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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어 취하면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 조상호 목사
작년에 거행된 베이징 올림픽에서 감동적인 일들이 많이 있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매우 황당한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장대분실사건‘입니다. 장대높이뛰기 경기에 출전한 브라질의 ’파이아나 무러레‘의 장대가 없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무러레 선수의 장대가 하나도 아니고 무려 대여섯 개의 장대가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출전 선수의 장비를 잘 보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그 선수의 장대를 분실한 것입니다. 그 선수의 장대를 찾느라 여자장대높이뛰기 경기가 오랫동안 지연되었지만, 분실된 장대를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 선수는 다른 장대를 빌려 4m65cm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선수의 최고기록이 4m80cm이기 때문에 4m65cm가 힘든 기록은 아니었는데도 실패한 것입니다.
가정이지만 만약 그 선수가 4m80cm를 넘었다면 최소한 은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사람들은 더욱 안타까워했습니다. 4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위의 미흡한 준비로 말미암아 한선수의 4년간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브라질의 ’파이아나 무러레‘선수와 같지는 않다 하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황당한 분실을 경험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물건이든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빌려온 물건이든지, 예상치 못한 분실로 인해 어려움을 당한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 마디로 요역한다면, 예상치 못한 분실로 인해 어려움을 당했다가 다시 찾은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당시의 북이스라엘은 폭군 아합 왕과 사악한 아내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여호람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야훼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오랫동안 기근이 계속되어 먹을 것이 없어 나라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는 많은 제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시켰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겠다고 몰려드는 바람에, 함께 거할 곳이 비좁게 되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신학교에 너무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는 바람에 강의실과 기숙사가 부족하게 되었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부족한 숙소를 짓기 위한 목재를 가져오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요단을 가게 됩니다. 요단에 도착한 제자들이 나무를 자르는 도중, 한 제자의 도끼가 요단강에 빠지게 됩니다. 그 때 엘리사 선지자는 한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도끼를 떠오르게 함으로 잃었던 도끼를 다시 찾아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많은 영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주전 800년 경 당시 철로 만든 도끼는 아주 소중한 물건이었습니다. 철로 만든 도구가 그렇게 흔하지 않던 시절이기 때문에 쇠도끼는 아무나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쇠도끼는 집을 짓기 위해 목재를 자른다든지, 난방을 위해 땔감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한 제자가 매우 중요한 그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 도끼는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사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의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해 일하던 직장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힘들게 일구어놓은 사업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거액의 물질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어렵게 얻었던 신용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도끼는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잃은 도끼를 찾을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정직하게 고백하라
첫째로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다같이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여기에 보면 도끼를 물에 빠뜨린 제자는 그 사실을 ‘쉬쉬’ 하며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많은 다른 제자들이 주위에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실수를 고백한다는 것은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입니다. 또 엘리사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끼를 잃어버리자마자 곧바로 외쳤습니다.
'외쳤다'는 것은 자기의 잘못을 사실 그대로 고백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숨기려고 하기보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빨리 인정하지 않고 시간을 끌다보면 문제가 더 커지고, 자꾸 숨기다보면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이 점점 커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존슨 앤 존슨’ 회사는 50개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149개국에 베이비 로션, 유아용품, 의료기구 등을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입니다. 그런데 1982년 9월 30일 시카고에서 이 회사 제품인 ‘타이레놀’을 먹은 소비자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첫 번째 사고가 발생한 후 불과 48시간 내에 7명이 같은 이유로 사망하였는데, 놀랍게도 이들이 먹고 남은 타이레놀에서 청산가리가 발견된 것입니다. 누군가가 제품 안에 사람에게 치명적인 독극물 청산가리를 집어넣은 것입니다. 당시 이 사건은 회사를 뿌리 채 흔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냥 덮어두었다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당할지 모르고, 세상에 널리 알렸다가는 많은 소비자들이 존슨 앤 존슨 제품을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존슨 앤 존슨은 이를 감추거나 조용히 덮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또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리콜 조치를 취했습니다. 시카고 지역 제품만 리콜 하라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권고를 뛰어넘어 전국에서 약 3,000만 병, 1억 달러 어치의 타이레놀을 전량 수거했습니다. 그리고 “사건 원인이 규명되기 전까지는 타이레놀 제품을 절대로 복용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를 넣어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또한 전국에 있는 의사, 병원, 도매상에게 주위를 환기시키는 편지 50만 통을 발송하였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처음에는 시장점유율이 35%에서 7%까지 하락하여 어려움을 겪었지만, 놀랍게도 3년 만에 제자리를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고 전보다 더 많은 소비자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존슨 앤 존슨은 1999년과 2000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미국의 존경받는 기업 1위’에 뽑혔다고 합니다.
우리가 존슨 앤 존슨의 기업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잘못을 안 하는 것보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더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허물을 자복하는 사람,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는 사람, 자신의 죄악을 숨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숨기지 않고 고백하는 자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잠언 28장 13절에서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요한일서 1장 8절과 9절에서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입니까?
우리가 숨기면 숨길수록 더 어려움을 당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실수를 고백하면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하는 비결이요, 우리가 이 땅에서 형통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실수를 범했습니까?
여러분들이 어떠한 죄악을 범했습니까?
본문에 등장하는 어떤 제자처럼, 하나님께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도끼를 찾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하라
둘째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쉽게 말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도끼는 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빌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잃어버렸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여기 ‘빌렸다’는 말의 원어는 ‘솨울’인데, ‘구걸하다’ ‘애걸하여 빌리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 쇠도끼를 쉽게 빌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도끼를 빌리기 위하여 별짓을 다해 구걸하다시피 얻어왔습니다. 그런데 실수로 그것을 강물에 빠뜨린 것입니다.
그 때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울기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엘리사에게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그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엘리사는 하나님을 대신한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보면 신 광야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6장 2절과 3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야훼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 8절과 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 이는 야훼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야훼를 향하여 함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한 것은 모세에게 원망한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원망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원망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도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역을 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가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잃은 것이 있다면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옛날에 한 나무꾼이 강가에서 나무를 베다가 실수로 도끼를 강물에 빠뜨렸습니다. 나무꾼은 강가에 앉아 한탄하며 슬퍼했습니다.
그때 산신령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나무꾼으로부터 슬퍼하고 있는 이유를 듣고 나서 강물 속으로 들어가 금도끼를 들고 나오더니 “이것이 너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이 아니라고 대답하자, 산신령은 다시 물속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은도끼를 들고 나오더니 “이것이 너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나무꾼은 그것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산신령은 세 번째로 물속에 들어갔다가 드디어 나무꾼이 잃어버린 바로 그 도끼를 건져왔습니다.
그러자 나무꾼은 “그것이 바로 제가 잃어버린 도끼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산신령은 나무꾼의 정직함에 감동을 받아 쇠도끼와 함께 다른 금도끼와 은도끼까지 그에게 주었습니다.
나무꾼이 친구들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얘기하자, 그중 한 친구가 같은 장소에 가서 일부러 도끼를 강물 속에 빠뜨렸습니다. 그리고 나무꾼처럼 우는 흉내를 냈습니다. 그러자 전과 마찬가지로 산신령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다시 강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금도끼를 들고 나오더니 “이것이 너의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예, 그렇고말고요. 제가 잃어버린 도끼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러자 산신령은 뻔뻔스럽게 거짓말하는 그에게 금도끼를 주기는 커녕 그가 강물에 빠뜨린 도끼마저 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 이야기입니까?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쇠도끼를 잃었으면 쇠도끼를 잃었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한국의 ‘종근당’이라는 제약회사를 아실 것입니다.
이 회사의 로고가 종입니다. 종이 회사의 상징입니다. 종이 그 회사의 상징이 된 이유가 있습니다.
옛날에 서대문 영천 시장은 콩나물 장수 아줌마들이 많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중 신앙심 깊은 한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꼭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돈이 없는 가난한 가정이었지만, 자식들만큼은 믿음으로 잘 성장하여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도록 새벽마다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결국 이 아주머니의 기도는 이루어졌고, 아들들은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했습니다. 아들 중 하나가 훗날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매일 새벽 교회에 나가 간절하게 기도하던 일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자기가 있기까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간절한 기도한 덕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살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교회 종소리가 생각났습니다. 지금이야 사라졌지만, 옛날에는 교회에서 새벽마다 종을 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연상되도록 자신의 제약회사 이름을 ‘종근당’이라고 짓고, 심벌마크를 '종(鍾)'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마라의 쓴물 앞에서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지시하여 물에 던지게 함으로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기적을 체험한 줄로 믿습니다.
죽을 병에 걸린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심히 통곡하며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받았고, 해 그림자가 뒤로 10도나 물러가는 기적을 체험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잃어버린 도끼가 무엇입니까?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모세처럼 히스기야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잃어버린 도끼를 찾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3) 손을 내밀어 취하라
셋째로 손을 내밀어 취해야 합니다.
다같이 6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엘리사 선지자가 어떻게 했습니까?
나뭇가지를 하나 자른 후 물위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속에 가라앉았던 도끼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도끼가 무슨 나무토막도 아니고, 돌보다 더 무거운 쇠 덩어리인데 그 쇠도끼가 고무풍선처럼 떠올랐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긴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아무리 무거운 쇠 덩어리라도 물위로 떠오를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우리가 잃었던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7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엘리사선지자가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너는 그것을 집으라’ 이 말씀을 잘 보시면 엘리사선지자가 도끼를 집어 제자에게 준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물위에 떠오른 도끼를 집으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손으로 건져내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 흐르는 교훈과 일맥상통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알지 못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때를 따라 햇빛과 비를 적당하게 주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심고 물을 주고 가꾸고 거두는 일은 누가 해야 할입니까?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를 거두는 일은 누가 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 일찍이 밖에 나가서 필요한 분량만큼 거두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소년의 도시락밖에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남자만 5천명,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포함하면 2만명 이상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5병2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일을 하셨고, 제자들에게는 남은 부스러기를 거두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를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죽었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무덤 밖으로 나오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온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천을 풀러주는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실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목사가 설교준비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한다고 저절로 설교가 준비되는 것은 아닙니다. 설교준비를 기도했으면 열심히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학생이 학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 지혜와 총명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한다고 성적이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학업을 위해 기도했으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이 ‘손을 내밀어 취하라’는 의미입니다.
존 밀러(John Miller)가 쓴 책 중에 <바보들은 항상 남의 탓만 한다>는 책이 한 때 베스트 셀러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존 밀러가 어느 음식점에서 체험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참 바쁜 점심시간에 본 밀러는 어느 음식점에 가서 몇 가지 음식과 코카콜라 라이트를 주문했는데, 제이콥이라는 직원이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가게에는 펩시콜라밖에 없는데요, 펩시콜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존 밀러는 속으로 ‘코카콜라도 없다니, 펩시를 마시느니 안 마시는게 낫지?’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그럼 됐습니다. 얼음물에 레몬 한 조각만 띄워 주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잠시 후, 존 밀러가 주문한 음식을 받아서 먹기 시작했을 때, 제이콥이 헉헉대면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서리가 하얗게 끼어 시원해 보이는 코카콜라 라이트 캔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존 밀러는 놀라면서 “고마워요. 아니 코카콜라가 없다면서 어디서 났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제이콥은 “길모퉁이 가게에 가서 사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돈은 누가 냈나요?” “제가 냈습니다. 손님!”
이것이 바로 손을 내밀어 취한다는 의미입니다.
제이콥은 작은 음식점의 말단 종업원에 불과했지만, 최선을 다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 후 제이콥은 종업원에서 관리자로 승진을 했고, 나중에는 CEO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엘리사선지자를 통해서 하신 ‘손을 내밀어 취하라’는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학생의 공부를 대신해주시지 않습니다.
시험을 대신 봐주지 않습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최선을 다해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업가는 사업가로서 최선을 다해 사업을 하고,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로서 최선을 다해 자녀를 양육하고 가정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무슨 도끼를 잃어버렸습니까?
믿음의 도끼입니까?
물질의 도끼입니까?
사명의 도끼입니까?
산용의 도끼입니까?
무슨 도끼를 잃어버렸습니까?
오늘 이 시간 믿음을 잃어버린 분들은 믿음의 도끼를 다시 찾고, 물질을 잃어버린 분들은 잃었던 물질의 도끼를 다시 찾고, 사명을 잃었던 분들은 잃었던 사명의 도끼를 다시 찾고, 신용을 잃었던 분들은 잃었던 신용의 도끼를 다시 찾는 귀한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도끼를 잃어버린 제자처럼 숨기지 말고 정직하게 고백하고, 부르짖어 기도하고, 손을 내밀어 취함으로 말미암아, 잃었던 모든 도끼를 다시 찾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