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축구 중계할 때 얼핏 들었던 효창구장!
그 효창구장이 궁금하던 차에 성인이 되어 신문기사를 읽고 효창공원의 역사를 알게되고 몇년전 들러봤다. 지하철 효창공원앞역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접근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공원에는 백범 김구 기념관 및 독립운동가의 묘역과 함께 효창운동장 등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공존한다.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자료사진>

(미국 링컨 기념관을 모방한 것 같아서 아쉽다.)


# 효창공원의 역사
· 조선 시대에는 조선왕실의 묘역으로 '효창원' (孝昌園)이라 불렀다.
·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숙영 목적과 독립군 토벌 및 소탕작전 등을 펼쳤던 비밀작전지로 사용.
1940년 조선총독부는 태평양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충혼탑 설립을 명목으로 조선조 왕실 무덤을 고양 서삼릉으로 이장하면서 효창공원으로 만들었다.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든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 해방 후 김구는 1946년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3의사의 유해와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등 임정요인 3인 유해를 이 곳에 안치시켰으며 1949년 7월에는 백범 김구의 유해가 이 묘역에 안장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게 되면 국내로 봉환하여 이 가묘에 공식 안장할 계획이란다.
· 이승만 정부는 1956년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는 발표를 하자 국회에서 김두한 의원은 "선열에 대해서는 물질보다 추모의 정신으로 보답해야 만큼 우선 정부는 분묘에 대한 모든 절차를 결정한 후에 운동장 설비공사에 착수했어야 할 것이다. 효창공원의 선열 묘지는 성묘이다. 이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 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피력하였다. 공사중지 건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효창운동장의 공사를 강행하였고 1960년 운동장이 준공되고 난 후 관중들의 함성은 독립운동가의 혼령들을 아주 정신 사납게 만들었다.
·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골프장을 만들려는 공사를 시도하다 저지 당하자 1969년에 효창공원에 반공투사 위령탑, 1972년에 김구의 묘 옆에 노인회서울시연합회와 대한노인회중앙회 시설을 세웠다.
· 노태우 정부 1989년에 사적 330호로 지정되었다.
· 김대중 정부 2002년에 주변에 백범기념관 건립
· 문재인 정부 2018년 8월 16일 국가보훈처는 2019년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가가 관리하는 독립운동기념운동으로 재조성하기로 결정했다.
* 김구 등 7명 잠든 효창공원에 반공탑·축구장 들어선 사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470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