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龍王)의 잔치에 나아가다
이튿날 새벽녘에 우레 같은 소리가 잇따라 일어나 수정궁(水晶宮)을 흔드니 용녀가 깜짝 놀라 일어나자, 궁녀가 급히 아뢰었다.
“남해태자가 무수한 군병을 거느려 산 밑에 진을 치고 양원수와 승부를 결단함을 청하나이다.”
원수가 대로하여 이르기를,
“미친 아이가 어찌 감히 이러느뇨?”
하고, 소매를 떨치며 일어나서 물가로 걸어 나아가니, 남해군사는 이미 백록담을 에워싸고 떠드는 소리가 진동하여 살기가 사면에 뻗치고 이른 바 태자라 하는 자는 말을 달려 진두에 나아와 크게 꾸짖기를,
“너는 어떤 사람이기로 남의 아내를 빼앗아가느뇨? 맹세코 너와 더불어 이 천지간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므로 원수가 말을 세우고 크게 비웃되,
“동정 용녀가 나와 더불어 맺은 연분은 천궁(天宮)에다 기록한바요, 요망한 고기 새끼가 무뢰함이 어찌 이와 같을꼬?”
이어서 군사를 지휘하여 싸움을 재촉하니, 태자가 대로하여 천만가지의 물고기들에게 영을 내리니, 이제독(鯉提督)과 별참군(鼈叅軍)이 기운을 듣우고 용맹을 내어 걸어 나오기에, 원수가 한번 지휘하여 다 목을 베고, 백옥 채찍을 들어 한 두 번 휘두르자 백만 군병이 짓밟히며 삽시간에 부스러진 비늘과 깨어진 껍질이 따에 너저분하더라. 태자는 몸의 여러 곳을 창에 찔려 능히 변화를 일으킬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원수의 군사에게 잡힌 바 되니, 이를 결박하여 원수의 말 앞에 바친즉, 원수는 크게 기꺼워하며 징을 쳐서 군사를 돌리니, 수문군이 아뢰기를,
“백룡담 낭자가 몸소 진 앞에 나아와 원수께 치하를 드리고 군사를 호궤(犒饋:군사를 위로함)코자 하시나이다.”
원수가 사람을 시켜 맞아들이니, 용녀는 원수가 승전함을 치하하고 술 백 석과 소 백 필로써 군사를 위로한즉 모든 군사들이 배불리 먹고 즐거워하여 춤추고 노래하며 사기의 용맹함이 전보다 백배나 더하더라.
원수가 용녀와 더불어 한 자리에 앉아서 남해용자를 잡아드려 소리를 높여 꾸짖되,
“내 천자의 명을 받아서 사방의 도적을 채매 일만 귀신도 감히 내 명을 거역하는 자가 없는데, 네 한낱 조그만 아이가 천명을 알지 못하고 감히 대군을 거역하니 이는 스스로 죽기를 재촉함이렸다. 이에 한 자루 보검이 있는데 이는 위징(魏徵) 승상이 경하(涇河)의 용을 베던 잘 드는 칼이라, 내 마땅히 네 머리를 베어 우리 군사의 위엄을 떨칠 것이나, 너의 집이 남해를 진정하고 인간계의 비를 널리 내려 만민에게 공이 있는 고로 각별 용서하노니, 지금부터 전의 행실을 고쳐 다시는 낭자께 죄를 짓지 말렸다!”
인하여 끌어내 치니, 남해용자는 숨도 크게 못쉬고 쥐 숨듯 돌아가더라.
홀연 서기가 동남으로부터 일더니 붉은 놀이 영롱하고 산구름이 찬란하며, 기치(旗幟)와 절월(節鉞)이 공중으로부터 내려오더니, 붉은 옷을 입은 사자가 종종걸음으로 나아와 이르기를,
“동정용왕이 양원수 남해군을 격파하고 공주의 위급을 구하심을 아시고, 친히 진문 앞에 나아와 치하코자 하시나 몸이 정사(政事)에 매어 감히 마음대로 처신할 수 없는바, 바햐흐로 대연을 별전에다 베풀고 원수께 양정하오니 원수는 왕림하소서. 대왕이 또한 소신으로 하여금 공주를 모시고 같이 돌아오라 하시더이다.”
원수가 이에 답례하여 이르되,
“적국이 비록 물러갔으나 적들이 아직 남아있고, 또한 동정호가 만 리 밖에 있고, 오고가는 사이에 날짜가 오래 걸릴 터인즉, 군사를 거느리는 자가 어찌 감히 멀리 나가리오?”
사자가 다시 말하기를,
“이미 여덟 마리 용으로 수례에 멍에를 갖추었으니, 반나절이면 족히 갔다 오리이다.”
양원수가 용녀와 더불어 용거에 오르니 이;상한 바람이 바퀴를 굴려 공중으로 올라가고 다만 흰구름이 일산(日傘)같이 온 세계를 덮더니, 차츰 내려가 동정호에 이르더라 용왕이 멀리 나와 맞으며 주객의 예의를 차리고 장인과 사위의 정을 펼새, 허리 굽혀 절하고 위층 전각에 오른 다음, 잔치를 베풀어 정성껏 대접하더라. 용왕이 침히 술잔을 전하면서 사례하기를.
“과인이 덕이 없어 딸자식 하나를 편하게 해주지 못했는데, 이제 원수의 엄숙한 위세로써 남해의 미친 아이를 사로잡고 딸아이를 구하였으니, 그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땅보다 두텁도다.”
하니 원수가 답사하되,
“이는 다 대왕의 위령이 미친 바이니 소유에게 무슨 공이 있으오리까?”
하고 술이 취하니, 용왕이 분부를 내려 여러 가지 풍악을 들려 주는데, 그 음률이 융용하여 들으매 절조가 있어 시속의 풍악과 다르더라. 장사 천명이 전각 좌우로 늘어서서 각기 칼과 창을 벌리고 큰 북을 울리며 나오는데, 여섯 쌍의 미녀들이 무용의를 입고 명월패를 차고 한삼 소매를 가볍게 날리며, 쌍쌍이 춤을 추니 참으로 장관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