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11일 오래 전부터 방문해 보고 싶었던 상하이와 난징을 둘러 보았다. 동아시아 평화여행 기획을 위한 준비를 겸해 잠시 돌아본 상하이는 중국 개혁개방이 성공한 상징일 뿐 아니라 서세동점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중국의 4대 고도에 해당하는 난징(南京. 중국역사상 10개 왕국의 수도)을 방문해 난징대학살기념관도 돌아 보았다.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를 읽으면서 주무대인 상하이와 중국을 다시 체험하고 이해해 보려고 했다.
6월 9일 오전 9시 40분 푸등공항에 도착해보니 공항 규모가 엄청나다. 한국과 1시간 시차가 있다. 아직은 덜 채워진 듯 보이는 공항 내부를 돌아보다 자기부상열차와 하루 이용권을 겸한 패스를 구입해 열차를 탔다. 431km 까지 속도를 내는 초고속이라 금방 목적지인 롱양루역에서 내려 전화 유심카드를 구입해 중국내 통화를 시작했다. 일반 지하철로 라오시앙역에 도착해 예약된 숙소인 메그니피션트인터내셔날호텔(上海華美國際酒店)에 짐을 풀었다. 영어를 중국한자로 표기하는 방식의 독자성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상하이는 11개의 지하철노선이 운행중이고 모두 중앙플랫폼 방식이라 들어서기만 하면 가려서 지하철을 타기가 편했고 요금도 저렴해서 다니기가 수월했다. 여행지도를 들고 인민광장역(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원래 광장은 인민들의 것이지...)에 나오자마자 헤이룽장성에서 왔다는 젊은 대학생커플의 안내를 받아 함께 찻집에 들렀는데 다양한 중국차에 대한 설명과 코스에 따라 여러 종류의 차를 내오는데 값이 만만치 않았다. 호객에 걸린 것 같기도 하고... 혼자 걸으면서 난징동루(南京東路) 근처에서 마파두부로 점심을 먹고 관광패스로 시티투어 버스를 탔다. 한국어 안내 방송도 나오기는 한데 주변 경관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 아쉬웠다. 그냥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 보는 재미가 제법이다. 1921년 7월 23일 중국공산당 1차 전국대표자 회의장을 방문했다. 중국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회의였다. 마오쩌둥과 주언라이를 비롯해 13명의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회의 모습이 실물크기의 밀랍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사진촬영을 제한했지만 한 컷 담았다. 쏘련 공산당에서 파견된 인물도 있지만 마오를 부각시키고 있다. 주언라이 탄신 1백주년(1898-1998) 기념품도 하나 구입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왔는데 한국어 안내 설명도 잘 되어 있어 전체적인 면모를 살펴 볼 수 있었다. 2층 건물에 여러 개의 방에 관련 사진과 설명 그리고 조형물이 설치 되어 있었다. 대로변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주택가라 왠지 조금 옹색한 느낌이 들었고 마땅한 기념품도 없어 아쉬웠다. 시티투어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걷는데 인민대도(人民大道)라는 명칭에서부터 도심 속 공원을 조성해 둔 것이 인상적이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좋았다. 늦은 오후에는 난징을 방문하기 위한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갔는데 외국인은 기차표 자동판매기를 이용할 수 없었고 저녁에는 약속된 이창주선생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걷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상하이 교통카드을 받아 충전하면서 사용하게 되었다.
6월 10일 아침에 다시 상하이역으로 가서 대면 판매를 하는 역 좌측 빌딩의 2층 창구를 이용해 기차표를 구입 했다. 모든 기차역에서 탑승객은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는데 상하이도 그랬다. 지하철도 반드시 검색대를 거쳐 탑승해야 했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했지만 사회갈등과 안전에 관해서는 여전히 통제방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생활했던 사람으로서는 비교하게 된다. 10시 26분발 고속기차를 타고 난징역에 도착해 다시 지하철 티켓을 구입했는데 동전 모양의 플라스틱 칩이다. 서울지하철의 1회용 승차권과 유사한 느낌인데 구간이 짧은 탓인지 저렴하다. 만두를 사서 이동하며 점심을 먹고 도착한 난징대학살기념관 입구에는 거대한 검은 벽과 당시의 참상을 묘사한 조형물들이 발길을 따라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입구에서 티켓을 구입해 관람을 시작했다. 단체로 또는 커풀 가족 등 소규모 단위로 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관람을 하는 모습에서 중국인들의 관심이 느껴진다. 30만이라는 숫자와 각국어로 소개된 기념관 명칭 그리고 평화교육의 장소라는 입구 안내 설명이 눈에 확 들어 온다. 규모면에서도 크고 여러 시기를 구분해 잘 전시되어 있다. 당시 학살매장터 위에 자리잡은 기념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진다. 일본인 여교사가 참전 군인들의 증언을 듣는 모습이 실물 크기로 재현되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작은 광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한쪽 벽에는 전투중인 모습이 부조되어 있어 평화공원이라는 이름과 조화되지 않는 것 같다. 파리 에필탑 근처 평화공원과 비교되는 느낌이다. 일본인들이 난징을 방문해 사죄하는 모습이 사진 또는 조각 등으로 설명되어 있다. 역사화해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더위 탓에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중일 시민들이 이곳으로 역사평화여행을 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 뒤편의 비단박물관겸 판매전시장도 잠시 방문했는데 별 취미가 없는 탓에 별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예약해둔 기차 시간보다 조금 여유 있게 도착해 난징역 앞의 현무호(玄武湖)도 잠시 둘러 보았다. 다시 5시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돌아오니 7시다. 상하이 야경으로 유명한 와이탄(外灘) 지역을 방문했다. 화려한 야경에 수많은 인파 특히 관광객이 몰려 사진을 찍기 바쁜 모습이다. 1945년 난징조약으로 개방된 상해조계지역의 유럽식 건축물과 황푸강 건너편의 동방밍쭈(東方明珠. 468m의 방송수신탑. 상하이의 랜드마크)를 비롯해 고층빌딩이 즐비하다. 마오쩌둥의 모습처럼 보이는 상하이 지도자의 대형입상이 인상적인데 사람들의 발길은 없어 뭔가 대조적으로 느껴진다.
6월 11일
아침 뤼신공원(홍커우공원에서 변경)을 찾았다. 우려대로 8월 말까지 공사중이라 입구 일부 외에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노인들이 음악을 연주하거나 춤을 추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 등 공원 입구 한편은 노인들이 다수로 자리하고 있다. 1932년 4월 29일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왕의 생일기념일 축하하는 기념식장에서 물병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상하이 주둔사령관등을 사살했던 윤봉길의사를 만나고 싶었는데 아쉬워 주변을 돌아보기만 해야 했다. 3년전인가 배를 타고 오사카을 시작으로 한일시민들이 일본 서부지역 평화여행을 하면서 가나자와(1932년 12월 19일. 일본군 주둔지에서 처형되었다)에서 윤봉길의사 기념비를 참배한 기억이 떠올랐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창주선생을 근무처 근체에서 다시 만나 선택하는 방식의 국수를 먹는데 맛이 좋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인민광장을 거쳐 와이탄을 찾았다. 동방밍쭈에서 입장료를 구입하고 1층의 상하이역사박물관을 돌아 보았다. 상하이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당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각종 사업과 시장 점포 여관 등 사회상을 볼 수 있도록 실물 크기로 밀랍인형으로 설치 되어 있었다. 와이탄을 걷다보니 대형쿠루즈가 황푸강 포구(항구라고 해야 할 정도다. 뉴욕의 맨하탄도 그렇지.)에 정박해 있는 모습이 경이롭다. 강심이 그만큼 깊은 것이다. 다시 지하철로 이동해 예원(豫園)을 찾았다. 오래된 정원으로 참으로 다양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호텔 근처의 골동품 시장을 둘러 보았는데 살만한 물건이 마땅치 않았다. 짐을 챙겨 김포공항 격인 홍차오공항으로 이동했다. 활력이 넘치는 도시 도로에 붙은 명칭과 저렴한 교통비 서민용 음식들이 많은 점 등을 제외하면 사회주의 국가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드나 들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치 되었던 곳이자 세계적인 도시 그리고 중국의 경제수도라 각별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