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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9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 박병욱 목사
요한복음 4: 20-24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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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자
교회의 기능을 대표적인 영역으로 크게 분류하면 예배, 친교, 선교, 교육, 봉사 등의 다섯 분야를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기능을 말하라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다섯 가지 기능은 분리 된 것이 아니고 다만 구별하여서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 뽑으라면 ‘예배’를 말할 수 있습니다.
예베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는 교회의 유일한 활동입니다. 이 세상에서 시작된 성도들의 예배는 종말이 지나고 천국에 가서도 계속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당을 예배당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와 예배를 동의어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 아닙니다.
오늘 신약 본문은 예수님과 이방인으로 천대를 받았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은 수가라는 성을 여행하시다가 정오의 더운 햇볕 아래 한 우물가에 앉아계셨습니다. 이때 한 여인이 다가와 물을 길었습니다. 원래 당시의 관습대로라면 둘 사이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영원한 생명수를 찾는 문제, 그리고 그 여인의 가정의 문제로 화제를 끌고 나가셨습니다. 이 여인은 다섯 번이나 이혼하고 지금 살고 있는 여섯번째 남편과도 진실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지적하자 여인을 깜짝 놀라며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합니다. 그리고는 참된 예배 장소를 질문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참된 예배처가 그리심산에 있다고 주장하고 유대인들은 참된 예배 장소는 예루살렘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둘 중에 어느 곳이 진정한 예배 장소입니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 23, 24)
어떤 사람은 이 장소가 진정한 예배 장소라고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 곳이 진정한 예배 장소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스타일의 예배가 좋다 저런 스타일의 예배가 좋다. 클래식 음악으로 드리는 예배가 좋다. 복음송가로 드리는 예배가 좋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질서있고 형식을 갖춘 예배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롭고 열광적인 예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의 문제도 아닙니다. 문화의 문제도 아닙니다. 장소와 시간과 문화는 모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수단입니다. 장소도 변하고 시간도 흘러가 버리고 문화도 소멸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변화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결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의 기준은 첫째로 예배드리는 대상이 누구인가에 달려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어떻게 예배드리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에 관한 다섯 가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예배의 대상은 영이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는 대상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예배란 성도가 모여서 친교를 나누는 성도의 모임이 아니라 그 대상이 하나님이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예배당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배에 올 때 특별한 마음으로 나옵니다. 예배 전에는 되도록 묵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징이 울릴 때까지 옆사람과 잡담을 나누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아무리 중요한 이야기라도 예배 후로 미루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왔으면 하나님과 대화를 해야 합니다. 조용히 기도하고 묵상하고 명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리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릴지라도 그분이 받지 않으시면 소용이 없으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방법에 따라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심.
그러면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육이 아니라 영이십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는 마땅히 영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세상의 어떤 피조물로도 비교될 수 없는 분입니다.
육체로 꺼져갈 인간은 영이신 거룩한 하나님 앞에 다만 두려움과 떨림으로 설 수 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두려움과 떨림’만이 그 분의 거룩함을 덧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모르는 인간의 예배란 거짓 예배입니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뜻, 사람의 방법 등과 같은 육에 속한 것으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육에 속한 사람들, 죄된 옛 본성 안에 거하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삶의 순간에 임재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특정한 시간에 드리는 예배만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는 우리의 모든 시간을 영이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는 또한 공간적으로 우리가 사는 삶의 모든 자리가 예배의 공간임을 뜻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하나님의 본질과 일치하는 예배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질과 일치하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것은 오늘 설교의 둘째와 셋째 넷째 교훈입니다.
둘째, 예배는 영으로 드립니다.
그러면 영으로 드리는 예배란 무엇입니까?
여기서 영은 인간의 내면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입니다. 인간의 자기 진실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하심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의 특징
그러면 영으로 드리는 예배의 특징은 무엇이니까?
1. 성령의 임재 속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2. 예배 현장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는 시간입니다.
예배에서 영적인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3. 예배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가 일어납니다.
생명력을 받습니다. 예배자들을 새 생명으로 충만해집니다.
4. 예배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닫게 합니다.
5. 성령의 은사를 통해서 교회를 섬기며 은사를 통해서 예배 시간에 봉사합니다.
6. 예배에서 영을 받은 자들은 이미 새 세상에 참여하고 있으며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을 새로운 세상으로 바꾸어 나갑니다.
셋째, 예배는 진리로 드립니다.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특징
그렇다면 진리로 예배 드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먼저 ‘진리’라는 말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보통 어떤 말과 그에 상응하는 사물과 사건이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는 현실과 그 현실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히브리 사상에서 진실은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이나 말 자체에 속에 있는 속성을 말합니다. 무엇이 약속하는 바를 스스로 품고 있으면, 그것은 ‘진실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역사가 흐르는 가운데 거듭거듭 반복하여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진실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것은 ‘한결같음, 성실함, 기댈 수 있는 현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진실은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진실하시고 믿을 수 있는 분은 누구일까요? 그 분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마음과 말씀이 일치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하신 말씀을 이루어지므로, 말씀과 현실이 일치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으므로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진리로 드린다.
이 하나님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뚜럿하게 나타나셨습니다. 진리는 예수님이 계시하신 하나님의 현실입니다.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의지해서 드리는 예배를 말합니다.
예배는 예배자인 인간의 진실성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의 실재,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의존하여 드리는 것입니댜.
하나님의 영은 진리이시니 거짓된 것을 거절하십니다. 그 분은 진리를 기뻐하시며 진리로서 역사하십니다. 곧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말씀을 통해 그 분과 동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진리로서 응답하십니다.
넷째, 예배는 인간이 최고의 진실로 드립니다.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첫째로 인간적 진실로 드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진실성 자체가 진리의 기준은 아닙니다. 진리의 기준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진실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은 진실하게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인간이 찬양과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 인간의 전 존재를 수반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제사라고 하는데 제사에는 반드시 희생 제물이 따릅니다. 예배는 아주 희생적인 헌신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헌금을 하고 교회에 필요한 것들을 기부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교회와 예배를 위해서 수고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강력한 집중과 심리적 참여를 합니다.
이렇게 아주 강력한 집중을 위해서는 우리가 준비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죄에 대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뒤틀려진 인간관계를 제대로 개선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배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진실되게 드린다는 것은 우리의 전 존재, 즉 생각(정신), 마음, 그리고 몸을 모두 헌신한다는 의미입니다.
첫째, 우리는 온전한 ‘생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는 지성적인 과정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집중합니다.
둘째, 우리는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드립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성적인 부분만이 아닙니다. 신앙은 합리적인 면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 즉 감정이 따라가야 합니다. 은혜에 감사하는 기쁨, 우리의 삶의 좌절과 슬픔이 제대로 표현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온 ‘몸’으로 예배드립니다.
무릎을 꿇고, 거룩한 손을 들어서, 손벽을 치면서, 머리를 숙이며, 위를 향하여 바라보면서, 소리를 내어 기도하고 찬양하며 몸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는 인간이란 의미 없이 이 세상에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은 ‘아빠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그 분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누리는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진실된 예배자는 세상의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자유하는 것을 배우고, 세상과 이웃을 향해 나아갈 용기와 힘을 부여받습니다. 예배하는 마음이란 하나님 아닌 것에 대한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이며 진리이신 하나님에게만 매이고자 하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을 창조주와 구원의 주님으로, 자기 자신과 이웃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식하며, 자연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합니다.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은 그분에게 속했음을 압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온 것이므로 그분에게 다시 드리고자 하는 것이 곧 예배자의 마음입니다.
진실된 예배자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소유합니다. 온 정신과 마음과 몸을 다하여 하나님께 진정한 존귀와 영광을 드리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분 앞에 나아와 그 분께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친히 예배의 주관자입니다.
참된 영적 지식을 깨닫지 못하고 예배하려고 할 때 종종 우리의 예배는 우상 숭배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상 숭배는 내가 주체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모든 판단 기준을 자기 중심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 예배는 내 마음에 들었어. 그 예배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어’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에 대한 논쟁은 사람을 분열시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예배를 찾으면 찾을수록 결국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더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인류 최초의 살인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최초의 살인이 이루어진 원인이 예배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가슴이 섬득해집니다.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만 받았기 때문에 가인은 어쩔 줄 모르는 분노의 노예가 되어서 아우를 살해하게 됩니다. 그는 예배의 주체자가 하나님이신 줄 몰랐습니다. 예배가 자기 마음대로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데 대한 분노를 느렸던 것입니다.
예배에 관한 인간의 기준이 얼마나 주관적입니까? 인간의 미적 감각이 얼마나 유행을 탑니까? 인간이 가진 감각은 시대적이고 문화적이며, 개인적인 인생전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더구나 한 사람에게서도 그 기준이 순간마다 계속 변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순간적인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 특정한 스타일의 음악, 특정한 장식품 등등에 고착된 예배만을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것들은 순간적이고 유한합니다.
우리는 최선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절대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예배는 없습니다. 완전히 내 마음에 드는 예배는 없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인간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다해서 드리는 예배이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예배 드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이 순간, 내가 정말 성령 안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오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진정한 진리를 경청하며, 진리를 통해 도전 받기 위해서, 진리 안에서 예배드리고 있는가 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배 드리고 있으며 예배의 참된 내용인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 보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미적인 판단보다는 나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예배를 찾기 보다는 내가 이 한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예배자로서 참여하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주도하시는 성령님께서 나를 어떻게 부르시나?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시나? 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과 내가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영혼과 육체를 건드리셔야 합니다. 주님과 나의 텃치가 일어나야 합니다. 나의 죄에 찌든 영혼을 주님께서 고칠 수 있도록 내어 놓는 것입니다.
예배의 시간은 성령께서 수술칼로 우리를 수술하시는 시간입니다. 수술자는 성령 하나님이시고, 수술칼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고칠 수 있도록 이 예배 시간에 주님께 내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전기 제품에 전기가 들어와야 기능을 발휘하듯이 예배는 우리 영혼이 항상 생명이 흐르고 있는 전선에 플러그를 꽂는 것과 같습니다.
예배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이며 또한 본분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임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인간이 단순한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성에 동참하는 시간이며, 죄인이 하나님의 거룩성을 덧입는 장소입니다. 한시적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성을 경험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누추함과 죄악의 모습을 보여드려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을 받으며, 우리의 마음과 영을 드려 하나님의 영을 받으며, 우리의 절망과 좌절을 드려 하나님의 소망과 기쁨을 받는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