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3부 일통 천하 (53)
제11권 또 다른 난세
제 6장 방연(龐涓)과 손빈(孫賓) (8)
제나라 국경 안으로 들어선 검부(黔夫)는 전기가 보낸 호위 군사들을 보고서야 달리는 것을 멈췄다.
일단 한 객점에 들러 손빈(孫賓)을 목욕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 입혔다.
그러는 사이 순우곤 일행이 당도했다.
순우곤(淳于髡)은 손빈을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에 태워 임치성을 향해갔다.
전기(田忌)가 임치성 10리 밖까지 나와 손빈을 맞이했다.
그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 제위왕을 알현했다.
"수고했소."
제위왕(齊威王)은 친히 손빈을 의자에 앉혔다.
곧 병법에 관해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위왕의 입은 점점 벌어졌다.
소문대로 손빈(孫賓)은 병법에 통달해 있었던 것이다.
손빈은 묻는 말에 막힘없이 대답할 뿐 아니라 상세한 해설까지 곁들였다.
"과연 손무(孫武) 선생의 후예답도다!“
제위왕(齊威王)은 손빈에게 상경 벼슬을 내리려 했다.
그러자 손빈(孫賓)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신(臣)은 아직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 어찌 벼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또 신이 제(齊)나라에서 벼슬한다는 소문이 나면 위나라 방연(龐涓)이 무슨 간특한 짓을 꾸밀지 모릅니다."
"바라건대 신이 제(齊)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말아 주십시오.
후일 기회가 되면 스스로가 나서서 신의 존재를 밝히겠습니다."
제위왕(齊威王)은 손빈의 청을 받아들였다.
우선 그를 전기의 집에 거처하도록 명했다.
전기(田忌)는 손빈에게 가장 좋은 방을 내주고 상객(上客)에 대한 예로써 그를 대우했다.
BC 355년(제위왕 24년, 위혜왕 16년)의 일이었다.
진(秦)나라에서는 공손앙이 한창 개혁 정치를 펴고 있을 무렵이기도 했다.
그 무렵, 임치성에는 경륜(競輪)이 유행했다.
경륜이란 수레 경주를 말함이다.
제위왕(齊威王)도 경륜을 무척 좋아했다.
틈만 나면 공자 및 일족들과 더불어 경륜장으로 나가 돈 내기를 하였다.
전기(田忌) 역시 경륜에 빠진 사람 중의 하나였다.
제위왕과 전기는 종종 많은 돈을 걸고 내기를 했다.
그런데 전기의 말들이 제위왕의 말보다 못한 탓인지 전기(田忌)는 매번 내기에서 패했다.
반대로 제위왕(齊威王)은 돈을 따는 재미로 전기와 내기하는 것을 무척 즐거워했다.
어느 날, 손빈(孫賓)은 전기를 따라 경륜장으로 나갔다.
그 날도 제위왕의 수레와 내기를 했는데 전기(田忌)가 패했다.
손빈이 그 말들을 유심히 살피다가 전기를 돌아보며 물었다.
"수레 경주는 늘 세 판을 합니까?“
"그렇소. 세 판을 하여 두 번 이기는 사람이 승자요."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내일 다시 한번 왕과 내기를 하십시오. 제가 반드시 장군을 이기게 해드리겠습니다.“
전기(田忌)가 반신반의했다.
"애당초 말의 주력(走力)에 차이가 나는데, 어찌 왕의 수레를 이길 수 있단 말이오?“
"장군은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많은 돈을 걸어도 좋습니다.“
"알겠소. 그렇다면 그대를 믿고 내일 천금(千金)의 돈을 걸겠소."
전기(田忌)는 제위왕 앞으로 나가 말했다.
"신은 지금까지 왕과 겨루어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잃은 돈만도 천금(千金)이 넘습니다.
이제 신은 내일 천금을 걸고 왕과 승패를 겨룰까 합니다. 왕께서는 신의 도전에 응하시겠습니까?"
제위왕(齊威王)은 기분이 좋아 한바탕 크게 웃은 후 대답했다.
"얼마든지 장군의 도전을 받아주겠소. 돈을 잃어도 과인을 원망하지 마시오."
다음날이었다.
제위왕(齊威王)과 전기(田忌)가 천금을 걸고 수레 경주를 한다는 소문이 퍼진 탓인지 경륜장에는 많은 공족과 대부들이 몰려들었다.
백성들도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내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기(田忌)가 손빈에게 물었다.
"이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시오. 천금이라면 내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요. 이 내기에서 지면 나는 망하오."
손빈(孫賓)이 대답했다.
"제가 살펴보건대 왕의 말과 장군의 말에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말들을 잘 활용하지 못해 그동안 진 것 뿐입니다. 이제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십시오.“
"무조건 따를 터이니, 어서 그 비법이나 말해주시오."
"우선 장군의 말을 상ㆍ중ㆍ하로 나누십시오.
그런 후에 가장 좋지 못한 말이 끄는 수레를 왕의 가장 좋은 말과 경주 시키십시오. 그러면 첫 판은 질 것이 뻔합니다.
두 번째 판에서는 장군의 가장 좋은 말을 왕의 중등마와 겨루게 하십시오.
말의 능력으로 보아 이길 것이 분명합니다.
세 번째 판에서는 장군의 중등마를 내보내 왕의 하등마와 달리게 하십시오.
역시 이길 것이 틀림없습니다.
세 판 중에 한 판은 지고 두 판은 이길 것이니, 결국 장군이 승리를 하게 됩니다."
손빈의 말을 듣자 전기(田忌)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말을 자아냈다.
"선생의 계책이 참으로 절묘하오!“
"말의 상ㆍ중ㆍ하는 제가 골라 드리겠습니다.“
전기(田忌)는 손빈이 골라준 상ㆍ 중ㆍ 하의 말에 각기 휘황찬란한 장식을 했다.
이윽고 경주가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제위왕(齊威王)은 상등마를 가장 먼저 내보냈다.
전기(田忌)는 손빈이 알려준 대로 하등마가 끄는 수레를 내어 달리게 했다.
첫판에서는 제위왕의 수레가 월등하게 앞섰다.
제위왕(齊威王)이 통쾌하게 웃었다.
"장군은 이제 큰일났소.“
전기(田忌)가 여유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직 두 판이 남아 있습니다. 신이 세 번 다 지거든 그때 웃으십시오."
제위왕의 두 번째 수레가 나왔다.
중등마가 끄는 수레였다.
전기(田忌)는 재빨리 자신의 말 중 가장 좋은 말들이 끄는 수레를 내었다.
두 대의 수레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결과는 과연 손빈(孫賓)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전기의 수레가 앞서 들어온 것이다.
세 번째 판도 마찬가지였다.
전기(田忌)의 중등마가 제위왕의 하등마를 제치고 먼저 도착했다.
이로써 총 전적은 2승 1패.
전기의 승리였다.
전기(田忌)는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연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제위왕이 내주는 1 천금을 받았다.
그때 제위왕(齊威王)이 물었다.
"장군은 이제껏 한 번도 나를 이겨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어찌된 일이오?"
전기(田忌)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실은, 오늘 왕과 겨루어 이긴 것은 신(臣)의 힘이 아닙니다. 손 선생이 도와준 덕분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전기는 이기게 된 까닭을 낱낱이 제위왕에게 고했다.
제위왕(齊威王)의 얼굴에 감탄의 빛이 가득했다.
"이 일을 어찌 작은 일이라 할 수 있으리오. 과인은 이제야 손(孫) 선생의 뛰어난 재능을 보았소."
그 뒤로 제위왕(齊威王)은 손빈을 더욱 공경하며 전기와 더불어 군사 훈련을 맡겼다.
하지만 여전히 손빈의 존재는 비밀에 붙였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