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6- 6:22절
가인은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가득한 분노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분노가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을 죽이게 합니다.
인간에게 있는 분노를 비롯한 좋지 않은 감정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시간에 천상의 천사가 창조주 하나님에게 불 순종해서 쫓겨나게 되는데
그 불순종한 천사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 악과 죄를 심어 준 것입니다.
그 죄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하는 죄입니다.
인간은 그 죄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하는데
아담의 아들인 가인은 그럴 기회를 몇 차례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들며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에덴 동쪽인 놋 땅에 자신을 보호해 줄 튼튼한 성을 짓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큰 아들이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이고, 부모 곁을 떠나자 셋을 낳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을 떠난 가인과 아담과 하와가 낳은 셋의 가족들이 따로 떨어져서 살아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셋을 낳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처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합니다.
셈의 이름이 에노쉬 라고 불렸는데 그 의미는 사람,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이때가 사람들이 집단으로 하나님을 예배했다고 신학자들이 주장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아담과 하와는 딸들도 낳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을 만큼 시간이 흐르고 큰 아들 가인이 결혼을 하게 되고 자손을 낳게 되는데
아내가 결국은 아담과 하와가 낳은 딸이거나 손녀들일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인은 결혼을 할 여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시간을 요즘 사람들이 매일 기록하는 일기 같은 기록이 없어서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세월이 흘렀을 것으로 추정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 그리고 막내 아들인 셋의 가족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고 사람의 딸들이란 표현은 6장 1절과 2절에 나옵니다.
가인의 후손들의 다양한 직업들이 소개 됩니다.
가인의 후손인 라멕의 말이 23절에 있습니다.
가인의 벌은 칠 배 자신의 벌은 칠십 칠배 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라멕은 가인의 혈기를 뛰어 넘는 자손일 것으로 보입니다.
라멕을 통해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들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문화와 사고 방식이
얼마나 잔인하고 포악한지를 알게 합니다.
이런 후손들이 더 많아진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키고 노아의 홍수 발생 원인으로 보입니다.
다른 시각으로는 라멕의 먼 조상인 가인을 꾸짖은 하나님에게 대드는
매우 불손하고 어리석은 피조물의 모습의 대표로도 생각됩니다.
라멕은 자신에게 타박상을 입히고 때렸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소년을 죽였다는 것은
동해 보복을 뛰어 넘는 매우 잔인한 보복을 한 것으로 보이며
타박상을 입고 매질을 당할 정도로 약했던 건지 성격이나 성질이 매우 잔인한 것인지
아니면 둘 다 포함된 인간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 없는 인간의 잔악상을 충분히 알게 합니다.
죄악에 깊이 물든 인간의 성품이 모두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이런 인간들의 후손들이 부패하고 포악해지면서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불러 옵니다.
이 시대에도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위로 인해 기후가 상승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끝자락 섬이 마라도에는 5년 전 부터 그렇게 많이 자라던 질 좋은 미역이 사라졌다고 그곳 해녀들이 말합니다.
톳도 사라졌는데 모두 바다의 수온 상승이 원인이라고 진단을 내립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경계였던 빙하가 녹아 내려서 스위스 땅이 이탈리아로 더 많이 넘어 갔다고 보도가 있습니다.
매일 마시는 플라스틱 병에 담긴 지하수에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고도 말합니다.
출산율이 저조한 것은 대한민국만이 아니 것 같습니다.
인간들은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성질대로 살아간 가인의 삶을 따를 것인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120년동안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의 삶을 따라 살 것인지를.....
지구의 온난화 현상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있는 인간들이 자초했지만
동시에 창조주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을 수 많은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살아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