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에세이전동균의 「눈은 없고 눈썹만 까만」 감상 / 이혜원
작성자:강인한작성시간:06:39 조회수: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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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균의 「눈은 없고 눈썹만 까만」 감상 / 이혜원
눈은 없고 눈썹만 까만
전동균
쩌억 입 벌린 악어들이 튀어나오고 있어 물병의 물들이 피로 변하고
접시들은 춤추고 까악 깍 울고 표범들이 담을 뚫고 달려오고 있어
뭐 이런 일이 한두 번이냐,
봄밤은 건들건들
슬리퍼를 끌고 지나가는데
덜그럭 덜그럭
텅 빈 운동장 트랙을 돌고 있는 유골들
통곡도 뉘우침도 없이
작년 그 자리에 피어나는
백치 같은 꽃들
누가
약에 취해 잠든 내 얼굴에 먹자(墨字)를 새기고 있어
도둑놈, 개새끼, 사기꾼
인둣불을 지지고 있어
눈은 없고 눈썹만 까만 것이
생글생글 웃는 것이
?《창작과비평》 2016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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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들썩거리는 봄밤의 풍경이 역동하는 시이다. 이 시에서는 모두가 한자리에 있지 못하고 마구 돌변한다. 악어와 표범들이 튀어나오고 물병의 물이 피로 변하고 접시들은 들썩인다. 모두가 흥분제를 먹은 듯 솟구치고 흔들린다. 봄밤에게 이런 것은 낯선 풍경이 아니다. 한두 번 보는 꼴이 아니라는 듯 건들거리며 슬리퍼를 끌고 지나간다. 심지어 유골들조차 깨어나 덜그럭거리며 텅 빈 운동장의 트랙을 돌고 꽃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잔뜩 피어난다. 약에 취해 몽롱한 ‘나’의 얼굴에도 누군가 잔뜩 먹자를 새기고 있다. 눈은 없고 눈썹만 까만 이상한 것이 정신없이 취하게 하고 모두를 흔들어놓는다. 이 시에서는 봄밤의 풍경을 카니발처럼 떠들썩하고 기이한 느낌으로 그려내고 있다. 모든 것이 한바탕 뒤집어지는 이런 대역동의 에너지가 없다면 어떻게 새 생명이 움트고 새로운 시작을 이룰 수 있겠는가. 은둔과 동요, 물과 피, 죽음과 삶이 맞붙어 일어나는 봄밤의 기운 생동하는 느낌이 강렬하다.
이혜원(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