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고1 딸 맘입니다.
중3학년 1학기 중간고사까지는 영어나 수학 중 한 과목씩 학원을 보냈었습니다. 다량을 빨리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동시에 두 과목을 다니는 건 소화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그 한 과목도 만만한 게 아니어서 찬찬히 고민할 겨를 없이 숙제를 해 치우다 보니 별 효과가 없는지라 그 후로는 학원을 아예 끊었습니다. 기말에는 혼자 하겠다고 해서 냅뒀더니 전교 둥수로 치면 15% 쯤인데 영,수가 바닥을 쳐서 여름방학 이후에는 아빠와 제가 각각 한 과목씩 맡아서 점검하고 있습니다. 동기부여를 위해 깊이 있는 공부법에 대한 책을 매일 조금씩 읽어주기도 하구요.
학교에서는, 전부 다 잘하지 못할 바에야 차선으로 다른 과목이나 수행을 희생하고 전략적으로 영수에 올인하는 애들이 많은데 넌 어떻게 그 두 과목을 버렸냐고, 이렇게 되면 고등학교가서 폭망한다고 했더랍니다. 사실 영,수를 버릴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요. 다만, 대입을 떠나서 개인적으로 영,수 둘 다 애정하는 과목이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만 공부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탓에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거였거든요. 학원에 보냈다가 성적도 안 나오고 하는 방식도 맘에 안 들면 엄마나 아빠가 터치하고, 그러다가 아이와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 이전보다는 낫다고 여겨지는 학원 물색해서 보내고… 이 상황이 대략 1.5학기 주기로 반복 ㅠㅠ.
반면 비교과 활동은 강한 편입니다. 초등학교때 자기주장을 잘 못하고 애들한테 치이길래, 운동과 토론을 하게 했는데 그것이 중학교에서 운동부 주장, 교내 토론대회 수상으로 이어졌어요. 아이가 외동인데다 제가 엄마들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 아니어서 외부의 여럿이 하는 활동들을 많이 하게 했던 것이 오케스트라 단장, 동아리 활동으로 연결됬구요.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 때 컴퓨터를 했었는데 이 덕에 파워포인트 작업을 좋아하고 외부 모임에서 발표나 스피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각종 수행은 거의 만점이예요. 또 혼자서는 생각을 깊이 못하고 진로 관련해서 스스로 탐색을 잘 안하길래 중고생 연합 논문 작성 모임에 참여하게 했는데 여기서 부분 참여이긴 하지만 논문을 한 편 써 봤고,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하지 않길래 책 읽고 토의하고 퍼실리테이션하는 모임에 가입하게 했더니 거기서 멘토링으로 봉사점수가 나와서 봉사는 따로 할 필요가 없었어요. 직간접적으로 제가 전혀 개입하지 않았던 취미로는 베이킹이 있는 데 이건 어릴 때 아빠가 쿠키를 만들어 준 덕분에 아이가 관심을 갖게 되어 혼자 유투브 찾아보고 친구나 친척 등 주변 사람 생일에는 손수 만든 케이크, 쿠키, 마카롱 등으로 선물합니다.
아이의 중학교 생활은 정말 열심히 살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영수를 제외하고는 결과도 좋았구요. 며칠 전에는 영어시간에 집에서 공부했던 문법이 나와서 기분 좋았다고, 그리고 수학학원 최상반에 다니는 친구가 어렵다며 보내 준 문제를 그 친구랑 비슷한 시간에 풀었다고 아기처럼 행복한 미소를 지었어요. 성적이 아직은 따라주지 않지만 영수에 대한 흥미나 희망이 없지는 않은거죠. 교과 학원을 하나만 다니거나 아예 안 다니거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기말, 수행준비, 대회준비, 동아리 또는 방과 후 활동, 외부 모임 등으로 늘 바빴고 외적인 요구가 없는 순수한 개인 시간은 별로 없었어요.
고등학교를 앞두고 걱정인 것은 내신, 수능, 수행, 비교과 활동 들이 양적으로 너무 부담스럽다는 점입니다. 중학교에서도 아이가 자거나 노는 시간이 적었는데도 선행을 좀 할라치면 금방 수행이 있고, 또 금방 내신이 있어서 영수 고등학교 공부를 할 시간을 별로 내지 못했어요. 그런데 내신, 수능, 수행, 비교과 활동 이 모든 것이 몇 배나 더 많은 고등학교 생활을 물리적으로 아이가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 많은 것을 정신없이 해 내려 하지만 이전에 즐겁게 했던 일들조차 하나 둘씩 경쟁에서 밀리면서 성적도 흥미도 모두 잃게 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이예요.
한편으로는 주변에서처럼 초등학교 때 영수를 확실히 잡아놓을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을 다 잘하는 아이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무엇을 얼마나 했기에 가능한가 싶기도 하네요. 기말이 11월에 끝나니 사실상 고등학교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3개월뿐인데, 이 기간에 고등학교에 가서 희망을 잃지 않고 중학교와 같은 마음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을만큼 준비가 가능할지 반신반의입니다. 고등학교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좀 더 계산적일 걸 그랬나?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좋은 대학을 바라는 건 모순인가?
지금의 아이 모습을 보면 잘 키웠구나 싶은데, 고등학교를 생각하면 아이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미련한 짓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첫댓글 싸이맘님, 걱정 많으시죠? 큰 아이도 선행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진학을 했어요. 따님처럼 비교과 활동과 독서를 꾸준히 했을 뿐이고요. 이것만 해도 어머님 말씀대로 자발적 활동 때문에 국영수에 집중할 물리적인 시간이 확보되기 어려워요. 중학교 때 인문학 콘서트에 가겠다고 혼자서 부산까지 2박 3일로 여행도 다녀오고, 성적과 상관없는 정세청세 활동을 하겠다고 벽보 붙이러 다니고...지금도 세월호 분향소에 주기적으로 찾아가 글을 쓰고 오기도 합니다. 실제 공부나 실질적 진로와 상관없는 활동들을 여전히 많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국영수에 집중한 공부를 오래 시켰다고 그 아이들이 부모 원하는대로 다 잘하는가...
이도 아닙니다. 사춘기나 이후의 아이들에게 스케줄을 조정하고 부모가 미래를 계획하여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저는 복권당첨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따님처럼 이런 도전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어떤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는지를 빨리 알아채는 연습을 해야 달릴 때 달리고 쉴 때 쉴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눈치가 생기는거죠. 말씀대로 고등 생활이 쉽지 않아요. 좋은 대학을 바라보고 올인라하고 한다면 어찌 보면 교과를 더 챙기라 하는 것이 솔직한 조언이겠지요. 교과가 되어야 비교과도 인정이 되니까요. 그런데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면 십이년을 그렇게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를 희생시킬 수는 없어요. 일단, 아이가 행복하지 않고 무기력한 인형처럼 살아가게 돼요. 자기 선택이 분명했던 아이들은 그것이 공부든, 기술이든, 새로운 길이든 생동감이 있고 주체적입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기에, 어떤 인간상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할지 부모는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아이 모습 보며 잘 키웠구나 싶으셨다면,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잘난척이 아니라 좋은 사람에 대한 고민입니다. 그 고민에 힘을 얹어 드리고 싶네요.
말씀감사합니다. 아이에게 '최고의 공부(켄 베인 지음)'라는 책을 읽어주고 주변 아이들 중에 여기서 말한 사람들하고 비슷한 아이가 누구냐고 했더니 첨엔 없다고 했다가, 많이 비슷한 거 말고 아이들 중에 조금 더 비슷한 아이가 누구냐고 재차 물으니 "나?" 라고 하더군요 ㅋ.
그런데 웃긴 것이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성적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너무나 깊이 파고들어서 막상 무언가를 할 때 자신감은 약해요. 임원 선거를 나가거나 많은 지원자 대상으로 선발을 거쳐 무언가르 하는 외부 과정에 신청하려 할 때 '난 떨어질거야'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삶의 여러가지 기회에 자신감이 없는, 그러니까 좋은 사람이 삶에의 여러 가지 중요한 일들을 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아이러니죠. 그 점은 저부터도 늘 갈등인지라 아마 아이도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요.
아이 친구들 중에 한 아이는 최상위권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하는 데 보내지만 또래 아이보다 생각이 깊고, 또 한 아이는 상위권이면서 취미이자 진로인 분야를 일찌감치 정해서 공부 반 그 활동반 하는 아이가 있어요. 그 둘의 공통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둘 다 자신감이 강하구요 또 하나는 초등학교때 고등학교 1학년 정도까지 선행을 나갔다는 점이예요.
그것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어서는 안 되겠지만, 딸과 두 친구들을 보면서 초기에 다소 무리수를 두고 강제해서라도 제도권에서 요구하는 학습 능력을 갖춰주는 것이 오히려 추후에 자신의 길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어요. ㅠㅠ
싸이맘님 말씀처럼 학교를 보내면서 제도권 교육을 무시하기는 힘들어요. 고등학교를 보내보니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이 등급과 입시로 처리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길에 대해 생각할 여유는 선행때문이 아니라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자라오면서 선택에 대한 자율적 연습을 해 왔던 아이에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강제하여 제도권 교육을 시켰던 수많은 가정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민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전 오히려 이렇게 힘든 고등 생활을 미리부터 선행이란 이름으로 준비시켰더라면 애하나 잡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교과공부를 진로와 상반된 제도 교육으로 두기보다 학교를 이용하여
예복습하고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스스로 하는 시간 계획표를 만들어 연습하는 루틴과정이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시간이 없고 과목이 많아질수록 더더욱요. 소위 학원발이 고등 2-2학기 이상 발휘되는 경우는 드물어요. 모든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고 선행을 하고 있지만 같은 성적이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학원을 다니든 다니지 않든 자기 복습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동기가 분명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학원이 만들어주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죠. 토대가 만들어진 아이들에게 기술도 필요한 것이지 토대없는 기술이 자기 공부로 오래가기는 힘들지 않겠어요? 저는 그 토대가 싸이맘님의 자녀분에게게 충분하다고 보는 관점이고, 그것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는 결국 가정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고 봅니다. 복잡할 때는 이것 저것 생각지 마시고 하나만 따라 가세요. 수업 시간에 잘 듣고 관련 도서 찾아가며 읽어 보고, 그 날 배운 것 그날 복습하는 방법으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요. 그 많은 과목과 활동들을 학원 다니며 할 수 있다는게 저는 더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남이 먹여준 공부는 아이를 위해서나 미래의 적응 능력에도 그리 끝발이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많인 심난할 때지만 아이 자신감의 반은 부모가 물려 주는 것 같아요. 반장이 안되면 기장, 부기장도 있고 체육 부장도 있습니다. 작은 것부터 시도해 보면 되지요.
부모님이 먼저 자신감을 갖고 자녀분에게 용기를 주세요. 지금까지 해 오신대로, 자녀를 잘 키웠다고 생각하신대로요~
샤바누님의 확고한 신념이 존경스러워요. 흔들릴 땐 샤바누님 기를 좀 받아서 딸에게 힘을 줘야겠어요ㅎㅎ 친절한 말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