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무덤
이희은
화석이 된 일기를 꺼냈다
부장품으로 구석에 있던
서랍을 닫을 때 밀어 넣었던 글자들
조각 그림처럼 맞추어 보았다
뒤집힌 주머니 같은, 찢어진 지폐 같은, 짝 잃은 장갑 같은,
당신 일기 속,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
굳어버린 어제가 떨어져 내렸다
아무에게도 손 내밀지 못했던 글자들
이제야 내게 왔다
일기를 이어 써야 할 시간이다
---이희은 시집, [밤의 수족관}(근간)에서
이희은 시인이 “화석이 된 일기를 꺼냈다”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속된 호기심의 소산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지난 날을 반성하고 성찰함으로써 새로운 ‘나’의 탄생을 이끌어 내겠다는 의지의 소산일 수도 있다. 일기는 [서랍 무덤]의 부장품이고, 하도 오래 되어서 “뒤집힌 주머니 같은, 찢어진 지폐 같은, 짝 잃은 장갑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나 시인은 고대의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되고, 따라서 그의 관점은 더없이 경건하고 회고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 일기 속, 내 이름을 불러보았다”라는 시구에서 ‘당신’은 과연 누구이란 말인가? 아버지일까, 할아버지일까? 아니면 시인의 남편일까? 이희은 시인은 아마도 오래된 서랍 속에서 남편의 일기를 발견하고, 그 일기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남편의 생각을 훔쳐 볼 수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남편의 생각, ‘나’와 손잡고 거닐던 산과 들과 호수, ‘나’와 손잡고 보았던 영화, 첫 키스와 결혼, 아이를 낳았을 때의 나의 모습과 남편의 기쁨 등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씌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뒤집힌 주머니 같은, 찢어진 지폐 같은, 짝 잃은 장갑 같은” 일기장이었을 지라도, “아무에게도 손 내밀지 못했던 글자들”이 내게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희은 시인의 [서랍 무덤]은 참으로 오래된 해후의 시간이고, 감동의 시간이며, 이제는 다시 일기를 써야 할 시간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자가 스승의 목을 비트는 경우도 있고, 스승이 제자의 천재성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목을 비틀었고, 실레노스는 그의 제자인 디오니소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제자가 스승의 목을 비틀었거나 스승이 제자의 천재성 앞에 무릎을 꿇었거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나, 즉, 고귀하고 위대한 천재의 탄생이라고 할 수가 있다. 톨스토이는 어릴 때 10년 동안 일기를 썼고, 나 역시도 그 말을 듣고 상당히 오랫동안 일기를 쓴 적이 있었다. 일기는 개인의 기록이자 천재 성장의 역사이고, 일기는 천재의 문전옥답이다. 줄리어스 시이저의 {갈리아 전기}, 안네 프랑크의 {일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의 예에서처럼, 일기는 천재 성장의 역사이고, 그 황금의 텃밭(문전옥답)이다.
일기에 의하여 천재가 탄생하고, 일기에 의하여 새로운 역사가 씌어진다. 일기에 의하여 사상과 이론이 정립되고, 일기에 의하여 새로운 우주가 탄생한다. 일기는 자기가 자기를 낳고, 일기는 자기가 자기 자신의 목을 비틀어 댄다. 일기는 자기가 자기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일기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최고의 황제로 만들어 낸다. 일기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의 싸움의 장소이자 최고급의 권력투쟁의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나와 나의 싸움, 수많은 나와 수많은 나 들의 싸움, 서로간의 사랑과 배신, 서로간의 증오와 결투가 벌어지는 곳이 일기이며, 나폴레옹 역시도 이 일기를 통하여 백만대군을 총 지휘하는 황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는 이희은 시인의 결론처럼, “일기를 이어 써야 할 시간”이고, 내가 나로서 백만 대군을 총 지휘하는 황제로 등극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