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하의 장편소설 『소설 이승휴』출간
김익하의 장편소설 『소설 이승휴』가 ‘문학세계사’에서 2016년 11월 23일에 출간되었다.
부제「휴휴와 죽죽선이 죽서루에 오르다」가 붙은 이 작품은 33장 440쪽의 장편소설이다. 평론가 남기택 강원대 교수가 작품을 해설했고, (사)동안 이승휴 사상선양회 이원종 이사장과 세명대 이창식 교수가 추천사를 붙였다. 가격은 15,000원이다.
[작자의 말]
미상未詳에 대한 물음
물신시대物神時代. 이 소설은 드러나지 않은 미상未詳과 그 가치에 대한 관심이자 물음이고 여행이다. 그러나 미상에 대한 복원 작업이 전해지는 미미한 몇 조각들만 가지고 다분히 상상과 허구에 의존하는지라 이견이 없을 수 없다.
그 이견을 나는 전적으로 환영하고 수용하며 또한 부단히 지속하기 바란다. 아울러 그것이 진실에 접근하려 자료를 찾아내고 고증하려는 작업까지 부추겨서 실체의 규명에 촉진제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지다.
그러한 시시비비 거리를 제공하여 실체의 바탕에 이르게 하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집필할 용기를 주었다. 녹슬어 가는 철 구조물도 그대로 두면 흔적 없이 사라지지만, 녹슬어도 자주 건들어야 산화되기 전의 철 재질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원리와 같은 이치다.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가장 무소불위한 영역은 아마 상상과 허구일 게다. 나는 이 소설에서 폭군처럼 그 특권을 무한대로 활용했다. 따라서 생각에 궁함이 없었고, 사물을 대함에 주저하지 않아서 힘듦 속에서도 무한 자유를 만끽하느라 행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어떨 땐 조각들이 여러 형상으로 왜곡된 정보보다 차라리 남아 있지 않은 미상의 것에서 더 많은 허구와 상상을 얻을 수 있어 내 시선이 자유로워 신명마저 났다. 그러나 미상에 대한 복원 작업이란 마치 바람 냄새를 맡고 그 바람이 스쳐온 곳의 정황을 추출해 내는 일과 같아 때로는 상상으로도 한계를 느꼈던 것 또한, 부인하지 못하겠다.
또 하나 집필의 의도에는 향리 미상인 그것 이승휴, 죽서루, 죽죽선에 관한 애정 때문이라 고백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귀에 익은 것들인데 자연의 한 모서리이듯 그 근원을 몰랐다.
역사의 흐름은 괭이질 소리를 내지 않고 삽질 소리를 내기에 개천에 구르는 차돌도 벽옥璧玉같이 여기자는 애향의 정情도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기록 남기기를 소홀히 한 왕조에 관한 관심은 때로는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조선은 시시콜콜 기록을 너무 남겨서 ‘이다 저다’ 하는 왕조지만, 고려는 죄인의 문초 기록을 형벌이 끝난 뒤면 아무렇게나 버려 훼손한 왕조였으니 남아 있는 것마다 제가끔 다르고, 그나마 남의 글을 퍼 나르면서 오탈자로 범벅되어 있어 역사 추리나 복원에서의 어려움은 성격 급한 사람에게는 적성이 맞지 않은 일임을 늦게야 깨우쳤다 그러나 배움 또한, 컸다.
한 편의 소설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묶어내는 데는 알게 모르게 본의 아니게 도움을 받은 분들이 적지 않다. 자료를 제공한 이들과 처지기만 하는 집필 속도를 부추겨 준 주변 분들이 모두 그렇다. 고마운 이런 분들이 너무 많기에 일일이 지면 밖에서 감사를 드릴 작정이다. 다만 소설 자료를 알뜰히 챙겨 주고 자료 게재를 허락해 준 (사)동안 이승휴 사상 선양회 관계자와 필자와 일면식도 없는 터에 해설을 붙여 준 평론가 남기택 교수, 책 모양새를 갖춰 준 문학세계사에 지면을 통하여 고마움을 드린다.
2016년 늦가을
서울 초광제草筐齊에서
[작품 해설 일부 발췌]
역사와 장소, 로컬 히스토리
남기택(문학평론가. 강원대 교수)
…김익하의 『소설 이승휴』는 이승휴(1224∼1300)의 삶을 소재로 한 33장 1,300매 장편 역사소설이다. 부제 ‘휴휴와 죽죽선이 죽서루에 오르다’가 표상하듯 이승휴와 죽죽선의 관계가 죽서루를 매개로 펼쳐지는 것도 중심 내용이다. 김익하의 역사적 상상력은 이승휴의 일대기를 장편 서사물의 긴 호흡으로 생생히 재현해 낸다. 역사소설의 장르적 위상이 약화되는 시점에서, 그나마 흥미 위주의 판타지 역사물이 주류 경향인 문단 실정에서, 김익하의 이번 장편이 제기하는 문제는 사뭇 진지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이승휴의 현재화에 있다. 오늘날 휴휴는 고려 시대의 학자이자 문인이며, 서장관으로 원나라에 가서 문명을 떨쳤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대 사적을 칠언시와 오언시로 기록한 역저 『제왕운기』를 낳은 이로 규정된다. 소설은 이러한 정형에 새로운 정동(affect)을 불어넣는다. 삼척 출신이자 죽죽선의 연인이요 죽서루 건립의 주역이었던 삶이 다시 태어난다. 또한, 그런 상상력의 지평이 수반하는 미적 가치를 숙의해야 할 몫을 독자에게 남겨 놓았다.
…(이) 소설에서 우선 부각되는 인물은 죽죽선이다. …죽죽선의 존재는 이 소설에 대중성을 가미하는 극적 요소라 할 수 있다. 우선 죽죽선은 이승휴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운명적인 인연을 직감하는 이들은 소설 전편에서 애절하고도 인간적인 정분을 유지해 나간다. 이러한 죽죽선과의 관계 묘사는 뜨거운 감정을 지닌 인간 이승휴를 부각시킨다. 또한, 죽죽선은 죽서루라는 이름의 배경으로도 기능한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화소는 이승휴의 삶과 업적일 것이다. 이승휴의 행적은 소설 전편을 관류하며 주요 사건으로 배치된다. 예컨대 초라한 죽서정을 누각으로 건립하자는 최초 건의(6장), 요전산성에서 현령을 도와 외침을 방어했던 역사(8장), 122운 병과시病課詩 제작의 구체적 과정(18장), 두 번에 걸친 서장관 수행 경로와 『빈왕록賓王錄』으로의 기록(28장), 안렴사 활동에 의한 좌천과 십사十事 상소에 따른 파면(30장), 낙향 후 『제왕운기』집필(32장)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들 서사는 이승휴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을 구체적으로 복원할 뿐만 아니라 그가 지닌 민족사관과 문학사상에 대한 재해석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관련 사료에 대한 수용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면모는 이 작품이 소설적 형상화를 넘어서 하나의 비평적인 혹은 학술적인 담론 수위를 지니는 이유에 해당된다.
…이승휴의 재구성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인간 이승휴의 면모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죽죽선과의 관계는 이승휴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하는 결정적 기제이다. 역사적 기록 속에서 문인이자 학자로서의 강직한 삶 이외에 이승휴의 사적 인생은 알려진 바가 적다. 이 소설은 인간 이승휴의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법과 에피소드를 활용한다. 죽죽선과의 애정 외에도 주변 인물과의 감정적 갈등, 인간적 번뇌, 권력을 향한 욕망 등은 세속적인 인간상의 전형적 양태들이다. 이처럼 이 작품은 초월적 영웅으로서가 아닌 한계가 분명한 하나의 인간으로서 이승휴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 밖의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사람은 죽서루를 지은 도편수 심치곤이다. …(그의) 광기는 흔히 예술혼에 유비된다. 죽서루에 대한 열정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신체가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게 하였다. 심치곤은 건립자 명단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뺐던 인물이다. 건물 자체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지 인위적 명망은 부차적이라는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심치곤의 미학과 인생은 인간과 자연, 존재와 사건 간의 길항으로 구성되는 또 다른 가치를 환기한다. 봉건 사회의 제도적 한계를 넘어서는, 나아가 인간 중심의 존재론적 단위를 초월하는 공동체의 질서가 암시되는 국면인 것이다.
작품 말미에 이승휴는 죽서루에서 심치곤과 재회한다. 아들을 대동하고 죽서루를 찾은 심치곤은 눈먼 감각으로 자연과의 교응을 강조한다. 그가 아들의 입을 통해 “봄이면 강 건너 끼는 운애運靉와 봄 뜰의 아지랑일 보라고 했고, 여름이면 벼랑 밑 오십천 물빛과 강물 소리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지 또한, 가을이면 댓잎에 이는 바람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고, 눈이 내리는 겨울철이면 눈 속에 파묻힌 죽서루를 보라고”(31장) 전언한다. 인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공동체, 존재론적 조건으로서의 자연을 타자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이로부터 발견된다. 장소 혹은 물화된 감각에 보다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승휴와 죽죽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장편 서사물에는 이들 외에 또 다른 중심인물이 있다. 그는 인간이 아닌 로컬리티, 이를테면 장소로서의 죽서루이다.
이승휴를 삼척의 인물로 전유하려는 내포적 욕망은 자연스럽게 장소성 문제로 이 소설의 핵심을 전이해 간다. 공간적 배경에서도 이러한 지평을 확인할 수 있다. 텍스트의 핵심 서사는 역사를 복원하고 있으며, 자동기술적으로 역사적 장소의 재현이 수반된다. 이 작품의 주된 공간적 배경인 강원도 삼척이라는 장소가 대표적이다. 삼척은 이승휴의 역저 『제왕운기』의 산실이며, 이 소설을 쓴 김익하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 역시 문학의 장소성 문제와 긴밀히 연동된다.
…이는 거대담론의 세대로서 민족문학적 지평에 귀속될 김익하 문학세계의 전반적 성격이기도 하다. 그것이 가치평가의 대상은 아니다. 이-푸 투안Yl-Fu Tuan이 『공간과 장소』에서 언급한 대로 공간은 명확한 뜻과 의미를 획득함에 따라 장소로 전환되는 것이며, 장소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친밀함’이다. 죽서루의 전사는 장소에 내재된 관계의 친밀함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김익하의 소설은 역사와 장소, 인물과 사건이 하나의 총체성 아래 길항하는 우리 시대의 서사시를 표방한다. 더더욱 이 소설은 스스로 중층적 장소를 현전하는 사물이고자 한다. 소설적 형상화를 통해 문학담론의 지평을 끌어안고, 미완의 역사나 지방사적 결여를 보완하려는 학술적 입론을 과감히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이 『제왕운기』의 산실인 삼척의 장소성을 역사에 투영한 르포르타주와 같다는 점도 텍스트적 중층성의 한 층위이다. 바로 이 부분이 이승휴의 현재성을 증거하는 논거이자 소설 이승휴가 전유하는 역사적 진실일 것이다. 그 과정에는 죽서루를 포함하여 자연이라는 타자가 또 하나의 주체이자 공동체 일원으로 부각된다. 작가의 의도를 떠나 이러한 타자의 지평은 김익하 소설이 역사와 인물에 주목하는 과정에서 산파되는 정치적 무의식이요, 독자의 입장에서 징후적 독서가 발견한 현재적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긴 서사의 결구와 더불어 어느덧 밤은 지나가고 바람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미상의 장막을 뚫고 이승휴와 죽죽선과 죽서루가 오롯한 현재로 떠오른다. 그렇게 김익하의 『소설 이승휴』는 타자의 장소가 물화된 로컬 히스토리로서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다.
[추천사]
이승휴의 삶을 통해 복원한 잊혀진 고려의 역사
이승휴 선생이 사셨던 13세기의 고려는 100년의 무신정권 끝 무렵이면서, 40여 년간 국토 대부분을 몽골에 짓밟힌 치욕의 시대이며, 풍습의 변화가 크게 일었던 변환기였다. 이러한 격변기에 선생은 관리로서 나라의 허약함에 개탄하고 이민족의 침략 앞에 철저히 짓밟히는 백성의 고통을 함께하면서 고려와 겨레의 영원한 미래를 걱정하여 영사시詠史詩의 형식으로 역사서사시인 『제왕운기』를 기술하여 후손들에게 자존의식과 자긍심에 대한 가르침을 남겼다.
선생께서 사시던 시대로부터 8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데도 미미한 조각들을 꿰어 가며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유장한 문체로 그려낸 이 소설은 아득한 역사 속에 갇혀있던 선생의 올곧은 삶과 뜻이 탁란濁亂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될 것이다.
이원종[(사)동안 이승휴 사상선양회 이사장. 정치학박사]
『소설 이승휴』는 민족 주체적 역사에 대한 소통과 복원을 형상화한 작품이며 고려 지식인 이승휴에 관한 사실에 근거하되 그에 대한 학술적 시비 대목도 철저히 고증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재미와 속도감이 있는 구성으로 전설적으로 남아있는 죽죽선竹竹仙을 완벽하게 복원하고, 이승휴가 그녀와 교류하는 위치에 매김하여 학문적 ·〮 역사적인 대상인물에서 인문학적 · 인간적인 인물로 재창조함으로써 보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인물로 그려낸다. 또한, 죽서루竹西樓 건립에 대한 김극기 시문에 대한 의문도 재해석하여 미상의 것을 복원하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이승휴에 대한 모든 자료를 집약하여 사적으로 정리했다.
이 소설의 출간으로 이승휴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분명 확대될 것이고 그의 인문 콘텐츠 확장으로 이승휴의 수용사에서 기념비적 의미를 담을 만큼 값지다.
이창식 [세명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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