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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 빌3:20-4:1
주신 말씀 빌3:20-4:1을 중심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로써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주님 주시는 은혜 받도록 하겠습니다.
앞 단락 17절에서 바울은 나를 본 받으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 한 것은 교만해서도 아니요, 우월의식에서 나를 본 받으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 의를 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죄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신의 모습을 본받으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위한 바울 자신의 헌신을 본 받으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본받고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것 즉 자기 행위로 구원 받으려는 것이나, 육신은 악하고 영만 선하다는 영지주의자들의 교훈이나, 자기 정욕대로 방탕하게 살아가는 반도덕주의자들의 교훈이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자들의 미래는 멸망이며, 저들은 자신들의 배를 신으로 섬기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신들의 정욕과 이익만 추구하기에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움이 되고, 그들은 땅의 일만 생각하는 육신의 일만 추구하는 영세교들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가 거짓을 버리고 정직회복 운동에 앞장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답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십자가의 원수로 사는 자들을 경계하고 그들의 자리에 서지 않기 위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답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천국시민에 걸 맞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20)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로써 소망과 확신위에 굳게 설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민권(πολίτευμα 폴리튜마)은 시민으로 행동하다에서 유래하여 시민의 권리라는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 BC31년 악티움 전쟁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를 패퇴시키는데 빌립보 시민들이 공로가 있다고 빌립보 시민들에게 로마시민권을 부여하고 자치권을 보장한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즉 식민지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지배자들만이 가진 로마시민권을 갖고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몸은 비록 땅에 살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들마다 하늘나라 시민으로써 하늘 시민권이 보장되었다 말 합니다.
바울은 비록 아직 실제로 임하지는 않았지만 미래에 그리스도께서 정의로써 다스리실 그 나라를 바라보고 성도들이 바로 이 나라의 영광스러운 시민권을 갖고 있음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즉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현재는 지상에 머물러 있으나 이제 곧 머지않아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하늘 본국에 가게 될 것이며, 그곳에는 그들의 유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반도덕주의자들에 대해 경계할 것을 말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선언하는 것은 성도야 말로 이 땅의 법률이나 도덕 기준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성결한 법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소속이 하나님 나라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소속이 하나님 나라인 성도는 방종한 삶이 아니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거기로부터(έξοϋ και 엑스 후 카이)는 그곳으로부터 또한 이라는 말인데 거기는 하늘을 말하고 ,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마지막을 성취하기위해 오실 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그분은 임박한 진노로부터 완전한 구속 곧 그 영광을 그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가져 다 주실 것입니다.
완전한 구속이란 롬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를 말합니다.
기다리노니(άπεκδεχόμεθα 아페네코메다)는 εκδεχόμεθαι(엑데코마이)가 기다리다, 찾다, 기다리다는 뜻에 접두어 άπο의 합성어로써 꾸준하고 간절하고 소망에 찬 갈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어디에 있든지 그 행위가 천국시민이라는 사실이 분면하게 보일 수 있도록 공평하고 정의롭고 바른 것으로 증명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국시민들은 그에 걸 맞는 자격을 갖추어야 조건들입니다.
먼저 하늘의 주 만 사모해야 합니다.
시73:24-26“...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다음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마6:19-21 “...오직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합니다.
그리고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고후4:18“...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끝으로위엣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합니다.
골3:1-3“...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것을 찾으라 ...위엣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하십니다.
둘째로 하늘시민에 합당한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으라(21)
그리스도께서 장차 우리 성도들의 몸을 자신의 영광스런 몸처럼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얼마든지 주님처럼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시켜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낮은 몸(σώμα τής ταπεινώσεως)은 낮은 (ταπεινώσεως 타페이오세오스)이란 비천함, 낮은 지위, 굴욕이나 수치, 혹은 하찮음이나 죄악성을 인식하고 슬퍼하도록 유도하는 영적인 낮아짐을 뜻하는데 여기에서 이렇게 사용한 것은 인간의 육신이 죄로 인하여 죄의 속박가운에 있기 때문이며 ,연약하여 죄에 쉽게 지배당하기 때문이며, 질병과 외적 세력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낮은 몸과 대조되는 영광의 몸(σώματι τής δόξης)은 부활의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처럼 성도들도 장차 입게 될 몸을 나나냅니다.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한 그 신령한 몸을 말합니다.
낮은 몸에서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μετασχηματίσει메타스케티세이)는 바꾸다(μετά)+모양(σχημα)의 합성어로써 모양을 바꾸다, 변형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말로 미래에 반드시 이루어질 낮은 몸이 영광의 몸의 형상으로 변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이 낮은 몸은 죄짓기 쉬운 욕망, 질병, 고난 등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지만, 그리스도의 몸은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이기에 이러한 욕망이나 질병이나 고난등에 노출되지 않고 시험당하지 않는 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변화산에 가셨을 때 마17:2 “저희 앞에서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 졌더라” 모습입니다.
밧모섬에서 계시록을 쓴 요한사도는 계1:13-16“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맑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한 모습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몸도 주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만 가지고 있지 하늘 시민에 합당한 몸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실 때 우리의 몸을 하늘 시민에 합당한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주의 자랑과 기쁨으로 주 안에 굳게 서라 (4:1)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자신이 사랑을 강력한 어조로 밝힌 다음 다시 한 번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설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는 20-21절에서 말한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써 소망과 확신위에 굳게 설 것에 대한 권고가 본 절에서 마무리 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그리스도 재림의 날에 영광의 형체로 변화될 것이기 때문에 그 소망을 가지고 주 안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친밀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고(άγαπητοί아가페토이)는 사랑받는 이란 뜻이며 사모하는(έπιπόθητοι)는 사모함을 받는 이란 뜻으로 사모하고 사랑받는 빌립보 교인들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하나님은 우리의 주가 되셨으며, 예수님이 오신 후에 예수님은 우리의 선생이 되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는 우리의 형제가 되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예수님과 한 형제자매가 된 줄 믿습니다.
이어서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라 하면서 빌립보 교인들이 바로 자신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면류관(στέφανός)을 둘러놓다는 스테포(στέφω)에서 유래한 명사로 육상 경기에서 우승한 자에게 씌워주는 월계수관을 말했으나, 왕의 지위 혹은 고귀한 지위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이렇게 부름으로써 자신의 신뢰감과 자랑스러움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바울이 이렇게 호칭하는 것은 빌립보 교인들로 인하여 바울 자신이 주 앞에서 상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울 자신이 목회하여 양육한 성도들이 성장하여 좋은 일군 된 것은 바울의 자랑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므로 그의 목회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여 그 성도들을 후견하고 양육하여 좋은 일군이 되기까지 함께 한 후 내 기쁨이요 면류관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열매를 맺는 성도되시길 축원 합니다.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οϋτως στήκετε έν κυρίω)는 말은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강력하게 피력한 후에 다시 한 번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설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즉 주와 함께 주님 때문에 주로 말미암아 주님으로 인 하여라 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주안에 주가 내 안에 계시는 완전 하나된 상태는 내 영이 하늘에 속해 있어 성경 말씀을 읽고 쓰고 듣고 내 장부에 그대로 새겨 삶속에서 스물 스물 베어나와 예수님이 말씀하시듯 사랑을 말하고 예수님이 봉사하고 섬기듯 낮은 곳에서 친절하게 섬기며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파되고 호흡하며 머무는 곳마다 주의 향기로 가득차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이 사는 길은 경건과 정직으로 계속하여 굳게 서 있어 나라가 나라답게 권위와 체통을 회복하고 국민이 국민답게 참 자유를 누리며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모두가 땀 흘려 일한 만큼 보상 받는 평등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를 기대하고 축원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답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천국시민에 걸 맞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20)
둘째로 하늘시민에 합당한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으라(21)
셋째로 주의 자랑과 기쁨으로 주 안에 굳게 서야 합니다. (4:1)
자기 정욕대로 행하고 십자가의 구원의 진리를 버리는 것은 곧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늘 시민권자답게 바르고 정직하게 공의를 행하므로 세상에 빛이 되고 본이 되는 삶을 살아내는 성도가 되어 주님의 기쁨과 자랑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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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을 빛님 세게는 나의 일터님 항상 힘주시니 감사합니다.
주께서 부흥의 영을 부어 주시어 충성스런 종이 되도록 축복하시길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많으십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격려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시민권^^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시민권을 받은자의 삶을 살게하소서
그리스도께서 재림 하실 때 우리의 몸을 하늘 시민에 합당한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