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간에 자칫하면 초대형 스파이 스캔들이 터질 뻔했다. CNN과 뉴욕 타임스(NYT)등 미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접근이 가능한 크렘린 고위 관리를 미 중앙정보국(CIA)이 오랫동안 정보원(스파이)로 활용하다가 안전을 이유로 미국으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빼돌리기' 작전이 만약 실패했다면, 초대형 '스파이 태풍'이 양국을 덮쳤다는 뜻이다.
CIA는 지난 2017년 하반기에 그(?)를 미국으로 데려왔다. 그는 크렘린의 외교정책국에서 일했던 올레그 스몰렌코프(48)라고 러시아 언론은 지목했다. 2017년 6월쯤 스몰렌스크 부부가 세 자녀와 함께 발칸반도의 몬테네그로(러시아어로는 체르노고리야 Черногория)로 휴가를 떠난 뒤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몬테네그로에서는 '살해' 가능성을 염두에 둔 수사까지 진행됐다고 한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그는 푸틴 대통령의 외교고문(보좌관)인 유리 우샤코프을 주미 러시아 대사관 시절부터 모신 측근이었다. 주미 대사관에서는 대사관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물품 조달' 일을 맡았고, 2008년 우샤코프 대사의 귀임과 함께 러시아로 돌아왔다. CIA가 그를 포섭했다면, 주미 대사관 근무 시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10여년간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뜻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그의 존재를 인정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스몰렌코프가 대통령 행정실에서 일했으나 그의 직위가 대통령과 직접 접촉하거나 고급 기밀 정보를 취급하는 고위 공직자 부류에는 속하지 않았다"면서 "몇 년 전 내부 결정으로 해고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NYT는 "러시아 최고위층의 의사 결정에 접근할 수 있는 그의 정보를 토대로 CIA는 푸틴이 2016년 미국 대선 개입을 직접 지시했다는 결론과, 푸틴이 트럼프의 당선을 선호했고 개인적으로 민주당 전국위원회 서버의 해킹을 명령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CNN은 "그가 러시아를 떠남으로써 미 정보 당국은 현재 그만한 정보 자산을 러시아에 갖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그가 그동안 '스파이중의 스파이'였다는 것이다.
그런 스파이를 탈출시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미 언론은 트럼프 미대통령의 '대책없는 입'을 지목했다. 2017년 5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제공한 이슬람 테러집단 IS 정보를 공개하고, 같은 해 7월 트럼프가 푸틴 대통령과 배석자 없이 둘만 만나고 통역의 노트까지 압수하는 등 '주요 정보'에 대한 대통령의 '보안 마인드'를 우려했다는 것이다.
또 2017년 초 미 정보 당국이 '푸틴이 직접 미 대선 개입을 지시했다'는 구체적인 보고서를 낸 뒤, KGB 요원 출신인 푸틴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냄새를 맡을 가능성'도 우려됐다고 한다. 그가 몬테네그로에서 사라진 시점은 대충 그해 6월이다. 당시 CIA 국장은 현 국무장관인 마이크 폼페이오였다.
CIA는 이 정보원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 정보원은 그러나 미국으로 온 뒤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워싱턴 지역에 살고 있고, 가명조차 쓰지 않는다고 한다.
브리트니 브래멀 CIA 사무국장은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가장 민감한 정보를 다루는 방식이 소위 귀환 작전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언론의 추측은 부정확하다"고 말했고, 스테퍼니 그리셤 백악관 대변인도 "CNN 보도는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