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의 길 (잠 16:25-27)
25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
이 시간에 “사망의 길”이라는 제목입니다. 사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는 좋은 사망과 나쁜 사망이 있습니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사망은 좋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라는 믿음 가지고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본문이 경고하는 사망은 나쁜 사망입니다. 그것도 바른 길 같이 그럴듯하면서도 사망의 길로 인도하는 아주 교묘하고 간사한, 자세히 보고 결코 속아서는 안 될 사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그러므로 참으로 조심하고 분별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떤 것이 사망의 길이 됩니까?
26-27절 “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 이 구절 속에 몇 가지 조심해야 할 사항을 발견합니다.
1. 하나님 없는 근면은 사망의 길입니다.
25절 “고되게 일하는 자” 어떤 사람입니까? 근면한 사람입니다. 근면[勤勉]이란 부지런히 일하며 힘쓰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근면 속에도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근면에 대해서 나쁘게 평하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제주도 속담에 “손이 놀면 입도 논다.” 프랑스 속담에는 “근면은 행운의 어머니다.”라는 말이 있고요. 독일 속담에는 “어려움이 근면을 만든다.” 연단 받아 일군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성경에도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 잠언 31장에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한 여인이라, 게으름에 대해서 책망하는 말씀도 있지요. 잠24:33-34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열심히 일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겠습니까?
그러나 근면 속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근면입니다. 주일성수할 시간이 없고, 예배할 시간이 없고, 기도할 시간이 없는 근면은 사망의 근면입니다. 근면이 지나치면 육신도 망가질 뿐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이 없다면 그 심령은 죽기 때문입니다.
시127:1-2에 이런 경고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을 자지 못할 만큼 일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부지런하면 어느 정도 발전하다가 멈춥니다. 연구하고 준비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감을 받을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길이 사람이 보기에 바르지만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2. 절제 없는 본능도 사망의 길입니다.
다시 25절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일하면 밥맛이 좋지요? 시장이 반찬입니다. 이건 본능을 말씀한 것입니다. 본능이 활발하다면 좋은 일입니다. 전도서 12장에 “원욕이 그치리니” 늙으면 소원과 본능이 그친다는 말입니다.
인간에게는 식욕 성욕 명예욕 권세욕 등 여러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능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본능이 없다면 어떻게 생존하고 어떻게 종족이 보전되고 누가 나서서 일하겠습니까? 사람들은 건강하기 위해서 온갖 약과 보신제를 찾아다닙니다. 운동을 합니다. 지나치면 보기는 싫지만 건강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합니까? 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젊어질 수 있다면 젊어지기 바랍니다. 예쁠 수만 있다면 예뻐지시기 바랍니다. 예뻐지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무조건 배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명예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노력하는 모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범주를 넘어서서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벗어난 것입니다. 권세도 나쁘지 않습니다. 롬13:1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역할 하도록,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역할 하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범주를 넘어서 월권할 때 잘못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범주를 벗어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준비를 해야지 죄 지으면 안 됩니다. 혼자 살더라도 예수를 신랑으로 삼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 수 있도록 기도하세요. 천국 갈 준비는 하지 않고 뭐들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 정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잠5:15-17에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고 했습니다. 범주를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롬8:13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어요. 골3:5-10에도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어요.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 됐어요. 젊음도 죄가 아니고 본능도 죄가 아니되 조심하지 못하면 사망의 길인 것입니다.
3. 잘못 관리하는 양심도 사망의 길입니다.
27절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 불량이란 양심 불량을 의미합니다. 양심이 불량해서 남을 해하려고 거짓으로 모해하는 그 입술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불의 위력처럼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까지 해를 입히게 될 것이란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신 하늘의 선물은 양심인데 양심관리 잘해야 합니다. 양심은 마음의 율법이요,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에 양심을 거슬리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슬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딤전1:19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양심은 너무 무뎌서도 안 되지만 너무 예민해서도 안 됩니다. 너무 무디어 죄가 죄인 줄 알지 못하거나, 너무 예민해서 죄 아닌데도 죄로 여기면 심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롬14:22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가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죄 아닌 것도 죄로 여기게 되면 우리 심령이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무척 양심적인 것 같지만 사망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 양심이 무디기를 원하지만 반대로 예민하기도 원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정죄감에 빠져 사망 가운데 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계12:10에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라고 했습니다. 선한 양심 속에 믿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잘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살되 잘 분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없는 근면은 사망의 길입니다. 절제 없는 본능도 사망의 길입니다. 관리 잘못하는 양심도 사망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하여 오직 한 길, 오직 예수, 오직 말씀의 정도로만 걸어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