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갖고 노는 거 아니냐” 임수경·문규현 방북 화났다
이문열, 시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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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는 어떻게 보수 문인으로 단련됐나
1989년 문화계의 화제 인물은 나와 마광수(2017년 별세) 교수였다. 당시 신문기사들을 뒤적이면 그해 상반기 양대 서점인 교보문고와 종로서적 집계 결과 베스트셀러 1위는 내 연애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2위는 마 교수의 산문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고 나온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 교수의 산문집은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성(性) 개방과 쾌락 문제를 건드려 찬반 논란이 이는 가운데 일부 여성 단체에서는 진보적이라며 긍정적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마 교수가 몸담았던 연세대 국문과에서는 “성에 관한 글·강의·강연 활동을 자제하라”며 전공 강의를 배정하지 않는 징계를 결의했지만, 그해 연말 마 교수는 화제성 논란에 힘입어 MBC TV 교양물 ‘밤의 예술기행’ 고정 MC를 맡았다.
1989년 산문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로 화제와 논란을 부른 연세대 마광수 교수는 92년 소설 『즐거운 사라』의 내용이 문제가 돼 강의 도중 구속된 이후 교수직 사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2003년 복직 후 강의하는 모습. 중앙포토
카르멘식의 ‘팜므파탈’(치명적인 여자)을 소재로 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그야말로 가볍게 시작한 소설이었다. 일요뉴스에 연재했던 작품인데, 원고 받으러 온 기자를 기다리게 하고 그 자리에서 원고지 30장을 써 준 적도 있을 정도로 급하게 썼다. 그런데도 소설이 잘 팔렸고 이듬해 손창민·강수연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통일 문제 성급히 접근하려면 사제복 벗어라”
89년 내가 화제가 됐던 이유는 또 있다. 그해 7월 가톨릭 문규현 신부와 대학생 임수경씨의 불법 방북(訪北)을 비판한 내 신문 기고와 방송 발언이 뜻밖의 논란을 불렀다.
나는 문 신부 등이 통일을 너무 가지고 논다고 느꼈다. 수십 년간 분단됐던 민족이, 그것도 3년간 전쟁을 치른 민족이 다시 합치는 일인데 너무 기분만으로 덤벼든달까. 8월 4일 방송된 MBC TV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출연해 섣부른 통일 문제 접근을 비판했고, 그에 앞서 7월 28일자 조선일보에 ‘메시아를 거부할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2000년 전 예수가 하늘나라의 용서와 화해만 강조할 뿐 정작 로마에 핍박받는 유대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은 외면해 유대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렸던 것처럼, 지금 예수가 한국 땅에 다시 온들 통일 문제라는 현실에 또다시 눈감을 경우 2000년 전처럼 처벌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올 텐데, 그 안에 일부 사제들이 끼어 있을 것이라는 게 글의 요지였다.
그러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성경 구절로 글을 맺었다. 정히 그리해야겠다면 사제복을 벗으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