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아버지를 설득함 (창세기 43: 1~14)
* 본문요약
애굽에서 가져 온 곡식이 다 떨어져가자 야곱은 다시 양식을 사오라고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유다는 애굽 총리의 요구대로 막내를 함께 보내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을 위한 담보가 되겠다고 약속합니다. 야곱은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베냐민을 보내기로 하고, 가나안의 아름다운 소산과 돈을 두 배로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찬 양 : 194장 (새 260)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451장 (새 377) 전능하신 여호와여(전능하신 주하나님)
* 본문해설
1. 다 떨어진 곡식(1~2절)
1) 그 땅에 기근이 더욱 심해져서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 온 곡식이 다 떨어졌을 때에, 아버지가 아들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좀 사오너라.”
- 그 땅에 기근이 더욱 심해져서(1절) :
아직 기근이 시작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45:6). 앞으로 5년은 밭갈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야곱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하나의 원인이 됩니다.
2. 유다가 자신을 담보로 아버지를 설득함(3~10절)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면서 이르기를,
‘만일 너희 아우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하였습니다.
4) 만일 아버지께서 막내를 우리와 함께 보내 주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오겠습니다.
5) 그러나 만일 아버지께서 막내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도 내려가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6) 이스라엘이 물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에게 아우가 있다는 말을 하여
이렇게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 가족에 대하여 낱낱이 캐물었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아직 살아 계시냐? 너희에게 다른 형제가 더 있느냐?’하고 묻기에, 우리는 그저 그가 묻는 대로 대답했을 뿐입니다. 그가 우리의 아우를 데리고 오라고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8) 유다가 이스라엘에게 말했습니다.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곧 가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와 우리 아버지와 우리의 어린 자식들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내가 그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겠으니), 그 책임을
나에게 물으십시오. 만일 내가 그를 아버지께 다시 데려와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한다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내 평생에 아버지 앞에 죄인이 되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두 번은 다녀왔을 것입니다.”
-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가로되(3절) :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팔아넘길 것을 제안했던 사람입니다(37:26~27).
-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9절) :
담보란 빚진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그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합니다. 유다는 베냐민을 데려오지 못할 일이 생기면 자신이 그 일을 대신 당하고, 베냐민은 아버지께로 데려오도록 하겠다고 말합니다.
3. 야곱의 결단 :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11~14절)
11)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아들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하여라.
너희는 이 땅의 소산물 중에 아름다운 것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리라. 곧 유향과 꿀을 얼마쯤 담고, 향품과 몰약과 비자(피스타치오)와 파단행(감복숭아)를 담아라.
12) 돈도 두 배를 가지고 가서 지난번에 너희 자루 아귀에 담겨져 있던 그 돈을 돌려주라.
아마도 그것은 실수였을 것이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희로 그 사람 앞에서 긍휼을 입게 하셔서 그곳에 남아 있는
너희의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내가 자식들을 잃어야 한다면 잃으리로다.”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14절) :
전능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엘 샤다이’의 하나님입니다(출 6:2~13의 묵상포인트 1번 참조). ‘엘 샤다이’의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시며, 우리를 위협하는 자들에게는 전쟁의 용사가 되어 싸우시는 전쟁의 용사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우리를 사랑으로 지키시는 전능의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들들을 지키시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자신이 베냐민의 담보가 되겠다고 말하는 야곱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기근이 심해집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빨리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유다가 막내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면 자기들을 결단코 애굽에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애굽의 총리가 막내를 데려오지 않으려거든 자기의 얼굴 볼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엄히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는데도 야곱이 머뭇거리자 다시 유다가 자신이 친히 베냐민을 위한 담보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담보란 빚진 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 그를 대신하여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베냐민을 위하여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한 것은, 만일 베냐민을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그 일을 자신이 당하고, 베냐민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께로 데려오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르우벤은 즉흥적으로 울컥하여 한 말이었으나, 유다는 정말 죽을 때까지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고난을 당할 결심을 하고 말한 것입니다.
유다가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겠다’고 한 말은,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유다는 지금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닮은 희생적 결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7장~50장까지 38장을 제외하고 무려 13장이나 요셉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복의 흐름은 요셉이 아니라 유다로 흘러가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다가 이렇게 베냐민을 위하여 자신이 친히 담보가 되겠다는 희생의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며느리 다말 때문이었습니다(38장 참조). 다말이 불에 타 죽게 될 것을 각오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통하여 남편 엘의 자손을 남긴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며느리 다말에 이어 유다까지 예수님을 닮은 희생적 결단을 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복의 흐름을 맏아들 르우벤도 아니고, 놀라운 믿음을 보여준 요셉도 아니고, 다말과 유다의 가문으로 이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 적용 : 하나님께서 열두 형제의 삶을 지켜보시고 그 중에 유다를 택하였듯,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을 지켜보시고 그에 합당한 복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주께서 내리시는 복을 받는 자들이 되십시오.
2. 야곱이 결단하도록 더욱 깊은 고난의 자리로 몰아가시는 하나님
시간이 지날수록 기근이 점점 더 심해집니다. 곡식 한 톨 추수하지 못한 지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45:6).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심한 고통이 계속되자 야곱은 결국 베냐민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야곱은 그 아들들이 요셉을 죽였고, 시므온까지 죽였다고 생각이 되지만 더 머뭇거리면 다른 식구들까지 모두 굶어죽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자 야곱은 결국 베냐민을 아들들에게 맡겨 보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자리이지만 야곱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뜻대로 순종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자기가 두려워하는 일이라면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까지 잃게 되면 자기 목숨을 잃는 것과 같다고 여기고 있으니 이 일에 순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머뭇거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순종하지 않을 수 없도록 더욱 심한 기근을 내려 결국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항복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을 주셨을 때 순종합니다. 머뭇거릴수록 힘들어지는 자는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주께서 내게 명하신 것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 적용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순종하십시오. 머뭇거리면 하나님께서 야곱처럼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고통과 시련의 자리로 몰아가실 수밖에 없게 됩니다.
3.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이렇게 베냐민을 보내기로 결단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엘 샤다이’로 부릅니다. 어머니처럼 나를 돌보시며, 군대 장군처럼 나를 위해 싸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베냐민을 긍휼히 보살피셔서 무사히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만일 자식을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잃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식을 잃어버리는 것을 원하신다면 잃을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내가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죽을 것이라고 에스더가 말한 것처럼(에 4:16), 야곱은 목숨처럼 사랑하는 베냐민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지 않는 자들만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의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결단코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이 이 고백을 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 믿음을 고백하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형에게 쫓기고, 외삼촌에게 속임을 당하고, 세겜에서 가나안의 타락한 문화에 빠져 함부로 살다가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들들이 세겜성의 사람들을 살육하여 도망치듯 빠져나와, 하나님께 떠밀려서 벧엘에 가서 억지춘양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삶의 과정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로 그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랑하는 베냐민이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보내며, ‘엘 사따이’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 적용 : 야곱이 무엇인가를 집착했을 때는 고난이 끊이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놓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 이때부터 야곱은 오히려 야곱의 인생은 평탄하였습니다. 이후에 야곱은 요셉도 만나고, 아무 염려나 걱정이 없이 보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것이든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자식이라도 잃겠다고 말한 야곱의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더 큰 평강의 복을 내리십니다.
4. 말씀과 고난으로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간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과 함께 고난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도 말씀과 고난으로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도 한편으로 말씀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훈련시키십니다.
그러나 고난과 시련이 훈련이 되려면 그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똑같은 고난을 당해도 롯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떠나 이방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유다는 고난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적용 : 마지막 때의 시련과 혼란이 있더라도 야곱과 유다나 다윗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결단코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됩시다. 그래야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 기도제목
1. 유다처럼 우리도 주께 충성된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야곱처럼 우리도 주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여 마지막 때의 시련과 혼란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출처: 가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송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