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367) / 스페인
포블레트 수도원(Poblet Monastery; 1991)
포블레트 수도원은 카탈루냐 자치 지방[Autonomous Community of Catalonia], 타라고나 주[Province of Tarragona], 빔보디(Vimbodi)에 위치하며, 스페인에서 규모가 가장 큰 시토 수도회의 수도원 중 하나이고, 수도원 중앙에는 12세기에 지은 교회가 있다. 요새화된 왕궁과 카탈루냐(Catalonia)와 아라곤(Aragon) 왕들의 묘지인 판테온(pantheon)이 있는 수도원은 엄격하면서도 장엄한 인상을 준다.
포블레트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는 서로 다른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독특한 조화를 이루었다. 시토 수도회의 수도원 중 하나인 포블레트는 규모가 가장 크고 완벽한 거대 군사 구조물에 해당하면서도 왕궁, 주거지, 판테온 역할을 했다. 포블레트 수도원은 독특한 예술적 성취이자 12~14세기의 시토 수도회 양식[Cistercian style]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수도원에는 다미안 포르멘(Damian Forment)이 설화석고로 만든 대형 제단 장식벽(1529)과 같은 여러 시대에 걸친 걸작들이 있다. 포블레트는 독창적인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표현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존하는 가장 크고 완전한 시토 수도회 수도원 중 하나이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배치된 교회의 북쪽에는 분수가 있는 회랑, 회의실, 수도사들의 기숙사, 거실, 부속실, 폐쇄형 회랑, 수도사들을 위한 방이 있는 수도원 건물들이 모여 있다. 지금은 도서관과 난방실, 휴게실, 부엌으로 쓰이고 있다. 서쪽에는 평수도사들이 쓰는 건물이 있고, 북쪽에는 병원이 있다. 수도원은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서쪽에는 경비실과 접견실, 남쪽에는 대수도원장의 저택, 북쪽에는 수도원장의 저택이 있다. 북서쪽에는 가마, 남쪽에는 착유 시설 등의 작업을 위한 건물들이 있다. 공통 주거 공간의 구조는 엄밀하게 구분하고 있다. 심지어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에도 엄밀함이 드러나는데 그 예로 수도사, 대수도원장과 평신도 묘지를 한 군데씩 따로 배정한 것을 들 수 있다. 포블레트는 커다란 규모가 인상적인 요새였다. 1150년에 퐁프루아드(Fontfroide) 수도사들이 지은 시토회 수도원은 몬산(Montsant) 산맥 산기슭, 타라고나(Tarragona)와 레리다(Lerida)의 중간에 있으며, 카스티야(Castile) 전쟁 때는 아라곤의 왕인 피터 4세(Peter IV; 1336~1387)에 의해 요새로 탈바꿈했다. 피터 4세는 680m의 내부 성벽을 건설했는데 이 성벽은 14세기 군사 건축의 탁월한 전형이다. 2m 두께의 벽과 성루는 사각형 또는 다각형 모양의 첨탑으로 보강되었다. 그리고 왕궁의 문[Royal Gate; 1379~1397]은 적에게 떨어뜨릴 수 있도록 성벽 끝에 돌 등으로 설치한 석락(石落; machicolation)에 의해 방위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왕궁이 된 포블레트는 바르셀로나와 아라곤, 카스티야 지역의 주택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백작인 라이몬드 베랑거 4세(Raimond Beranger IV)는 재점령한 땅을 식민화하기 위해 수도원을 지었다. 이 수도원은 훗날 왕조의 상징적인 기념물로 평가되기도 했다. 피터 4세는 1349년 이후 곧바로 포블레트를 요새화하여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왕궁의 일을 도맡아 하던 자우메 카스카르(Jaime Cascalls)와 조르지 드 데우(Jorge de Deu) 등의 장인들에게 대수도원 교회 내부에 왕조를 위한 화려한 묘지를 짓도록 했다. 이 건축은 완전히 새로운 건축 원리를 사용한 것이었다. 우묵하게 들어간 아치 위에 2개의 큰 석관을 놓고, 성가대와 보행자 사이에 통로를 마련했다. 석관은 카탈루냐와 아라곤 왕조의 몇몇 왕들을 위한 묘지이며, 이는 가로누운 석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고귀한 알폰소 2세(Alfonso II), 후안 1세(John I)와 2세는 남쪽 제단을 향해서 우측에, 정복자 제임스 1세(James I)와 피터 4세(Peter IV), 페르디난드 1세(Ferdinand I)는 북쪽 설교대에 있다. 몇몇 왕비들은 자신의 남편과 함께 묻히기도 했다. 왕실 판테온은 교회의 좌우 날개 부분 끝까지 뻗어 있고, 각각 묘지가 있다. 포블레트는 묘지이자 왕들의 안식처였다. 1397년에 마르틴 1세(Martin I)는 건축가인 아르나우 바거스(Arnau Bargues)에게 대수도원장 건물을 궁으로 개축하도록 했다. 이 공사는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러나 동쪽 끝에 있는 방은 왕실을 찾는 방문자들을 위해 쓰도록 바뀌었다. 포블레트에 추가된 건축물을 보면 스페인의 역사를 추적해 볼 수 있다. 아라곤의 왕인 알폰소 4세는 1452년에 나폴리의 승전(1442)을 기념해 성 조지 예배당[Chapel of St. George]을 건축했다. 황금 문[Golden Gate]은 스페인 국왕의 방문에 맞춰 완공되었다가 필립 2세의 방문 때 복원되었다. 1926년에 알폰소 13세가 버려진 수도원을 방문하고 1952년에 이곳에 묻히면서 이 사건들로 인해 포블레트는 스페인의 문화유산 중에서 상징적인 가치를 다시 평가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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