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인화
“ 어떤 글을 읽다가 주인공의 삶과 제 삶이 너무 닮아서 너무 공감된 적이 있었답니다. 살다가 보니 부부가 가장 공감 안 되고 밖에 있는 사람이 오히려 저를 더 공감 해줄 때가 많았어요. 이런 부부 공감도 세월이 지나면서 헐거워지고 바뀌는가 봐요. ”
옛날에 엄청 친했던 사람이라면 지금도 만나고 살 것 같지만 현재형으로 유지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이유는 따로 연구된 게 없어 잘 모르겠지만 아마 현실이 마음같이 흘러가지 않아서 그렇고 이런저런 사유로 세월 안에서 어떤 이유랄 것도 없이 느슨해졌다. 학창 시절 메일을 붙어 다니고 친구 집에서 먹고 자고 함께 보내기엔 서로의 다른 삶 영역이 늘어났다. 이처럼 늘 같은 방식으로 삶이 반복되지는 않는지만 우리는 누군가 잘 지내? 물어오면 ‘매일이 그렇지’라고 비슷하게 말한다. 이는 큰 형상은 같으나 내면 스토리는 다른 색과 다른 사람들로 만나고 헤어지며 이어져가도 같다고 인식하는 차원적 다름일 뿐이다.
매일 같은 듯 하나 다른 것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의 반응과 결정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만약 내가 전체적으로 경제적, 심리적, 관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는 비슷한 상황에서는 합리적이고 상황을 고려한 결정을 할 수 있으나, 같은 일이라도 내 상태가 불안정하다면 현명한 결정을 내릴 확률은 낮을 수 있다. 그래서 언제 누구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은인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되고 어느 경우엔 상대의 배려도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린 후 좋은 결과로 인해 생겨난 인연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며 산다. 이는 당시에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동은 자신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상대가 일상의 태도로 자신을 대한다면 상대를 오히려 변한 사람, 즉 예전 같지 않다는 판단으로 왜곡하여 생각한다.
가장 많은 예는 연애와 결혼에서 볼 수 있다.
연애 시절에는 안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달라진 것이다. 누가 달라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열정에서 안정으로 긴장에서 편안함으로 이동하며 에너지의 차원도 달라진다. 부부 상담 중 아내를 향해 남편은 아직도 결혼이 연예인 줄 아나 보라며 핀잔 같은 표현을 당연스럽게 하며 결혼은 현실인데 본인을 연애 시절처럼 대해주길 바란다는 것이 애를 가진 엄마가 할 욕심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답은 없다. 바라도 되는데 그 남편에게는 바라면 안 되는 건 확실했다. 이유는 남편은 결혼해서까지 연애 시절처럼 호호 불면서 아내를 대하고 싶은 마음이 안되는 성격이다. 엄마의 역할을 원하여 아이에게 건강한 음식을 차려주는 엄마이길 원하는데 아내는 공주처럼 대접받고 집안일도 나누어서 하고 음식은 사서 먹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아내를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자신을 아직 공주로 자기 연민을 가지며 산다고 한다. 입으로는 예쁘다고 할 수는 있으나 어떻게 매일 아이처럼 듣기 좋은 소리를 해주며 사느냐는 판단이다. 누구의 잘잘못이기 이전에 서로 연애 시절에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기보다는 자기중심적으로 상대를 해석한 것이 불찰이다. 결혼을 하면 나는 이렇게 하며 살고 싶은 실질적인 얘기를 나누어야 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지금이라도 원하는 것을 말하고 협의를 해야 함에도 서로 상대가 양보 해주기를 바람으로 갈등은 더 심해진 것이다. 양보는 상대를 위한 양보가 아니라 아이를 기르는 가정 구성원 간 양보이다.
사랑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고 한편으로는 강력한 파괴의 힘도 가지고 있다.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자기중심적으로 의인화하여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가기보다는 무대를 감독하는 디렉터가 되어 자신의 삶을 끌고 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작업에 있어 우선은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는 그것이 중요하다. 나무마다 잎의 크기와 모양, 결이 다르듯이 사람도 각자의 성격과 삶을 사는 관점도 많은 차이를 가진다. 결이 같은 사람일 때 서로 바람이 일어도 다른 잎을 찢기지 않으며 가리지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