니다. 연구는 대학에 맡기고 우리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회사 개발실에는 석사나 박사가 없다. 4년제 대졸자가 최고 학력이고 대부분은 전문대와 직업학교(공업고등학교)출신으로 "생산기술 개발에는 고학력자보다 현장경험이 많은 엔지니어가 더 낫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기능인 우대로 경제강국을
스위스기업의 기술 개발력은 적지만 소수 정예로 짜여져 있고, 국제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도록 대학은 세계 어느대학보다 '산업지향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스위스의 1990년대 공작 기계 수출액은 27억 달러로 독일(52억달러), 일본(39억 달러)에 이어 세 번째 규모이며, 미국(11억달러), 영국(8억달러), 프랑스(6억달러) 3개국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
"본사 제품은 스위스 기계로 생산됐으므로 품질을 보증 할 수 있습니다."어떤 국내 대기업 홍보책자에 나와있는 문구다. 한국 기업들이 스위스기계를 품질보증서로 사용하고 있는 점은 기술자와 교수가 함께 뛰는 스위스식 기술개발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능인을 열심히 교육하고 우대하는 사회 구조가 미니 국가 스위스를 무시 못할 경제 강국으로 만든 것이다.
1971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용할 만큼 보수적인 국가. 그러면서 컴퓨터 보급률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스위스에서 스워치와 스나이프는 스위스인들의 타고난 비즈니스감각을 보여주는 사례고 우리 한국기업이 타산지석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첫댓글 품질에 대한 신뢰성으로..자원의 낭비를 막는것이 스위스에서 배울점 인거 같습니다..우리나라두 비슷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