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팝송 / 최미숙
5월 27일 토요일이 ‘부처님 오신 날’로 월요일까지 연휴다. 금요일 오후 남편과 1박 2일 경주 여행을 떠나느라 ‘팬텀싱어’ 결승 1차전을 보지 못했다. 오후 세 시에 빠지면 안 되는 연수가 있어 끝나고 여섯 시 30분쯤 출발했더니 밤 열 시가 넘어 도착했다. 숨 가쁜 하루였다. 처음에는 2박 3일을 계획했는데 숙소가 여의치 않아 할 수 없이 1박만 하기로 했다. 황금연휴라서인지 주말엔 방이 없고 그나마 금요일 것만 몇 개 남아 예약한 숙소(더 케이 호텔 경주)다. 이번에는 그동안 가보지 못한 대릉원과 교촌 마을 주변을 구경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곧바로 ‘팬텀싱어’유튜브 영상을 봤다. 최종 세 팀(12명)이 1, 2차전 두 곡씩 총 열두 개의 무대를 선보인다. 26일 금요일은 1차 경연으로 프로듀서 점수 600점에 ‘국민 판정단’ 400인 것까지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심사위원이 말하는 어려운 음악 전문 용어는 잘 모르지만 네 명의 남자 출연자가 각기 다른 성부로 내뿜는 소리는 수십 명의 중창단이 부르는 듯 압도적이고 웅장했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도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주에 최종 우승자가 가려지는데 어떤 팀이 될지 궁금하다.
요즘은 미디어가 발달해 방송뿐만 아니라 돈만 내면 원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음악 홍수 시대다. 하지만 내가 20대일 때는 젊은이들이 마땅히 놀 장소가 없었고 노래는 음악다방에나 가야만 들을 수 있었다. 또 그곳이 우리 미팅 장소이기도 했다. 1,000원만 있으면 차나 음료수를 시키고 종이에 신청 곡과 사연을 써 뮤직박스에 있는 디제이(DJ)에게 주면 여러 사람 곡 중 골라서 설명과 함께 엘피(LP)판으로 들려 줬다. 본인 곡이 뽑히기라도 하면 으쓱해했는데 지글지글 끓는 소리가 나든지 말든지 팝송을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유치하지만 어린 마음에 왠지 유식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 당시 디제이는 음악 지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인기가 많았다. 고생하는 엄마에게 친구랑 차 마시러 다방에 간다고 돈 달라는 말하기가 미안해 자주는 못 갔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우리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7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한창 팝송에 미쳐 열심히 배우고 부르기도 했다. 서점에서 팝송 책 한 권을 사서 배우고 싶은 노래를 스무 곡 정도 적어 시내에 있는 음악사에 가지고 가면, 카세트테이프 앞뒤로 녹음해 주는데 2,000원을 줬다. 하루나 이틀 정도가 걸리는데 빨리 듣고 싶어 약속 날이 되면 일찍 찾으러 갔다. 받아온 테이프를 녹음기에 넣고 노래를 익힐 때까지 반복해 듣고 가사를 외웠다. 그렇게 모은 카세트테이프가 꽤나 됐는데 많이 버리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간직한 것도 있다. 맨 처음 배웠던 노래가 미국 여성 컨트리 가수 스키터 데이비스의 〈디 엔드 오브 더 월드〉(The end of the world / 이 세상 끝까지)이다. 잔잔한 목소리가 가슴에 와 닿아 남동생에게 따라 부르라며 가르치기도 했다. 마지막 독백 부분은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노래 형식이라 더 끌렸다.
또 즐겨 들었던 곡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불렀던 〈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The Sound of silence)가 있다.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좋다. 팬텀싱어 1회 우승자 ‘포르테 디 콰트로’가 작년에 ‘불후의 명곡’에서 불러 21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약간 편곡을 해 감동이 덜했다. 나는 원곡이 훨씬 좋다. 아마 익숙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 〈아이 언더스탠드〉(I understand)와 〈탑 오브 더 월드〉(Top of the world),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등을 많이 들었다. 40년이 지났지만 그때 외웠던 가사가 지금도 바로 튀어나온다. 장기기억으로 넘어갔나 보다. 그런데 나이 들어 외운 노래는 아무리 반복해도 자꾸 잊는다. 특히 〈에버그린〉(Ever Green)과 〈아이 오 유〉(I O U)는 전곡을 부를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군데군데만 생각난다. 늙어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래서 이제는 흥얼거리기만 한다.
이번 글을 쓰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팝송을 다시 한번 듣고 따라 불렀다. 녹음기를 돌려 반복해 들으며 노래를 배우고 사랑과 미래를 고민했던 20대의 나를 봤다. 40년 세월이 어느새 훌쩍 흘러 가버려 아쉽다. 그래도 이제는 가사가 외워지지 않는다고 자책하지 않으련다. 노래를 듣고 감동만 받아도 되지 않겠는가?
첫댓글 선생님, 저도 다 아는 팝송이라서 반가웠어요! 맞아요. 막 외우고 그랬는데 쉽게 외워지지 않았지요. 그래요. 듣고 감동 받으면 땡이죠잉?
저도 음악사에서 카세트테이프 녹음해와서 밤 늦도록 들었던 추억이 아련하네요.
팬텀싱어, 저도 좋아합니다.
선생님의 팝송을 듣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저랑 비슷한 시기의 추억담이네요. 그런데 요즘 음악방송에서 듣는 팝송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답니다. 추억을 더듬어며 선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땐 그랬어요. 그 시절 생각나네요.
팬텀싱어 팬이 많군요.
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답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하여 듣던 기억은 납니다.
'발라드 여왕'인 줄 알았더니 '팝의 여왕'이었군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