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힌 한 점포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웅성거립니다.
"저 영업점 사장님이 빚을 많이 져서 야밤도주했대."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고향에서 홀홀단신 상경해 많은 어려움 이겨냈다고 자랑도 많이 했는데…."
위 대화중에서 잘못 쓰고 있는 말 두 가지를 찾아보세요. 정답은 바로 '야밤도주'와 '홀홀단신'이에요.
먼저 '야밤도주'는 '야반도주(夜半逃走)'를 잘못 표현한 말이에요. 남의 눈을 피하여 한밤중에 도망함을 뜻하는 한자어이지요. 야밤도주는 어두운 밤을 뜻하는 한자어 '야반(夜半)'과 우리말 '야밤'을 헷갈려서 잘못 쓴 표현입니다. '야반'은 밤을 뜻하는 한자 '야(夜)'에 절반 혹은 한가운데를 뜻하는 한자 '반(半)'을 붙인 말이에요. 우리말 '야밤'과 뜻도 소리도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단어랍니다.
한밤중에 도망한다는 '야반도주'와 유사한 말로 '밤도망'이라는 말도 있어요. 예를 들면 "오죽하면 그 몸으로 밤도망을 쳤을까 싶어 안타깝다" "집주인이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의 보증금을 떼어먹고 밤도망을 했다"와 같이 쓸 수 있어요.
다음으로 '홀홀단신'은 '혈혈단신(孑孑單身)'을 잘못 쓴 겁니다. '혈혈단신'에서 '혈(孑)'은 '외롭다'는 뜻을 가진 한자예요. 혈혈단신은 '의지할 곳이 없는 외로운 홀몸'을 뜻하는 한자어로 고통을 나눌 가족이나 친척, 친구 하나 없이 오직 자신 혼자뿐인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므로 외롭고 힘들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예를 들면 "개성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6·25 때 혈혈단신으로 내려와 할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다고 한다"와 같이 쓸 수 있어요. '홀홀단신'은 혼자라는 뜻의 순우리말 '홀'에 '혼자의 몸'을 뜻하는 한자어 단신(單身)을 더해 잘못 쓴 겁니다.
〈예시〉
―최근 경제가 어려워져 큰 빚을 지고 야반도주하는 자영업자가 많다고 한다.
―최근 유명 가수 등 연예인 가족의 야반도주 뉴스가 나오며 ‘미투’에 이어 ‘빚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할아버지 돈을 빌려 미국으로 야반도주했던 아저씨가 뒤늦게 돈을 갚겠다고 연락을 했다.
―윤봉길 의사는 독립운동을 위해 처자식을 고국에 두고 혈혈단신 만주로 떠났다.
―혈혈단신 어르신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어 준 한 주민센터 주무관들의 활약이 감동적이었다.
< 조선일보(2019.01.02.) ‘예쁜 말 바른 말(류덕엽·서울 양진초 교장)’에서 옮겨 적음. (2019.01.05. 화룡이) >
첫댓글 야밤도주가 아니라 야반도주,
홀홀단신이 아니라 혈혈단신
바르게 알고 정확하게 쓰겠습니다.
글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말과 글을 옳게 알고 바르게 가꾸어 나가는 것은 글쓰는 사람들의 책무일 터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