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 성산구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전문 업체인 우수AMS를 찾아갔을 때 전종인 회장은
미국 벤처기업과 화상회의 중이었다. 전기자동차 관련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수시로 회의
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우수AMS는 몇 년 후에는 전기자동차가 대중화될 것으로 보고 일찌감치 연구 개발에 나섰다. 전
기자동차 시대가 오면 엔진이나 미션이 모두 필요 없어지는 만큼 자동차 업계에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전 회장은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리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해야 하는 만큼 전기
자동차에 대해서도 적극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와 동반 수출 상승
우수AMS의 주요 생산 부품은 방향을 조절하는 디프렌셜 어셈블리, 수동 변속기의 기어를 바꿔
주는 역할을 하는 컨트롤 샤프트, 엔진을 차체에 고정시켜주는 엔진 브라켓 등 엔진·변속기 부
품과 파워공기압 제동장치의 핵심 부품인 에어컴프레서(공기압축기) 등이다. 자체적으로 생산
하는 부품 가짓수만도 500여 종에 달한다.
생산 제품은 현대·기아자동차, 한국GM 등에 75% 이상 납품된다. 이밖에도 현대파워텍, 위아
등 부품업체들과 해외 GKN 그룹을 거래처로 확보하고 있다. 전 회장은 “현대·기아차나 한국
GM이 생산하는 자동차에는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부품이 적어도 한두 가지는 들어간다”고 말했
다.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자동차 점유율을 높여 나가면서 우수AMS도 동반 성장하
고 있는데, 매출 추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10년에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한 후 2011
년에는 1,504억 원으로 50% 이상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세계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주춤했
지만 올해는 1,650억 원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계열사인 우수정기와 우수인디아, 우수체코 등
해외 법인까지 합치면 2,6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역시 2005년 2,000만 달러, 2009년 3,000만 달러에 이
어 지난해에는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이 가운데 직수출 비중은
10% 정도로 최근 활발한 해외 수주 활동을 벌이고 있어 2년 후
쯤이면 직수출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실적은 지속적인 품질관리와 원가절감, 고객사와의 약
속 이행 등을 위해 노력한 결과다. 이 가운데서도 전 회장이 가
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품질관리’다. “현대차가 세
계 5위로 올라선 것도 품질이 뒷받침됐기 때문인데 완성차의 품
질이 높아지려면 필연적으로 부품의 품질 제고가 뒤따라야 가
능하다”는 설명이다.
우수AMS는 원재료 검사부터 완제품 생산, 조립에 이르는 각 공
정마다 품질 테스트를 받도록 하고 있다. 즉 해당 공정에서 문
제가 생길 경우 곧바로 걸러지도록 함으로써 불량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가동 중인 것이다. 또한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지속적
인 기술 개발과 기술 도입을 진행하는 한편 유능한 기술 인력 확
보 및 기존 연구원들의 노하우 전수 등을 통한 기술력 확충 등
에도 힘쓰고 있다.
자동차 생산 실무 경험으로 창업
전 회장은 경북 의성군 출신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시골
인 고향에선 변변한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지인에게 일자리를 부탁해 들어간 곳이 바로 기아차 소하
리 공장이었다.
자동차 부품 생산사원으로 입사해 기계와 친해질 무렵 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병역특례가 가능한 제도가 신설됐다. 주경야독으
로 정밀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 ‘병역특례 1기생’이 될 수 있었
다. 창원공단에 있는 기아기공으로 옮겨온 것도 병역특례를 받
으려면 방위산업체에 근무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15년
간 열심히 일했지만 그가 바라보는 자신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나이 많은 선배들의 직장 생활을 보니 꿈도, 보람도 없어 보였
다. “그대로 근무하다 보면 선배들처럼 되고 말 것이라는 걱정
한편으로, 월급을 받지 말고 주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습
니다. 돈을 벌어 가난을 면하고 싶은 생각도 굴뚝같았어요.”
기아차에서 첫 공로패를 받았을 정도로 모범 사원이던 그가 사
표를 내자 공장장까지 나서서 말렸다.
경기도 안 좋고 회사에서 할 일도 많은데 괜히 사서 고생하지 말라는 이유였다. 하지
만 이미 뜻이 굳건했던 그는 마산시 산호동에서 직원 몇 명
을 데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퇴사를 말리던 주변 사람들은
사업을 시작하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다. 특유의 성
실함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사업은 몇 개월 만에 자리를 잡
아가기 시작했다. 일거리가 밀려 주야간 교대 작업을 할 정
도였다. 직원들이 다 퇴근한 후 혼자 밤샘하면서 일한 적도
많았다. 영업과 납품, 엔지니어 역할을 혼자서 도맡아하던
시절이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탓에 작업복이 몇 개월 만에 헐렁
해질 정도였지만 수입은 괜찮았다. 조그만 임대 공장에서
불과 1년 만에 자가 공장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이대로 잘나가는가 싶었지만 곧바로 위기를 맞았다. 당시만
해도 군수용 트럭 부품을 주로 생산했는데 갑자기 일거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주로 이란으로 수출되던 트럭이 미국의
수출금지 조치로 하루아침에 발이 묶였기 때문이었다.
소형차 부품 덕분에 IMF 극복
수출 물량이 갑자기 확 줄어들자 전 회장은 군수용만으로
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제품 다변화를 시도했고, 얼마 안
가 민수용 부품을 기아차에 이어 현대차에도 납품할 수 있
게 되었다. 직접 납품은 아니었고 1차 벤더업체를 통한 납
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1차 벤더업체 등록은 정말 어려
웠습니다. 저희 회사도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다행히 기
회가 왔습니다. 1차 벤더업체가 현대차에 납품한 수동미션
부품을 저희가 새로 개발하면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배기가스 정화장치를 직접 개발해 현대차에 납품하면
서 또다시 기술력을 인정받아 현대차 납품업체로 정식 등록
할 수 있었다.
IMF 시절에도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군수용 부품을 생
산할 당시의 위기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때는 회사 규모가
작아 조금만 노력하면 운영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IMF
때는 직원도 60~70명이나 되고, 공장도 3,300㎡(1,000평)
가 넘는 규모로 커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하면 회사가 망하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쳐보니까 ‘이래서 회사가 부도가 나는구
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IMF 이전에
는 거의 팔리지 않던 티코 자동차의 부품이 불티나게 팔려나
가기 시작했다. 로컬 수출로 환차익까지 생기면서 몇 개월
이 지나자 IMF 이전보다 경영 상태가 훨씬 더 좋아졌다. 부
품 다변화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었다.
그 후 회사는 급성장했고 공장도 2~3년마다 확장하는 등 성
장 가도를 달렸다. 2003년에는 코스닥에 상장했고, 현대차
와 기아차의 합병으로 반사이익도 누렸다.
현대차의 수출이 본격화된 2005년부터는 수출 쪽에서도 눈
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도와 체코 쪽 진출을
고려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현재 우수AMS는 해외 현지에
우수인디아 공장과 우수체코 물류 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창업 30주년 맞아 제2의 도약
전 회장은 글로벌 시장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는 수출 물량의 90% 이상을 OEM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
지만, 자체 브랜드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해
외 유명 부품 메이커와 기술을 제휴해 진출하는 방법도 고
려 중이다.
“현대차의 생산 물량이 무려 750만 대나 됩니다. 하지만 세
계 수위 자동차 기업들의 생산 물량은 900만 대를 넘나듭니
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해외 업체에 직접 공급하는 전략
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전 회장이 수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IMF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다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면서 거래선 다변화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경영
진을 중심으로 해외 전시회에 참가하는 한편, 해외 예상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이메일과 홈페이지 등을 통해 지속
적으로 홍보를 해왔다.
지난해부터는 해외영업팀을 신설해 공격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펴는 한편, 해외 입찰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
한 고객사에서 자체적으로 개최하는 물품설명회 등을 활
용해 수출 기회를 노린다는 전략도 실행 중이다.
우수AMS는 지난 2월, 창업 30주년을 맞았다. 전 회장이
자동차 업계에 몸담은 것부터 따지면 45년이나 된다. “인
생 전부를 자동차 산업에 바쳤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
이다. 전 회장은 “앞으로의 여생도 자동차 쪽에 바칠 생각”
이라면서 “국내외 완성차 기업들과 같이 연구 개발을 통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력 제품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고, 해
외 생산거점도 확보하고 있어 중기적인 관점에서도 지속
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전 회장의 판단이다. 그는 또
한 “엔진·변속기 관련 부품에서 조향새시 관련 부품으
로 제품 다변화를 추진하는 한편, 전기자동차 생산과 관
련한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어 장기적 전망도 밝다”고
강조했다.
전 회장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직원보다 늦게 출근한 적이
없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7시에 출근해 생산 현장부터
둘러본다. 점심도 특별한 외부 약속이 없을 때는 구내식당
에서 직원들과 같이 먹는다. 현장에서 생활하면서 기술적
인 애로사항이 생기면 즉각 해결해줄 정도다. “사주(社主)
라고 뒷짐만 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함으로써
직원들에게 귀감이 되고자 노력한다”고 말한다.
“(워낙 기술을 잘 아니까) 직원들이 어려워합니다. 변명이
안 통하고 딴소리도 못하니까요. 저도 나름대로 직원을 배
려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래도 현장에서 (잘못하는 게) 보
이면 그냥 넘어가기가 어렵더라고요.(웃음)”
‘절약’을 중요 덕목으로 꼽아
예순 중반의 나이에도 탄탄한 건강을 자랑하는 비결은 매
일 1시간 30분씩 하는 헬스. 50대 중반, 체력이 급격히 떨
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
에 지금은 회사 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체력을 자랑할
정도가 됐다. 지난 연초에 간부급 40여 명이 한라산 등반
을 했을 때도 선두그룹에서 올라갔다.
그는 ‘절약’을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로 무더운 여름을 날 정도다. 임원들조차도 밖
에 나갈 때 불을 켜놓았다간 전 회장에게 혼쭐이 난다. 현
장에서도 낭비 요소가 발견되면 곧바로 질책하는 편이다.
하지만 품질관리나 원가절감을 위한 투자는 아끼지 말아
야 한다고 강조한다. ‘꼭 필요한 데도 안 쓰는 것 또한 낭
비’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사람들이 가끔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수입보다
적게 지출하면 된다’고 대답해줍니다. 항상 근검절약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부자가 되는 방법 아니겠습니까.”
전 회장은 “자동차 부품 분야에서만큼은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싶다”면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후손에게 자랑스
럽게 물려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