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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품에 오르신 최해성(요한)님께서 순교하시기 전까지 사셨던 마을을 찾아 길을 나섰다.
요한님께서는 강원도 ‘서지’라는 마을에 사셨는데 지금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蓀谷里)2리다. 2차선 경사진 도로를 오르니 ‘손곡저수지’가 나타나고 길가의 정자가 쉬어가라 한다. 규모가 큰 저수지다.
이방:이들은 양반, 상민, 가림도 없이 형제라 하며 해괴한 양이의 이름으로 서로 부르고 천주학의 수괴인 신부까지 가끔씩 불러들여 괴이한 의식을 치르는 등 그 죄질이 아주 무거운 자입니다.
평소 반상과 천민도 가리지 않을뿐더러 조상 제사도 지내지 않는 이들을 마땅찮게 생각하며 꼬누던 서지 윗마을 방아실에 사는 양민 하나이 서지 마을의 천주교인들을 밀고하여 와서 포졸들을 급파하였으나 대부분은 미리 도망하여 꽃댕이라 불리는 백운의 화당리로 숨어든 것을 알아내어 몇 명의 포졸들을 보냈습니다.
바위 돌에 시어들이 드러누워 잡담을 나누다가 나그네에게 아는 척을 한다. 푸르른 호수위에 소나무 그림자 비치고, 한줄기 바람이 벚꽃을 떨구니 봄날에 겨운 나그네야, 정자에 앉아 쉬어감이 어떠한가? 그렇게 수작을 부린다. 시몬 : 우리 언제 만난 적 있나요?
이방:인두가 잘 달구어 졌느냐? 최 포졸은 인두질을 행하라.
-북소리 급박하게- (인두질(포졸2)을 시작하자 살이 타고 최해성은 이를 악물고 참으며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다 실신한다.) -북소리 끝-
사또:(쌀쌀맞게)깨워라.
포졸1:예(물을 끼얹자 깨어난다.)
사또:진정 독한 놈이로다. 들어라, 네가 나라에서 금하는 사악한 종교를 믿는 것을 진정 모르느냐? 그것이 진정 네 목숨과 너의 식솔들의 안위와 목숨까지도 담보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최해성:저는 사교(邪敎)를 알지 못하고 다만 하늘의 주님을 섬기는 천주교를 믿을 따름입니다.
둑을 내려서니 물빛이 맑다. 오른쪽으로 눈에 들어오는 마을풍경이 그림 같다. 초록이 마음을 끈다.(보리밭, 마늘밭, 모가 자라는 논을 나는 좋아 한다.) 시인 이상은 그의 수필 ‘권태’에서 초록을 지겨워했지만 문명보다 그것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때도 있다. 그러나 매일 바다만 바라보면 지겹듯, 그것들도...,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
‘하루 온종일 저 푸른빛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오직 그 푸른 것에 백치와 같이 만족하면서 푸른 채로 있다.’ -이상-
그래도 눈에 들어온 그 마을(몇 집 있는)이 궁금해서 가보았다. 푸른빛은 보리밭이었다.
저수지 제방뚝을 지나 건너 편 벚꽃 핀 도로가 손곡2 리로 가는 도로다. 손곡저수지는 1984년에 만들어졌다 한다. 높이는 17m, 길이는 293m, 수심은 14.5m다.
사또(상냥하게)네가 천주를 배교하면 다시 임금님의 충실한 백성이 되는 것이니 네 목숨도 살려주고 재산도 모두 돌려줄 것이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면 죽을 것이다.
최해성:관장께서 원주 고을을 통째로 주신다고 해도 거짓을 말할 수 없고 우리 천주님을 배반 할 수도 없소이다.
사또:뭐라?
최해성:(큰 소리로)관장께서 원주 고을을 통째로 주신다고 해도 거짓을 말할 수 없고 우리 천주님을 배반 할 수도 없다고 했소이다.
이 다리를 건너면 손곡2 리 중심과 더 가까워진다. 다리위에서 베스 낚시를 하기도 하고, 보트에 몸을 싣고 씨알 굵은 붕어를 낚으려고 포인트를 찾아 저수지 기슭을 누비는 꾼도 있다. 작은 토종 물고기들은 베스의 먹잇감이 되어 사라지지만 개체수가 많아 그나마 종을 유지하는 피라미가 베스와 불안한 동거를 한다. 성장하기까지 살아 남은 붕어는 씨알이 굵다고 한다. 주말에는 많은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베스와 붕어를 낚으려는 사람들이다. 베스가 많은 저수지다.
사또:좋다. 본관이 한 가지만 더 제안하겠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내 너의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너의 동료들이 숨어있는 곳을 대라. 너도 살고 싶을 것이다. 대라, 살려주겠다.
최해성:우리 천주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웃을 해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사또:네가 만일 이리 죽으면 어디를 간다는 말이냐?
최해성:천국에 갑니다.
저수지 주변 마을을 돌아본다. 어디든 사람이 산다. 소도 산다. 개도 산다. 저수지에는 붕어, 피라미, 베스가 산다. 예전에는 모래무지, 꾸구리 같은 토종 어류들도 많았다는데 베스가 유입되고 부터는...,global시대, 아직 불르길은 없는 것 같다.
해거름 무렵, 40cm도 넘을 듯한 베스가 먹이 사냥을 하는 광경을 보았다. 수면위로 후절펑, 파문을 일으키며 피라미들을 사냥한다. 베스도 몸통을 뒤틀며 수면위로 튀어 오를 정도로 사냥에 집중하지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피라미도 필사적이다. 베스가 따라오면 수면 위를 날듯이 도망친다. 제트보트처럼 수면 위를 퉁기며 질주한다. 큰 잎 베스에 쫒긴 피라미 한 마리가 내가 서 있는 마른 풀 섶 물 가 까지 도망쳐 간신히 목숨 부지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녹초가 되어 헐떡거린다. 물고기가 지쳐서 헐떡거리는 모습은 또 처음 본다. 산다는 것은 어디나 그렇게 치열하구나.
사또:천국? 허허, 이미 천주라는 신이 저자의 골수에 깊이 박혀있구나. 저자의 몸을 꼬챙이로 쑤셔보아라. 내 저자의 독한 몸에도 피가 흐르나 봐야겠다.
이방:(포졸2에게)대 꼬챙이가 준비되어 있느냐? 죽지 않을 만큼 저자의 몸을 찌르거라.
(포졸2가 대답하고 대 꼬챙이로 몸을 찌른다. 이때 최해성의 배에서 피가 튀고 창자가 삐어져 나 온다)
이방:멈추거라. (이방, 다가가 살핀다)
굽이진 이 언덕길을 따라 가면 ‘서지’마을과 조금 더 가까워진다. 그분도 이 길을 걸었을까? 그 시절에도 이 길이 있었을까? 찔래꽃, 칡꽃, 싸리꽃 어우러진 훠이훠이 굽은 길. 그런 길.
이방:사또, 이자의 창자가 삐어져 나오고 비린내가 진동을 합니다. 이대로라면 형장에서 일을 치르기 전에 죽을 테니 그만 거두심이 어떠한지요.
사또:허허-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놈이로다. 그에게 사자 밥을 먹이고 옥에 가두어라. 내일 진시에 참형에 처하겠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옥하라. 본관이 피곤하니 내일 취조하겠다.
가다가 재미있는 개울을 만나 눈길을 뺏겼다. 유년의 시절 동무들과 물놀이도 하고 고기도 잡던 그런 개울과 흡사하다. 아련하다. 어린 시절의 풍광과 냄새와 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살다가..., 문득, 그런 냄새, 그런 맛, 그런 풍경과 마주치면 형언키 어려운 그리운 행복이 밀려들다 순식간에 사라진다. 찰라.
길에 노인 한분이 서 계신다. 개울물을 살피고 사진을 찍는 내 행동을 주시하던 노인이 다가오셨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고약한 도시인들이 개울에 어항을 놓아 중터리(버들치)를 잡아가고 두룹도 따간단다. 그런 사람을 보면 혼을 내주신단다.^^ 이 논(사진)을 앞에 두고 뒤로는 야산을 둔 집 한 채가 있다. 어르신은 그 집에 사시는데 집터가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풍수를 아느냐고 반문하신다. “에구~~~모릅니다”^^
말씀 마디마디마다 곰살맞은 맞장구로 대꾸 드렸더니 마음에 드셨는지 당신 집 앞에서 바라보면 저 길 풍경이 더 보기 좋으니 거기서 찍으라신다.^^ 저 벚꽃길이 달려온 길이다.
어르신의 말씀이다.“이곳 손곡리는 원주보다도 전기가 먼저 들어왔어. 일본놈들이 금을 캐가느라고 전기를 먼저 끌어 들였지. 저 산들은 속이 비어 있어. 산마다 금을 캐느라 파먹어서. 못 믿겠으면 가봐? 굴이 많어.”
천 년 만 년, 남의 나라를 빼앗아 경영할 생각이었는가?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의 인성이 마비된 듯한 우경화 조짐은 경계할 일이다. 토마스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고 일본 법정에서 조목조목 그들의 죄를 열거한 말씀 안에 그들의 의도가 모두 담겨 있다. 세월이 흐르고 국제 정세가 바뀌었어도 그들 일부 정치인들의 대물림된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반성하지 않는 것이다. 기회를 엿본다. 그런 호전적인 사람들로 인해 이웃나라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자국민들을 사지로 내몰았음에도 말이다.
천주교 신자라고 밝히고, 옛 박해 시대 이야기를 간략히 말씀드렸다. 천주교인에 관한 전해오는 이야기를 들으셨는가? 여쭈었다. -당신은 절에 다니신단다.- 들은 예기가 좀 있다 하신다.
어르신의 말씀이다.“방아실로 해서 저리 넘어 가면 백운이야. 난 다 알아. 뭐 더 물어 봐.”
나는 부론 쪽에서 왔다. 어르신과 헤어지고 문막으로 갈 수 있는 갈림길 까지 지나치니 ‘귀만리’이다. 무얼 심으려는지 고랑에 멀칭을 씌워 놓았다.
농촌이 옛날 농촌이 아니다. 가는 곳 마다 마을회관, 경로당, 공원, 정자, 운동 터가 자리 잡고 있다. 집들도 번듯번듯 잘 지어놓은 집들이 많다. 참 좋은 시절이다. 모두가..., 그런 것들을 즐기고 이용할 여유가 있으면 말이다. 마음이 흑백이면 꽃도 흑백이다. 슬픔과 괴로움과 걱정 앞에서는 아름다움도 색이 바랜다. 사랑과 행복이 충만할 때 세상은 아름답다.
귀래 가는 길로 한 참을 가다가 아니다 싶어 차를 돌려 다시 ‘귀만리’라는 곳으로 왔다.
▲구만이재 [고개][위치] 구만이에서 귀래면 용암리 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구만이 다리’ 지난 오르막길에서 다시 내려온 것이다. 주위 풍경은 그저 그런 농촌 풍경이다. 소도 산다. 개도 산다. 닭도 산다. 모두 사람과 어우러져 사는 것들이다. 골골마다 사람 안사는 데가 없다. ‘서지마을’과 ‘방아실마을’은 (귀래 가는 길)다리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가야하는 모양이다. 거기는 다음을 기약한다. 마음 맞는 교우와 함께 가고 싶다. 내처, 백운까지라도...,
서지 마을은 구만이 동남쪽 골짜기로 방아실 아래 있는 마을이다. 구만이 마을은 굼(구멍이나 움푹한 곳)+안〉굼안〉구만〉구만이로 우묵한 안쪽에 있다는 뜻을 갖고 있으며, 방아실은 지형이 방아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서지(西芝)라는 뜻은 지초(芝草)가 많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지초란 지칫과의 여러 해 살이 풀로 줄기는 30〜60cm, 잎은 어긋나고 피침모양이다. 5〜6월에 흰색 꽃이 총상(總狀) 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작은 견과를 맺는다. 뿌리는 약용으로 하거나 자주색 염료를 쓴다.
이방:평소 반상과 천민도 가리지 않을뿐더러 조상 제사도 지내지 않는 이들을 마땅찮게 생각하며 꼬누던 서지 윗마을 방아실에 사는 양민 하나이 서지마을의 천주교인들을 밀고하여 와서 포졸들을 급파하였으나 대부분은 미리 도망하여 꽃댕이라 불리는 백운의 화당리로 숨어든 것을 알아내어 몇 명의 포졸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의 명문 가문인 남씨가, 양반에게 마을의 치안을 맡긴다는 관례를 구실로 가노들의 머리에 모자를 씌우고 손에는 몽둥이를 들게 하여 포졸들에게 달려들어 결박했고 잡은 신자들은 풀어 주었습니다.
그림(지도)속 글씨(지명)가 잘 안보이시면 그림을 한 번 클릭해서 보세요. 좀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위치]
손곡리는 면소재지에서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에는 문막읍 궁촌리, 서쪽은 경기도 강천면, 남쪽은 정산리와 단강리, 북쪽은 노림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유래]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유배를 당하여 여기에 머물게 되었는데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손위(遜位)하고 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손위실(遜位室)로 불렀고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위'가 탈락되고 손곡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또는 한시로 유명한 손곡 이달(蓀谷 李達)선생이 살았다고 해서 손곡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아마 이달의 호 손곡은 손위실의 마을 이름을 따서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혁]
원래 조선시대 원주목 부론면의 지역으로 오리(五里)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귀만, 내산동, 신촌, 송정, 서지, 오곡, 백자동, 동점, 평촌을 병합하여 손곡리라 부르고 있다.
[특이사항]
이달과 허균이 여기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손곡 1리에는 1968년에 세운 임경업장군 추모비가 있다.
법천사지와 거돈사지가 있어서 옛날에는 왕성한 불교세력 지역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문화재 소재지인 법천사지 및 거돈사지를 찾는 방문객이 많이 있다. 섬강변에 있는 주말농장에는 가족단위로 주말과 여름 휴가철을 이용하여 강변을 찾아오고 있다.
[지명]
▲구마니 [마을] → 구만이▲구만리교 [다리][위치] 구만이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내용] 길이 15m, 너비 6m로 1976년에 가설하였다.
▲구만이 [마을]
[위치] 오리울 남동쪽 구석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구마니, 귀만(歸晩)이라고도 한다. 현재 약 20호가 살고 있다.[풀이] 원주시 개운동 궁만이처럼 굼+안>굼안>구만>구만이로 변천하였다. '굼'은 구멍이나 움푹한 곳을 말한다. 따라서 우묵한 안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구만이재 [고개][위치] 구만이에서 귀래면 용암리 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귀만(歸晩) [마을] → 구만이
▲내산곡(內山谷) [마을] → 안산골▲내산동(內山洞) [마을] → 안산골
▲마당매기 [마을][위치] 구만이 동쪽에 있는 마을로 현재 한 집이 살고 있다.
▲방아실 [마을][위치] 서지재 밑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현재 한 집이 살고 있다.
[유래] 지형이 방아처럼 생겨서 방아실이라 한다. 자연학습원이 있다.
▲백자동(栢子洞) [마을] → 잣나무골
▲벌말 [마을]
[위치]손곡초등학교 부근으로 손곡리에서 가장 큰 마을을 말한다. 평촌(坪村)이라고도 한다.
▲새말 [마을]
[위치] 손곡 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로 신촌이라고도 한다. 알산골과 오리울 중간에 있다.
[유래]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새말, 신촌이라고 한다.
▲서지(西芝) [마을]
[위치] 구마니 동남쪽 골짜기로 방아실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유래] 지초(芝草)가 많았다고 하여 서지라 한다.
▲서지고개 [고개] → 서지재▲서지골 [골][위치] 구만이에서 서지로 가는 골짜기를 말한다.
▲서지교 [다리]
[위치] 서지 앞에 있는 다리를 말한다. [내용] 길이 7m, 너비 4m로 1977년에 가설하였다.
▲서지재 [고개][위치] 서지에서 방아실을 거쳐 문막 방아실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서지고개라고도 한다.
▲소정이 [마을] → 송정
▲손위실 [마을][위치] 현 손곡을 이르는 이름이다.[유래] → [전설]
▲송정(松亭) [마을]
[위치] 손곡리 남쪽, 손곡저수지 옆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소정이, 송정이라고도 한다.
[유래] 마을 입구에 소나무 정자가 있어서 유래되었다.
▲신촌(新村) [마을] → 새말
▲안산골 [마을]
[위치] 손곡리 안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알산골, 알상골, 알쌍골, 내산동, 내산곡(內山谷)이라고도 한다.
▲알상골 [마을] → 안산골
▲양지촌(陽地村) [마을] → 양짓말▲양지편 [마을] → 양짓말
▲양짓말 [마을][위치] 벌말 북쪽에 있다. 양지촌, 양지편, 양지말이라고도 한다.
[유래] 양지쪽에 있어서 양짓말이라 한다.
▲오곡동(梧谷洞) [마을] → 오리울
▲오래올 [마을] → 오리울▲오려울(塢礪-) [마을] → 오리울
▲오리울 [마을] [위치] 새말 남쪽, 구만이 북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오곡동(梧谷洞), 오래올, 오려울, 오리올이라고도 한다.[유래1] 예전에 오동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오리울, 오곡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유래2] 언덕과 높은 산이 울타리처럼 둘려 있어서 한자로 '오려'라 했다 한다.
[풀이] 오리+울>오리울, 오려울이 되었다. '울'은 마을을 뜻한다.
▲잣나무골 [마을][위치] 오리울 남쪽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 백자동이라고도 한다.
[유래] 잣나무가 많다하여 잣나무골로 불리웠다.
▲통점(通岾)] [마을]
[위치] 손곡저수지 서쪽에 있다. 동점(銅店), 동점(洞岾), 퉁점이라고도 한다.
[유래1] 예전에 동광(銅鑛)이 있었으며, 그 이전에는 구리점이 있었다 하여 동점 혹은 통점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유래2] 손곡리 쪽에서 옛날에 큰 절인 정산리의 거돈사로 가려면 이곳을 지나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절로 가는 지름길' 옆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통점, 퉁점이라 불렀다고 한다.
[특이사항] 1984년에 손곡저수지가 건설되면서 주민들은 모두 마을을 떠나고 지명만이 전해질 뿐이다.
▲평촌(坪村) [마을] → 벌말
▲하련골 [마을]
[위치] 손곡리에 있는 골짜기 이름이다. 하련곡(下輦谷)이라고도 한다.
[유래] 공양왕이 이곳으로 유배 올 때 가마를 타고 오다가 내린 곳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황수골 [마을]
[위치] 양지말 북쪽으로 난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로 긴경산(봉화대)을 넘어 광명터로 가게 된다. 황수곡(潢遂谷)이라고도 한다.
[유래] '빛'과 관련된 환히 빛나는 봉화를 가리키는 말로 봉화대(긴경산)과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설]
[손곡리]
손곡 이달은 서출이라 학문은 높으나 과거 시험에도 응시를 못 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시나 읊다가 이 세상을 가겠다고 해서 이 깊은 산중에 살았다. 이달의 호 손곡을 따서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안산골]
[1] 묘자리가 좋아서 삶은 알을 묻어 놓아도 그 이튿날 병아리가 울었다는 고장이라고 해서 알쌍골이라 한다.
[2] 알쌍굴을 옛날에는 산알굴이라고 했다. 이괄이 왕을 해보고자 하여 선대 할아버지를 모실려고 달걀을 한번 그을여 진혈을 보고자 하였다. 그런데 계란을 약간 상한걸 가지고 와서 병아리가 온전하지 못 하고 뾰옥뾰옥 소리를 내지 못 했다. 스님이 여기다 넣어보고 땅의 지질을 검사해 보려고 하였는데 닭이 '오' 소리를 못했다고 한다. 닭이 나오긴 나왔는데 시원치 않아서 이괄은 왕이 되지 못 했다고 한다.
[3] 이괄의 난 때 그 삼족을 멸하는 바람에 이괄 아버지는 변을 당했지만 그 할아버지묘가 알쌍굴, 알쌍골에 있어서 안전했다고 한다. -부론면사무소 사이트에서 가져와 다듬음-
▲서지(西芝) [마을]
[위치] 구마니 동남쪽 골짜기로 방아실 아래에 있는 마을을 말한다.[유래] 지초(芝草)가 많았다고 하여 서지라 한다.
지초(芝草):(지칫과)한방에서 주로 쓰는 약초. 뿌리가 붉은 자주색을 띠고 있어 ‘자초’라고도 하며 옷감을 물들이는데 자주색 염료로도 쓴다.
청년 시절, 청풍호가 생기기 전, 청풍면과 수산면의 경계쯤 되는 한 야산에서 지초를 여러 뿌리 캔 기억이 있다. 지금은 만나기 힘든 약초다.(시몬)
-동선 시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