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삼 시집, {비는 소리를 갖지 않는다} 출간
목울대가 없다, 비雨/ 있다, 비悲// 사물들이 제 머리를 들이대어/ 나름의 소리를 빚어내는 것이다/ 길은 온몸으로 누워 도 도, 도로 눕고/ 머리 꼿꼿이 세워 파 파, 파래진 풀잎/ 양철지붕은 두 팔 벌려 라 라 라, 날아가는 연습을 한다/ 나뭇잎 돌림노래처럼 박수를 치는 동안, 비/ 제 몸 촘촘히 세워 주름을 잡는다/ 허공이 접혔다 펴졌다 거대한 아코디언이 된다/ 아니 스틱이 된다, 물 스틱// 맞는 자와 때리는 자만이 공존한다// 저 물주름 새새에서 걸어 나오는 아버지/ 자식을 잃고도 울지 않았던/ 때는 이때라고 빗줄기 세차게 콧등을 후려친다/ 내장 깊이 꾹꾹 눌러 묻어두었던 슬픔/ 목울대를 친다, 아버지 목울대가 운다/ 이제야 완성된 당신의 울음/ 울음이 젖는다
- 「비는 소리를 갖지 않는다」 전문
비는 때리는 자(지휘자)이니까 목울대가 없고, 도로와 풀잎과 양철지붕과 나뭇잎들은 맞는 자(부르는 자)이니까 목울대가 있다. 비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물방울이 되어 지상으로 떨어지는 기상 현상을 말하고, 목울대는 목구멍의 중앙부에 있는 소리를 내는 기관을 말한다. “목울대가 없다, 비雨/ 있다, 비悲”라는 다소 상호 모순적이고 애매모호한 시구는, 그러나 ‘비’는 목울대는 없지만, 슬픔(슬플 비悲)이라는 감정의 목울대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비는 지휘자(때리는 자)이니까 슬픔이라는 감정의 목울대가 있는 자가 되고, 도로와 풀잎과 양철지붕과 나뭇잎들은 합창단원(맞는 자)이니까 소리의 목울대가 있는 자가 된다. 비는 때리는 자이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자이며, 그리니까 비가 내리면, 모든 “사물들이 제 머리를 들이대어/ 나름의 소리를 빚어내는 것이다/ 길은 온몸으로 누워 도 도, 도로 눕고/ 머리 꼿꼿이 세워 파 파, 파래진 풀잎/ 양철지붕은 두 팔 벌려 라 라 라, 날아가는 연습을 한다.” 길은 첫음계인 ‘도’를 맡고, 풀잎은 비를 맞고 파래지니까 ‘파’의 음계를 맡는다. 양철지붕은 두 팔 벌려 날아가는 연습을 하며 ‘라’의 음계를 맡고, 나뭇잎들은 돌림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친다. 모든 사물들이 뮤지컬 배우가 되어 돌림노래를 부르는 동안 비는 “제 몸 촘촘히 세워 주름을 잡는다/ 허공이 접혔다 펴졌다 거대한 아코디언이 된다/ 아니 스틱이 된다, 물 스틱”---.
비(지휘자)는 소리의 목울대가 없는 대신 슬픔이라는 감정의 목울대가 있고, 사물들(합창단원들)은 감정의 목울대가 없는 대신 소리의 목울대가 있다. 이러한 비와 사물들의 관계를 지휘자와 합창단원의 관계로 설정하고, 비는 소리를 갖지 않는다는 뮤지컬을 기획한 시인의 능력도 탁월하지만, 길은 ‘도’의 음계를, 풀은 ‘파’의 음계를, 양철지붕은 ‘라’의 음계를, 나뭇잎은 ‘돌림노래’를, 그 언어와 역할의 유사성에 착안하여 맡긴 것은 너무나도 대단하고 탁월한 연출능력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는, 음악은 모든 인간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한편, 모든 비정한 인간들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감화시켜 새로운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어렵고 힘든 자에게는 미래의 희망을 북돋아 주고, 길길이 사납게 날뛰는 자에게는 그 흥분과 분노를 가라앉혀 준다. 죄를 지은 자에게는 수치심과 양심을 되찾아 주고, 비정한 자들에게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부여해 준다. 기뻐해야 할 때는 기뻐해야 할 줄을 알아야 하고, 슬퍼해야 할 때는 슬퍼해야 할 줄을 알아야 한다. 분노해야 할 때는 분노할 줄을 알아야 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조용히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침묵할 줄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비’는 작곡가이자 연주자이며 지휘자이고, 따라서 ‘비’는 최후의 심판관처럼 “소리를 갖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때린다. 도로, 풀잎, 양철지붕, 나뭇잎들을 때리고, “자식을 잃고도 울지 않았던” 아버지의 콧등을 후려친다. 대기 중의 수증기가 많으면 소낙비가 되듯이, 아니,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산고에 지친 어미가 ‘마두금’ 소리에 젖을 물리듯이, 드디어, 마침내 “내장 깊이 꾹꾹 눌러 묻어두었던 슬픔”이 아버지의 목울대를 친다. 비는 시인의 채찍이 되고, 시인의 채찍은 비정한 아버지의 목울대를 치고, 아버지의 목울대에서는 천둥 번개가 번쩍하며 소낙비가 쏟아져 내린다.
유영삼 시인의 [비는 소리를 갖지 않는다]는 천하제일의 슬픔의 진원지이자 슬픔의 대폭발이라고 할 수가 있다. 유영삼 시인의 비는 소리를 갖지 않는다는 한 편의 뮤지컬(음악극)이며, 인간 중의 인간, 즉, 전인류의 스승인 ‘시인’에게 바쳐진 송가라고 할 수가 있다.
비정한 아버지의 내장에 꾹꾹 눌러 묻어두었던 슬픔을 천둥 번개의 소낙비, 즉, 너무나도 깊이가 있고 장엄한 시인의 노래로 승화시킨 것이다.
시인은 천지창조주이자 전인류의 스승이고, 최후의 심판관이다. 시인의 일생은 예술가가 아닌 예술작품 자체라고 할 수가 있다.
날을 간다/ 제 등걸에 울림판을 두들겨 칼날을 세운다/ 바람의 치맛자락이 갈기갈기 베인다/ 베인 바람의 살점들 양철지붕을 두드린다/ 제재소 톱날을 울린다/ 퍼런 톱날에 허공의 몸통이 잘리고/ 톱밥처럼 소리가 쌓였다 흩어진다/
- 「매미 소리」 부분
울컥, 솟는다/ 순간 멎는다 피/ 주먹을 울리고/ 망막에 사람을 키우고/ 울음 목젖으로 짓누르면 저리될 수 있구나/ 저렇듯, 자신을 달래던 이의 피는 희디 흰가/ 할머니가 그랬고 /어머니가 그랬고/ 내가 그럴 것 같은/ 죽은 여인들의 풀,/ 여인들만이 그들의 몸에 든 독을 삭힐 수 있다/ 저 먹먹해진 끈끈한 피를 걸러낼 수 있다/
- 「고들빼기」 부분
산후풍의 몸으로 산을 오른다
산야는 온통 산실, 산모들 저마다
자기 성을 가진 아기를 출산한다
뜨거운 숨소리 들으러 간다
젖내 깊게 밴 살내 그리워 간다
아니 그때의 통증 느끼러 간다
군자산 조령산 돌고 돌아
봄을 훔쳐 업고 안고 내려온다
저 봄 생들 산후풍을 다스린다
- 「봄을 훔치다」 부분
「매미 소리」에서 시인은 일주일을 울기 위해 칠 년의 시간을 땅속에서 견디는 매미의 삶에 주목한다. 칠 년 동안 매미는 말 그대로 “날을 간다”. 울림판을 두들겨 칼날을 세우지 않으면 매미는 한여름의 열기를 소리로 품어낼 수가 없다. 한없이 날카로운 매미 소리에 “베인 바람의 살점들 양철지붕을 두드린다”. 매미는 온몸으로 노래를 부른다. 몸 전체가 울림판이 되어 온 세계를 울리는 매미 소리를 가만히 떠올려 보라. 칠 년의 기다림이 있었기에 매미는 마음껏 울어 젖힐 수 있다. 한이 깊을수록 소리 또한 더욱더 깊은 맛을 드러낸다고나 할까?
칠 년 동안 묵힌 한을 매미는 한여름을 울리는 소리로 원 없이 풀어냈다. 「고들빼기」에도 이런 매미에 버금가는 한을 품은 사물이 나온다. 시인은 고들빼기를 “죽은 여인들의 풀”이라고 부른다. 오로지 제 욕망을 짓누른 “여인들만이 그들의 몸에 든 독을 삭힐 수 있”다. 가슴에 맺힌 한이 얼마나 깊기에 스스로 몸에 든 독을 삭혀 “저 먹먹해진 피를 걸러낼 수 있”는 것일까? 할머니가 먹은 풀을 어머니가 먹었고, 그 풀을 이제는 시인이 먹고 있다. 가부장제를 사는 여인들의 한을 시인은 고들빼기에 비유하여 실감 나게 표현하는 것이다.
매미의 울음소리나, 고들빼기에 스민 독은 「봄을 훔치다」에 이르면 산후풍을 겪는 “저 봄 생들”로 이어진다. 봄이 온 산야는 지금 “자기 성을 가진 아기를 출산”하느라 바쁘다. 시인은 생명을 낳는 어미들의 뜨거운 숨소리를 들으러 산을 오른다. 산 곳곳에 풍기는 젖내와 살내를 온몸으로 느끼며 시인은 오랜만에 “그때의 통증” 속으로 들어간다. 산후풍을 기꺼이 감수한 어미가 있기에 저 생들은 서슴없이 꽃을 피웠다. 뭇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 오면 시인은 절로 온몸이 달아오른다.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어미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 유영삼 시집, 비는 소리를 갖지 않는다, 도서출판 지혜, 값10,000원
저자 소개
유영삼
유영삼 시인은 충북 청주(청원)에서 태어났고, 2005년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흙과 돌아보다가 있고, 2010년 충북 여성 문학상 수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충북작가회의’와 ‘보은문학회’와 ‘새와 나무’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영삼 시인의 비는 소리를 갖지 않는다는 흙과 돌아보다의 뒤를 이어서 그의 세 번째 시집이며, 대단히 지적이고 현학적인 시집이라고 할 수가 있다. 지적이라는 것은 그의 지식이 아주 깊이가 있다는 것을 뜻하고, 현학적이라는 것은 수직적, 혹은 전지적 차원에서 그 어떤 사건을 기획하고 연출하며, 그 모든 것을 총결산한다는 것을 뜻한다. 유영삼 시인은 비는 소리를 갖지 않는다의 뮤지컬의 기획자이자 연출자이며, 자기 자신이 ‘비’로 분장한 주연배우이자 비정한 아버지마저도 울게 만드는 최후의 심판관이라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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