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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 계획을 세울 때는 ‘사기막골 → 고동산 → 화야산 → 뾰루봉 → 뾰루봉식당’의 14.5km 구간을 7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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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야산[禾也山]
높이: 755m
위치: 경기도 가평군
화야산은 가평군 외서면과 양평군 서정면에 걸쳐 있는 해발 755m의 산으로 북한강이 산 북쪽으로 청평호를 이루면서 감싸고 돌아 남쪽으로 향해 나란히 흘러나가는 가운데 있음으로 산행 중에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아름답다.
청평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음으로 접근이 용이하고 정상 북쪽 끝에 위치한 뾰루봉(709m)과 서쪽 능선 위에 일구어진 고동산(600m)이 모두 화야산에 딸린 봉우리라 할 수 있다. 동서로 갈라져 내려간 능선에는 수림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서 어느 때 찾아도 만족한 산행을 할 수 있다.
산행에 있어서 어느 코스를 택하건 4시간 이상 소요되므로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된다. 또 겨울철에는 적설량이 많아 겨울 산행의 맛을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북쪽의 청평호반과 서쪽 큰골 또한 대성리 유원지와 함께 여름철 피서지로서 유명하다. 주 능선에 올라서면 강물을 끼고 산행하는 기분이 좋다. - 한국의 산하
고동산
높이: 600m, (뾰루봉: 710m)
위치: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고동산은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해발 600m의 산으로 화야산(755m)에서 서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능선 끝에 위치하는데 산의 서쪽 아래인 외서면 삼회리를 향해 계곡이 펼쳐져 있다.
이 산은 북한강이 의암댐, 남이섬을 지나 청평댐에 이르러 속도를 줄이면서 또 한 굽이를 돌아 화야산을 바짝 끼고 내려가는 길의 구암리 나루터 앞에서 올려다보이는 산이다.
구암리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고동산을 바라보며 건너가면 바로 삼회리이다. 청평에서 들어오는 시내버스의 종점이기도 한 삼회리는 일명 사기막이라고도 불리는데, 약 30여 호가 모여 사는 제법 큰 마을이다.
이곳에도 문명의 바람이 흘러 들어와 모든 집들이 시멘트 벽돌담으로 깨끗이 단장되어 시골의 옛 정취가 점점 사라져 가지 않나 하는 아쉬움을 들게 한다.
큰길 외곽 동쪽으로 화야산 정상을 바라보며 10분쯤 들어가면 오른쪽에 우뚝 솟은 장송, 두 그루가 멋지게 서 있고 그 뒤 비닐하우스가 있는 옆으로 작은 길이 보인다.
가평의 청평호 건너편에는 화야산, 고동산, 뾰루봉이 나란히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세 산을 연결하여 종주 산행을 기획하는 맛도 괜찮다. 청평호를 바로 접하고 있으며, 또 댐 쪽에서 오르거나 회골에서 시작하는 능선 코스가 암능인데다 희미한 산길이라 잘못 들기 쉽다.
잔솔과 참나무가 많고 낙엽이 가득한 능선이 아주 좋다. 매의 부리처럼 날카로워 보이던 정상은 온통 나무로 가려있다.
북으로 뾰루봉, 남으로는 고동산으로 이어지는 긴 산줄기가 마치 큰 산을 연상케 한다. 북쪽과 서쪽으로 북한강을 끼고 있고, 동서의 능선으로 수림이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임해 속을 헤쳐가는 듯하며 정상에서의 전망 또한 가슴이 확 트이는 듯 시원한 맛을 내 언제고 가벼운 산행으로서 인기가 높다.
뾰루봉은 청평댐 건너편 나이아가라 호텔 근방에서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도 있고 이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 한국의 산하
11월 2주 차 산행은 한 안내산악회를 따라 일요일인 13일 경기도 가평의 화야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산림청 담당 산림은 11월 1일부터, 환경청 담당인 국립공원은 11월 15일부터 가을철 산불 예방을 위해 입산 금지다. 물론 허용하는 구간도 있으나, 그 기간에 갈 수 있는 산이나 코스는 지극히 한정적이라, 안내산악회도 섬, 남도 그리고 평소에 잘 찾지 않던 산을 상품으로 내놓는다. 고로 웬만한 산은 거의 다녀온 등산객이라면 오히려 이 기간이 평소 쉽게 갈 수 없었던 산을 갈 기회다. 그렇게 다녀온 게 지난 토요일 고흥 천등산이다. 그리고 이번에 가는 화야산이다. 다만, 화야산은 굳이 안내산악회가 아니라 대중교통으로 다녀올 수도 있으나, 등산방 정기산행 지로 염두에 두고 있는 산이라. 답사의 성격도 있어 안내산악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화야산은 높이가 755m에 불과하나, 안내산악회 A 코스가 14km가 넘고, 산행 소요 시간을 7시간으로 책정한 거로 보면, 가볍게 볼 산행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다. 사실 강변에서 시작하는 산은 들머리의 고도가 생각보다 낮아, 들머리와 정상의 고도차가 정상의 높이와 큰 차이가 없어, 올려야 할 고도가 다른 산에 비해 높다. 해서 등산객이 많이 찾지 않는 산이었는데, 까만 소가 100+로 선정한 덕분에 인증꾼의 관심을 받는 중이다. 덕분에 안내산악회를 이용해 편하게 다녀올 수 있게 됐다. 해서 같이할 친구가 있으면 같이 가는 것도 좋을 거 같아, 등산방에 산행을 소개했고, 기영이 동행하기로 했다.
안내산악회와 같이 둘이 화야산을 다녀오기로 했으나, 산행 하루 전인 토요일 오후부터 산행 일인 일요일 새벽까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후 기온이 급강하한다는 예보로, 체감기온은 영하를 오르내린다. 밤새 내린 비가 얼 수도 있어 아이젠을 포함 완벽한 겨울 산행 준비를 하기로 했다. 물론 점심은 컵라면으로, 그리고 날머리인 삼회2리 마을회관 가까운 곳에 식당이 여럿 보이니, 하산주로 몸을 데울 생각이다. 그러려면 최소 15시 30분 즉, 3시 30분까지는 산행을 마쳐야 한다. 기영은 짧은 B 코스를 달릴 예정이라, 문제가 없고, A 코스를 달릴 예정인 내가 1시간 반은 몰라도 최소 1시간 정도는 단축해야 한다.
2 – 1
산행지가 서울 근교라, 안내산악회 버스도 다른 산행지보다 10분 늦은 7시 10분에 양재역에서 떠나, 산행 일의 모든 일정을 평소보다 10분 늦춰 진행했다. 와중에 마누라가 깨워서 눈을 떠보니, 5시 25분이다. 5시 10분 알람을 설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설정한 날이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다. 마누라가 같은 산악회로 경기 둘레길에 참여하는 덕분에 깨워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산악회비만 날릴 뻔했다. 예정보다 15분을 더 잤으니, 그만큼 바쁘게 움직여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과정을 완수하고, 5시 55분에 집을 나섰다. 물론 끓인 누룽지로 아침도 먹고. 앞으로도 30분 전에 일어날까? 어쨌든 6시경 도착한 마을버스를 타고 불광역으로 가, 지하철로 양재역에 도착한 시각이 6시 48분이다. 너무 이르다.
일찍 나가봐야 추위에 떨기만 할 뿐이라, 역 구내를 서성이다가, 우연히 청과물 가게의 좌판을 보니, 김밥이 없다. 추워지면, 산에서 얼음과자로 바뀌어 요기가 아니라, 배탈의 원인이 되는 김밥은 겨울 산행에는 인기가 없다. 가게 주인장이 이런 내용을 잘 아는 걸 보면, 꽤 오랫동안 여기서 장사를 했다는 거다. 김밥이 안 보이는 좌판에 감탄하고, 양재역 구내에서 유일하게 약자를 위한 의자가 있는 엘리베이터로 가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7시경 12번 출구로 나와 산악회 버스 정차장인 국립외교원 앞으로 걸어가는데, 7시에 출발하는 버스와 함께 와이프가 타고 있는 경기 둘레길 버스도 출발하는 게 보인다. 경기 둘레길 또한 서울 근교라 7시 10분 출발이라 알고 있는데, 7시 2분에 출발하는 걸 보고, '하긴, 모든 승객이 다 탔다면, 시간에 연연해할 필요가 없지!'라고 생각하며 외교원 앞에 도착했다.
7시 2분, 7시 출발 모든 버스가 떠나고 나니, 다음 차를 기다리는 등산객은 나를 포함 두 명에 불과하다. 7시 10분 출발 양재에서 타는 승객이 몇 명 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둘이 다라 혹시 내가 시간을 착각했나, 산악회 사이트로 들어가 등산객의 탑승지를 확인했다. 맞다, 둘이다! 일단 시간을 착각한 게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역으로부터 부부로 보이는 노년의 등산객이 이쪽으로 접근하는 게 보였다. 화양산행은 아니고 경기 둘레길 승객일 텐데, 저 두 명이 안 탔음에도 인솔 대장은 무슨 생각으로, 7시에 버스를 출발시켰는지 궁금했다. 승객 오류에 대해서는 인솔 대장 책임이라 알고 있는데. 인솔 대장 걱정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빨간 버스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양재를 떠난 버스는 복정역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들머리인 '뾰루봉 식당'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서울을 이렇게 쉽고 빠르게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비와 그 후 한파 소식 때문인지, 서울 빠져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다. 이렇게 달려도 되나 할 정도로 빠르게 달려, 양재를 떠난 지 50분이 지난 8시 정도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휴게소에서 20분간 쉬어간다고 한다. 뭐 그러려니 하고, 창밖을 보고 있는데, 저 앞에서 이상한 모양의 건물이 점점 다가온다. 업무용 건물은 아닌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예상대로 역이다. 그것도 '대성리역!' 대성리역이면 강만 건너면 뾰루봉 식당 아니었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버스가 역을 지나 휴게소로 들어간다.
버스에서 내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주변을 서성이며 보니, 바로 옆이 대성리역이다. 분명 들머리인 뾰루봉 식당에 9시 30분 도착이고, 대성리역에서 강만 건너면 바로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내가 착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요즘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술이 과해서 그런지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그리고 흐리고 기온이 낮아 밖에서 더 서성여봐야, 춥기만 할 뿐이라, 바로 버스에 탄 후 패드로 산악회 사이트로 들어갔다.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들어간다. 이번은 내 기억이 맞다. 그런데, 현재 시각 8시 2분이다. 1시간이나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빨리 왔다. 그리고 경기 둘레길 인솔 대장이 걱정돼, 그 도보여행도 확인해보니, 양재 출발 7시, 사당 출발 7시 10분이다. 인솔 대장이 실수한 건 아니다. 이 도보여행은 서해안으로 가는 거라, 첫 출발지가 사당이 아니라 양재다. 첫 출발지를 착각하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노부부도!
20분간의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오랜만에 지도를 나눠준 후 마이크를 잡고, 코스와 주의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서두는 계획보다 1시간 일찍 뾰루봉 식당에 도착할 예정이라, ‘모든 걸 한 시간씩 당긴다!’다. 고로 마감이 16시 30분이 아니라, 15시 30분이다. 하산주를 위해 한 시간 단축하면, 14시 30분이다. 그럼 산에서 굳이 컵라면 불려 먹느라 지체하기보다는 계속 달려, 날머리인 시기막 식당에서 하산주를 겸해 늦은 점심을 먹는 게 답이라, 그렇게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코스 설명에서 내 예상대로 등산객이 거의 찾지 않는 산이라, 낙엽이 많이 쌓여 있고, 와중에 지난 밤, 비까지 내려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했다. 특히 뾰루봉, 화야산, 고동산 종주는 7시간으로 부족할 수 있으니, 초보자는 뾰루봉을 버리는 B 코스를 선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강조했다. 그런데 인솔 대장이 나눠준 지도에는 고동산을 거치지 않고는 사기막에서 화야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다.
8시 20분경 휴게소를 떠난 버스가, 강을 건너 상류로 조금 올라가더니, 식당 앞에 주차한다. 뾰루봉 식당이다. 그 시각이 8시 25분이다. 버스에서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들고, 식당 앞으로 가, 일체형 식탁에 배낭을 내려놓고, 등산 준비했다. 물론 다른 등산객도. 와중에 아침을 못 먹고 온 등산객은 만두를 주문해 아침으로 먹기도 하고. 하긴 휴일 8시 30분이면 그렇게 늦은 아침도 아니다. 그런데, 내 앞에서 산행 준비를 하던, 두 여성 등산객이 '환 종주하냐?'고 묻는다. '환 종주?'하고 되묻자, ‘B 코스도 여기서 내리는 거 아니냐?’고 다시 묻는다. B 코스는 차를 타고 더 가야 한다고 알려주자, 깜짝 놀라 버스에 다시 탔다. 그 모습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인솔 대장이 B 코스 산행 자는 어떻게 하라는 언급이 없었다. 물론 환 종주니, 산행을 많이 해본 등산객이라면 날머리가 곧 들머리라는 걸 바로 알지만. 어쨌든 B 코스 등산로가 없는 지도도 그렇고, B 코스 산행 자를 위한 어떠한 설명도 없는 게 이 인솔 대장은 문제가 좀 있어 보인다. 그게 대장의 임무는 아니나, 다들 하는 서비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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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26분 산행 준비가 끝나고, 아스팔트 포장 임도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는 한 쌍을 따라 나도 산행을 시작했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며, 확인한 들머리의 해발 고도는 100m다. 뾰루봉이 709.7m니, 600m 이상을 올려야 한다. 예상대로 쉽지 않은 산행이다. 뾰루봉 식당에서 100여 미터를 올라가자,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임도다. 그리고 300m가량 가자, 잣을 형상화한 이정표가 정상까지 2.3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일단 목표는 한 시간이다. 계곡 옆으로 난 임도도 끝나고 본격적인 등산로를 만난 건 8시 33분으로 식당에서 600여 미터의 거리라 생각된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 후 한파가 닥칠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를 믿고, 온몸을 겨울 등산복으로 꽁꽁 싸맸는데, 집에서 나올 때, 양재에서 산악회 버스를 기다릴 때, 그리고 휴게소에 잠깐 버스에서 내린 후, 기상청 말 듣기 잘했다고 자찬했다. 그런데, 강가의 산이 다 그렇지만, 특히 뾰루봉이라는 이름이 '뾰족하다!'에서 나온 이 봉우리의 경사는 상상을 초월해, 산행 시작 후 10여 분이 지나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흐르는 땀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준이라, 8시 39분에 계곡 옆 작은 쉼터에서 넥워머와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고, 수건을 꺼내 배낭의 왼쪽 멜빵에 달았다. 그리고 수시로 땀을 닦으며 올라가자, 등산로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계곡을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앞서 올라가는 등산객을 보니, 거의 수직이라, 갈지자를 그리고 있다.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은 낙엽 쌓인, 비로 진흙으로 바뀐 급경사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온 신경을 집중해 지그재그로 능선에 도착하자, 시멘트 구조물이 보인다. 참호다. 그걸 보는 순간 가평 산에 올라왔음을 알 수 있었다.
등산로는 참호 옆으로 나 있으나, 참호 위가 곧 전망대라, 등산로를 버리고 참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앙상하나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한강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댐이 보인다. 이후 뒤로 돌아 거의 평지나 다름없으나, 양옆은 낭떠러지인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해 갔다. 물론 그 길목에서 전망대를 만나면 뒤로 돌아 한강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숲의 방해를 받아 제대로 된 사진은 찍지 못했으나, 방해물이 없을 거로, 예상되는 정상에서 보이는 한강의 모습은 절경일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 기대를 안고 올라가자, 저 위로 철책 기둥에 걸린 흰 밧줄이 보인다. 이번 산행 최초의 안전시설이다.
밧줄 안전시설 구간을 낑낑대고 올라가자, 이건 마치 낙엽 쌓인 도로처럼 보이는 능선이다. 당연히 그 앞. 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후, 그 능선 따라가니, 그 끝은 급경사 암릉이다. 그리고 바위 중간중간에 디귿의 철을 박은 계단도 보인다. 그런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흙산이 암릉으로 바뀌고, 비구름 속으로 진입해 10m 전방이 보이지 않는다. 고로 그 보다 먼 한강이야 말할 것도 없다. 비구름 속에서 암릉을 따라가, 작은 암봉을 넘자 저 앞에 철탑이 보인다. 이번 산행 첫 번째 표지인 송전탑이다. 고로 제대로 가고 있다. 사방 10m에 불과한 시야라 볼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나, 암릉을 오르내리는 재미는 진정 오랜만에 맛보는 거라, 조망 없음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그나마 사진을 찍을 만한 대상이라고는 강한 비바람을 견디느라 기묘한 모양으로 자란 소나무 정도다. 당연히 기록으로 남겼다.
암릉 위로 난 길답게 위험한 구간도 있어, 중간중간 등산로는 암릉을 우회하기도 하나, 등산로를 따라갈 인간이 아니어서, 위험하나 암릉으로 계속 갔다. 암릉을 넘어 반대편에 도착해 보면, 진입을 막는 나무가 놓여 있다. 물론 우회로로 가는 것보다, 늦지만, 그렇다고 그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가끔 낙엽 쌓인 흙길로 가기도 하며, 암릉으로 계속 위로 오르자, 정상에서 400m 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시각이 9시 38분으로 목표한 1시간 내 정상 도착은 틀렸다. 그런데, 암릉을 타고 올라온 걸 고려한다면 대단히 빠르다. 그리고 그 이정표부터는 다시 낙엽 쌓인 흙길로 바뀌었다. 급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이번 산행 첫 번째 정상인, 뾰족해서 붙여진 이름의 뾰루봉이다. 정확히는 반경 50m 내다.
들머리인 뾰루봉 식당에서 정상까지 2.3km를 1시간 25분이 걸린, 9시 51분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뾰루봉 709.7m'라, 음각된 대리석 정상석이 서 있고, 인솔 대장을 포함 3명의 등산객이 정상석을 사진으로 찍거나,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고 있었다. 먼저 정상석을 배경으로 남긴 후 막 도착한 등산객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그리고 그다음 도착한 등산객 인증을 찍어주고, 날 찍어준 등산객은 인증을 남길 생각이 없다며 찍기를 거부했다. 본인이 싫다는 데야 뭐! 예상대로 바위 봉우리인 뾰루봉 정상은 방해물이 별로 없어, 굽이치며 흐르는 한강의 모습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을 거 같으나, 지금은 비구름이 덮고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정상석 모습과 그걸 배경으로 인증을 남겨, 뾰루봉에서 할 건 다 했으니, 다음 목표인 화야산을 향해 출발했다.
먼저 인솔 대장과 산행 중 친해진 등산객이 출발하고, 이어서 내가 뾰루봉 정상에서 떠났다. 그런데, 지금까지 올라온 길과 달리 뾰루봉에서 화야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암릉이 아니라 흙길이다. 비에 젖은 낙엽 쌓은 흙길. 잡을 게 있는 암릉과 달리 잡을 게 아무것도 없어, 미끄러운 상황에 대처하기 더 어렵다. 물론 그렇다고 위험 정도는 암릉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런데 앞장선 대장 팀이 작은 봉우리를 만나자, 우회로로 보이는 길로 간다. 물론 쓸데없는 체력 소모를 줄이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봉우리 위를 보니, 이정표가 서 있다. 무언가 있다. 해서 봉우리에 올라가서 보니, 갈림길이다. 대장 팀이 간 방향은 화야산이 아니라, '양지말'이다. 당연히 목청껏 대장을 불렀다. 그쪽은 양지말이라고. 그러자 뒤에서 큰일 날 뻔했다며, 한숨 쉬는 소리가 들린다. 나를 찍어준 산꾼과 내가 찍어준 등산객이다. 갈림길을 떠나, 낙엽 쌓인 짧은 암릉 구간을 지나자, 또 갈림길 이정표다. 이번에는 양지말 반대편으로 '소야곡'이다. 지도에는 뾰루봉 정상을 사거리로 표시하고 있으나, 실제는 뾰루봉에서 화야산 방향으로 100여 미터를 가면 왼쪽으로 양지말 갈림길이고, 다시 300여 미터를 가면 오른쪽으로 소야곡 갈림길이다.
소야곡 갈림길을 지나, 화야산으로 가는 길은 높낮이는 심하지 않으나, 기복은 많다. 가끔 암봉도 나타나나, 낙엽 쌓인 흙산으로 어디서 찍든 똑같은 모습이라,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의욕도 사라졌다. 그저 앞만 보며 가다가, 가끔 지도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화야산까지의 전체 지도를 머릿속에 넣고, 지금쯤 갈림길이라 생각되는 곳에서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며 갔다. 고로 이정표가 없는 갈림길에서 거침없이 방향을 잡고 갈 수 있었다. 비구름 속이라 보이는 게 다 같다고 해도 무언가 기록은 남겨야 할 거 같아, 정말 필요한 곳에는 없는, 이정표는 사진 찍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해서 뾰루봉부터 화야산까지는 이정표 사진이 거의 다다. 삼화1리 마을회관 사거리 다음은 암봉으로, 힘겹게 오르자, 다시 이정표다. 삼화1리 마을회관 갈림길이다. 사거리에서 고작 100m 왔을 뿐인데, 11분이 걸렸다.
삼화1리 마을회관 갈림길을 떠나, 다시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기며 진행해, 11시 22분에 화야산에서 1.2km 거리의 이정표 도착했다. 아주 당연히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갔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갈림길이 있다는 게 떠올라 핸드폰을 꺼냈다. 간간이 비도 내려, 오는 길에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배낭에 매달고 다니던 모자도 썼다. 당연히 핸드폰은 젖지 않게 깊숙이 간직했으나, 이미 물이 들어가 보조 배터리는 있으나, 충전은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어쨌든 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확인해 보고 깜짝 놀랐다. 길도 없는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에 의하며, 오른쪽으로 90도 꺾으면, 길과 만난다. 그런데 급경사다. 문제는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 두 사람이다.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급경사를 내려가 길과 만났다. 길이라고 해봐야, 언제 갔는지 모를 인적이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그 길을 따라 진행해, 쉼터가 있는 삼화1리 마을회관 갈림길에 도착했다. 화야산까지의 거리는 600m.
삼화1리 마을회관 갈림길까지 600m를, 길을 만들며 오느라, 18분이 걸렸다. 와중에 해발 574m까지 내려갔다가, 해발 635m의 갈림길까지 올라와야 했다. 그리고 해발 755m의 화야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120m 정도를 수직으로 올려야 하는 거라 쉽지 않다. 헉헉대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자, 또 이정표다! 정상까지 0.2km! 비가 추적거리는 가운데 낙엽 쌓인 급경사를 오르고 있으니,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음성으로 알려준다. 화야산 정상 반경 50m 내라는 얘기다. 그리고 2분을 더 올라가자, 화야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우리 뒤에 있던, 대장을 비롯한 예닐곱의 등산객이 인증을 찍거나, 무언가를 먹고 있다. 물론 B 코스로 사기막에서 시작한 등산객도 있다. 먼저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둘러보니, 3개다! 두 개의 검정 대리석 정상석은 가평군과 양평군에서 세웠고, 다듬지 않은? 화강암 정상석은 출처를 모르겠다. 대장이 버스에서 정상석이 3개인 산은 여기가 처음이라고 했던 그대로다. 정상이 접경이면, 각 지자체에서 정상석을 세워 두 개의 정상석은 흔하다. 오히려, 한반도 곳곳의 삼도봉은 정상석이 하나다!
먼저 3개의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이후 등산객과 인증꾼에게 인기 있는 화강암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화야산에서 떠나려는데, 여기까지 같이 온 등산객이 가평 정상석에서 인증을 남기자고 해, 인증을 하나 더 남겼다. 물론 찍어도 주고. 화강암 정상석이 붐벼, 한가한 가평 정상석에서 여유롭게 사진을 찍기 위함이다. 그렇게 인증을 남기고 나자, 지금까지 동행한 산꾼이 아주 당연하듯이 셋이 같이 다음 봉우리인 고동산으로 출발하자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린 팀이다! 하긴 등산로를 개척하느라 같이 고생도 했으니, 당연한가? 점심을 먹고 가자는 등산객에게 비가 추적거리는 곳에서 급하게 먹으면 체하고, 고동산까지 3.3km에 불과하니, 빠르게 달려, 하산해서 막걸리를 마시자고 한다. 애초 내 계획이라, 동조하자, 등산객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해 셋이 같이 화야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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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의 USB 단자에 물이 스며들어 충전할 수 없고, 남은 배터리는 얼마 되지 않아, 함부로 사진도 찍을 수 없는데, 화야산에서 고동산으로 향하는 능선도, 뾰루봉에서 화야산에 이르는 길과 다를 바가 없어, 가끔 보이는 이정표만 기록으로 남겼다. 산꾼도 했던 얘기지만, 화야산까지의 이정표에 비하면 그보다 짧은 고동산까지의 이정표는 배가 많았다. 화야산이 까만 소 100+에 선정되어 인증꾼이 많이 찾은 덕이 아닐까? 와중에 제일 뒤에서 따라오던 등산객이 배가 고파서 더는 못 가겠다고, 항복하는 바람에, 그를 뒤에 남겨두고 둘만 달려, 1시 4분에 고동산 정상에 도착했다는 등산 앱의 음성 메시지를 들었다. 그런데, 그 음성 메시지를 들은 곳에서부터 5분을 더 가야 정상석이 있는 정상이다. 높이로 봐서는 메시지가 나온 곳이 정상이 맞는데, 300여 미터 더 간, 현재는 비구름이 덮고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조망이 좋은 봉우리를 정상으로 삼고 정상석을 설치한듯했다.
1시 10분 정상석이 있는 암봉에 도착해 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4명의 청춘이 정상에서 휴식하고 있는데, 사기막 방향에서 청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 같다. 그리고 여기도 정상석이 두 개다. 검정 대리석과 직사각형의 화강암이다. 그런데, 대리석 정상석에는 해발 600m, 화강암 정상석에는 해발 591m로 높이가 서로 다르다. 목표한 세 개, 산 정상에 올랐으니, 우리의 다음 목표는 막걸리라, 화강암 정상석을 배경으로, 서둘러 서로의 인증을 찍어주고 하산을 시작했다. 물론 예의상 하산 전에 내려가는 길이 어떤지 청춘에게 물어봤다. 밧줄도 몇 개 걸려있는 급경사 암릉으로 조심하지 않으면 무릎이 나간다고 충고한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려가는데 바로 밧줄이 보인다. 유격에 미친 것도 아니고,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밧줄 잡고 내려갈 기분이 아니라 다른 길은 없나, 살펴보니, 오른쪽으로 큰 나무에 의지해 내려가는 길이 보여 그 길로 내려갔다. 동행한 산꾼은 밧줄을 탔고.
아래로 내려가자,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고, 당연히 등산로는 그 바위를 우회하고 있다. 평소에도 쉽게 넘기 어려운 바위로 보이는데, 비까지 내려 바위를 넘는 건 포기하고, 우회 등산로로 내려가 바위를 돌았다. 그러자, 비에 젖은 낙엽 쌓인 좁은 등산로를 청춘 6명 중 셋이 뒤로 눕다시피 해 네발로 내려온다. 나머지 셋은 그걸 격려하고 있고, 정상에 있던 청춘들의 친구다. 그걸 보고 재빨리 암벽 쪽에 있는 나무 뒤로 자리를 옮겨 길을 양보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 상태라면 큰 사고가 날 거 같아, 눕다시피 한 청춘들에게 '옷을 버리면, 산행이 편해!'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자, 그중 여성 청춘이 ‘그래요?!’하더니, 주저앉는다. 그리고 엉덩이를 깔고 내려간다. 당연히 옷은 버리나, 안전하고 편한 산행이다. 그런데, 그 뒤를 따라가는 남성 청춘은 여전히 엉덩이를 든, 네발이다. 이러니, 이대남이 이대녀를 못 따라가지! 해서 마지막으로 '이 친구야, 어차피 버릴 옷이야, 옷은 빨면 되지만, 어딘가 부러지면 쉽게 못 고쳐!'라 하고, 그들이 내려온 봉우리에 올라서자, 나무에 매달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고동산 제2 전망대'라는 팻말이 보인다. 보이는 건 뿌연 안개밖에 없는 전망대에서 산꾼을 향해 이거라도 찍어갑시다 하고, 팻말을 사진으로 남겼다.
10%도 안 되는 핸드폰 배터리 때문에 사진 찍는 걸 포기하고, 급경사의 암릉과 낙엽 쌓인 급경사의 흙길을 내려갔다. 그 길목에서 뾰루봉 식당 외부 식탁에서 등산 준비하며, 내게 "환 종주하세요?"라고, 물었던 두 여성 등산객도 만났다. 화야산과 고동산을 오른 후 하산하는 중이다. 화야산에 도착 후 여기까지 오면서, 기영이가 있나 유심히 살폈으나, 없어, 앞서 하산 중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은 코스를 달린 두 여성을 만나자, 기영이 앞섰을 거라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그 두 여성을 추월해 내려가 1시 59분에 임도 갈림길을 만났다. 사실상 산행이 끝났다. 포장된 임도? 마을 도로를 따라 버스가 다니는 휴게소까지 1.45km를 내려가 2시 19분에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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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가까이 다가가 보니, 등산객 한 명이 짐칸에 배낭을 넣고 있다. 해서 나도 먼저 짐칸에 배낭을 넣고, 버스에 타서 둘러보니, 두 명의 등산객과 기사가 편하게 자고 있어, 조용히 핸드폰을 끈 다음, 충전 중이던, 패드를 켰다. 이후 패드로 기영에게 내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되어, 텔만 가능하다고 글을 남겼다. 다음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으려다가, 비가 스며들어 젖은 등산화를 벗어 의자 밑에 둔다는 건, 거대한 민폐라는 걸 깨닫고, 서울까지 2시간이면 충분할 거 같아, 등산화를 벗는 건 포기했다. 그리고 패드를 들고 버스에서 내려, 산꾼이 준비하는 동안, 화야정과 고목 등 주변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팔당에서 출발한 버스가 지나간다. 처음 화야산행을 계획할 때는 저 버스를 타고 여기로 와서 거꾸로 뾰루봉 식당으로 갈 예정이었다.
주변 조사가 끝나고, 인솔 대장이 식당이라고 했던 '고동산 쉼터'로 가 창으로 내부를 둘러보나, 식당이 아니라, 식탁 하나 있는 시골 슈퍼다. 그리고 여사장은 의자에 편하게 앉아 졸고 있다. 그 모습에 실망했지만, 일단 부딪혀 보기로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산에서 내려와 막걸리 한잔하려고 하는데 안주가 있냐고 물었다. 제육볶음이 되고, 원하는 건 뭐든지 가능하고 한다. 제육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 버스로 돌아가 산꾼에게 얘기하고 같이 가게로 가 하나밖에 없는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술이야 당연히 막걸리로 결정 났고, 안주를 뭐로 할까 고민하는데, 제육볶음, 감자전 등을 들먹이다가, 주인장이 가게 선반에 있던 꽁치 통조림을 들어 올리며, ‘김치찌개는 어떠냐?’라고 묻자, 산꾼이 좋다고 한다. 생선이 들어간 찌개는 좋아하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더 나은 안주가 있을 거 같지도 않아 좋다고 했다. 어차피 막걸리 안주로 김치만 있으며 된다는 생각이라.
김치찌개를 만드는 동안 가게 옆 수돗가로 가 대충 씻었는데, 산꾼은 웃통까지 벗어부치고 씻는다. 그 모습을 보고 혼자 가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막걸리 하나를 들고 와, 마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인장이 버너와 술잔, 수저통을 갖다 놓는다. 당연히 막걸리 안주인 김치를 기다리고 있는데, 김치찌개를 시켜서인지, 줄 생각이 없어 보여, 깡 막걸리를 마실까 하다가, 산꾼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데, 펄펄 끓는 김치찌개를 가져와 불이 붙은 버너 위에 놓는다. 먼저 앞접시에 조금 덜어 그 맛을 봤다.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다, 전혀 비린내가 나지 않고, 입맛에 딱 맞아, 감타하고 있는데, 산꾼이 들어와 맛을 보고, 어렸을 때 먹었던 맛이란다. 두 사람의 입맛에 맞으면 된 거라, 이후 막걸리를 마시며, 전국 산행지의 막걸리와 안주에 관해 얘기했다.
찌개의 김치와 국물은 마음에 드나, 꽁치는 어떤 맛을 보여줄지 궁금해 큰 용기를 내, 꽁치 한 토막을 꺼내 맛을 봤다. 왜 진작 이걸 맛보지 않았는지, 안타까워하자, 산꾼도 바로 꽁치를 꺼내 맛을 본다. 그리고 옆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는 주인장에게 어떻게 만드냐고 묻는다. 돌아온 답은 간단하다. 묵은지! 그리고, 밥도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인장이 먼저 햇반 얘기를 꺼낸다. 난 그저 밥 한 공기 부탁하려고 했지, 햇반은 생각도 못 했다. 바로 햇반 하나를 데워, 둘이 유일한 반찬이자 안주인 꽁치통조림 김치찌개와 같이 반 공기씩 먹었다. 창밖을 보며, 밥과 막걸리를 먹고, 마시고 하는데, 3시가 지나, 마감 시각이 다가오자 등산객이 속속 도착하는 게 보인다. 그중에는 기영도 있다. 문자를 남겼음에도 연락이 없었던 건, 아직 하산 전이라서다. 먼저 하산했을 거라는 내 예측이 틀렸다.
막걸리 세 통, 꽁치통조림 김치찌개, 햇반 하나에 모두 19,000원이란다. 가격에 놀라, 각자 만 원씩 꺼내 2만 원을 주고, 3시 15분경 가게에서 나왔다. 그리고 버스 주변에서 기영을 만나, 화야정으로 올라가, 이번 산행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둘 다 대단히 만족한 산행이다. 화야산에 관해 대화하며 버스에 탑승할 시기를 확인하기 위해 도착하는 등산객을 보고 있는데, 마감 3시 30분이 얼마 남지 않은, 3시 26분에 놀라운 전사가 나타났다. 내가 고동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옷을 버릴까 봐 어쩔 줄 모르는 청춘들에게 '옷을 버리면 산행이 편해!'라고 했는데, 그 결과물이다. 와중에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흰색이다. 주변의 모든 등산객이 그녀를 보고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 그녀가 인솔 대장에게 옷이 이래서 버스를 못 타겠다고 하자, 그럼 차에 늘 가지고 다니는 비닐을 깔고 타면 된다고 답한다. 여분의 옷이 있으나, 갈아입으면 출발 시간이 늦을 거 같다고. 그러자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 정도야 문제없다, 한마디씩 거들어,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왔다. 옆모습과 뒷모습만 봤지만, 어리면 20대 중반, 많아야 30대 초반이다. 이러니 같은 또래의 남성이 어떻게 여성을 따라가겠나?
3시 30분이 조금 넘어 날머리인 사기막을 떠난 버스가, 5분가량 달리자 더는 못 달린다. 거북이걸음에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해서 고개를 내밀어 앞을 살펴보니, 자가용이 가득하고, 계속 합류하고 있다. 올 때, 차량이 거의 없어 빠르게 와, 갈 때도 같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다. 양재까지 2시간 만에 간다면, 양호해 보여, 저 차들의 정체가 뭔지 추측해봤다. 어제, 오늘 같은 날씨에 가족이 한강 변으로 놀러 왔을 리는 없고... 저 앞으로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보이는데, 저기도 여기 못지않다. 겨우 고속도로에 들어선 버스는 계속 거북이걸음이다. 그런데, 막걸리의 영향인지 화장실이 급하다. 과거 포천 이동에서 귀가할 때, 똑같은 상황에서 왼쪽 눈썹 여섯 바늘을 꿰맨 악몽이 트라우마로 남아, 가능하면 막걸리를 마시지 않고, 마시면 차에 타기 전 화장실에 다녀온다. 막걸리를 많이 마셨나? 죽겠는데 버스는 거북이다. 그렇다고 고속도로에 내려달라고 할 수도 없어 꾹꾹 눌러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다.
급한 화장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 차가 1차로 복정역에서 승객을 내려주니, 거기서 내릴까 생각하고 있는데, 버스가 덕소삼패를 지나자, 그나마 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분위기로 봐서는 양재에도 곧 도착할 거 같아, 일단 더 참아보기로 했다. 좀 지나자, 버스는 복정역에 승객을 내려주고 양재로 향해, 사기막을 떠난 지 2시간이 조금 더 걸린, 5시 39분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리는 사람이 기영과 나 둘뿐이고, 종점인 사당까지 가는 승객도 대여섯 명에 불과하다. 나와 같은 상황에 부닥쳐, 다들 복정에서 내렸나? 와중에 인솔 대장도. 최소한 자기는 어디서 내린다는 얘기는 해야지, 대장이 영 마음에 안 든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급한 불을 끄고 둘이 집으로 향하는 거로, 대단히 만족한 화야산행을 종료했다.
안내산악회 계획 A 코스인 '뾰루봉 식당 → 송전탑 → 뾰루봉 → 양지말 갈림길 → 소야곡 갈림길 → 삼회1리 마을회관 사거리 → 삼회1리 마을회관 갈림길 → 화야산 → 삼회2리 마을회관 갈림길 → 고동산 → 임도 → 삼회2리 마을회관(사기막 버스 정류소, 고동산 휴게소)'의 14.94km(트랭글)를 5시간 55분 동안 탐험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한 시간 포함, 이동 5시간 49분, 휴식 6분!
비구름 속을 달린 산행이라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산행만으로도 재미를 만끽한 서울 근교 최고의 코스다!
뾰루봉부터 고동산까지 달리는 건 낙오자 속출로 귀가가 어려워, 화야산에서 고동산까지의 환종주만 2023년 중 등산방 정기산행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고동산 쉼터의 꽁치통조림 김치찌개와 막걸리, 하산주는 화야산행의 화룡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