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도 미국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과 북베트남군의 지원을 받은 파테트 라오(Pathet Lao) 반란군과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구정공세에서 받은 타격으로 비틀거리고 있었던 북베트남은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월경 작전으로 다시 한번 타격을 받은 후 유리한 군사적 상황을 조성하기 위한 공세준비에 전력을 경주하고 있으면서 비밀협상에서 미국 측의 제의도 모두 거부하였다.

라오스의 파테트 라오 반군
북베트남군은 라오스 내에 있는 호치민 통로를 계속 확장하고 있었고 1970년 10월에는 1971년도 봄에 남베트남 북부 2개 성 지역에 대공세를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북베트남군은 라오스 회랑 지역에 제304, 308, 320 사단과 2개 포병연대, 1개 기갑연대를 투입하였고 26,000여 톤에 달하는 보급물자를 비축하고 있었다.
이러한 북베트남군의 공세준비 활동을 탐지한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기 시작하였다. 적의 공격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선제공격을 감행하느냐 하는 두 가지 대안이 검토되었다. 적의 공격을 기다리면 기다리는 기간만큼 적은 증강될 것이며 강력한 적 부대에 대한 선제 공격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고 자칫 패배할 가능성까지 있는 것이다.
1970년 12월에 닉슨은 에이브럼스(Abrams) 대장에게 라오스 회랑에 대한 공격계획을 제출하도록 지시하였다. 그의 지침은 현재 국내의 반전여론을 감안하고 의회조차 미군의 작전투입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군은 항공지원과 군수지원만을 담당하고 지상 작전은 남베트남군 단독으로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티우(Thieu) 대통령도 이에 동의하였고 닉슨은 1971년 1월 18일 작전을 실시하도록 승인하였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작전목적은 어떠한 지형목표를 점령하여 이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북베트남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군수시설과 보급물자를 파괴하고 북베트남군에게 최대한의 손실을 가하는 것이었다. 즉 적의 공세기도를 사전에 무산시키는 대규모의 파쇄공격 개념인 것이다.
티우 대통령은 이 작전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남베트남군의 최대역량을 집중하도록 하였다. 티우는 남베트남군의 최정예부대인 해병 사단과 공수사단을 투입하도록 하고, 작전 최종목표로 국경선에서 35㎞ 정도 떨어져 있는 테체폰(Techepone)을 점령하도록 지시하였다.
작전은 다음과 같이 4단계로 계획되었다.
제1단계 : 미군은 케산(Khe Sanh, 1968년 6월에 철수하였음)까지의 9번 도로 개통작전을 전개하여 지대내 적을 소탕하고 지뢰를 제거하여 남베트남군에게 작전기지를 제공한다.
제2단계 : 남베트남 제1군단이 9번 도로를 따라 기계화 부대가 정면에서 적을 유린하면서 공중기동 강습으로 적의 배후를 차단하는 기동으로 최종 목표인 테체폰을 점령한다.
제3단계 : 적의 역습을 격퇴하고 지역 내 탐색작전을 전개하여 적의 보급품을 노획하고 군수시설을 파괴한다.
제4단계 : 적의 저항강도에 따라 철수하거나 내륙으로 추가공격 작전을 실시한다.
이 작전을 위하여 미군은 제101공중기동사단 예하 2개 여단, 제5보병사단 예하 제1여단, 아메리칼(Americal) 보병사단 예하 제11여단 등이 미 제16군단장 서덜랜드(James W. Sutherland) 중장(미 해병사단이 철수한 후에 남베트남군 제1군단 지역의 제3상륙군 사령부를 대체하여 제16군단이 지휘하였음) 지휘 하에 제1단계 작전을 실시하도록 하고, 공군, 육군항공, 포병 등 10,000여 명의 병력과 고정익 항공기 2,000여대, 헬기 600여 대로 남베트남군의 월경 작전을 지원하도록 하였다. 미 고문관도 남베트남군의 작전에 참가하지 않고 포병은 국경선 이내에서 사거리가 허용하는 한 지원토록 하였다.

제16군단장 서덜랜드 중장
남베트남군의 제2단계 기동계획은 제1기갑여단이 서측으로 정면에서 공격을 하고 공수사단과 1개 레인저부대(3개 대대)은 9번 도로 북쪽에서, 제1사단은 9번 도로 남쪽에서 공중기동 강습으로 주요고지를 구축하면서 전진을 계속하고 최종목표는 연결 작전 가능성을 고려하여 제1사단 예하 1개 연대(2개 대대)가 공중기동으로 점령하도록 하였다. 해병사단은 후속지원부대 겸 예비였다.
남베트남군 제1군단장 호앙 쑤안 람(Hoang Xuan Lam) 장군이 작전을 지휘하고 작전 명칭은 람손 719(Lam Son 719, 람손은 북베트남 지역에 있으며 1427년 중국 침략군을 격멸한 곳, 숫자는 작전번호로 전부터 람손 작전의 명칭이 사용되었음)였다. 미군의 작전 명칭은 듀이 캐니언Ⅱ(Dewey CanyonⅠ작전은 1969년 1월 22일~8월 18일 동안 9번 도로 일대에서 실시되어 단일작전으로 가장 큰 전과를 얻은 작전이었음)였다.

호앙 쑤안 람 중장

람손 719 작전의 계획도
북베트남군도 미군이나 남베트남군의 공격을 예상하고 캄보디아에서와 같이 회피하지 않고 정면대결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전차, 포병, 대공화기 등을 착륙가능 지역에 중점배치하고 필요한 곳에는 방어진지도 구축하여 약한 남베트남군 부대에는 역습을 하도록 하였다. 북베트남군도 남베트남군과의 정면대결에서 남베트남군에게 결정적 타격을 가하여 미군이나 남베트남군이 과시하고 있는 베트남화의 허구성을 노출시키고 남베트남군의 사기를 저하시킴은 물론 휴전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작전준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작전 동안 북베트남군 총참모장 반 티엔 둥(Van Tien Dung)이 현지에서 직접 작전을 지도하였던 것은 북베트남이 이 작전을 얼마나 중요시하였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반 티엔 둥
첫댓글 남베트남 주력이라니 ㄷㄷ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라오스에서도 베트남과 관련하여 전투가 있었던 것 인가요?.. 유익한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