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자룡(趙子龍)의 등장 -
원소의 밀서를 받고 기주를 협공하기로 약속했던 공손찬은 진군 중에 원소가 이미 기주를 점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아우 공손월(公孫越)을 보내어 원소에게 약속대로 기주 땅을 반분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원소는 공손월을 만나 이렇게 말하였다.
"긴히 상의할 말이 있으니 형님께서 친히 와 주시도록 전해 주시게!"
공손월이 하직하고 나오자 원소는 부하를 시켜 본진으로 돌아가는 그를 도중에 죽여 버렸다.
공손찬은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하여 곧 대군을 이끌고 기주로 진격하였다.
원소도 대군을 거느리고 나와 양군이 반하(磐河)에서 서로 대적하였다.
"이 의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개 같은 놈아! 어쩌면 네놈은 낙양에서부터 그렇게나 헛소리를 하더니만 결국은 내 아우까지도 죽였단 말이냐! 내 너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노라!" 공손찬이 원소를 보고 악다구니를 해댔다.
그러자 원소가 적반하장 격으로 되받아 치는데,
"한복이 기주를 제 손으로 내게 주었는데 뭐가 나쁘다는 말이냐? 네놈이야말로 이웃의 영토를 침범해 온 나쁜 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하고 대꾸하는 것이 아닌가?
"닥쳐라 개 같은 원소 놈아! 전일 내가 낙양에 들어갈 때에는 네놈을 맹주로 삼았지만 이제 알고 보니 너는 개만도 못한 놈이로구나! 하늘이 무서워서라도 어떻게 그따위 소리를 입에 담을 수가 있느냐!"
"저런 저 죽일 놈이.... 여봐라! 뉘 나가서 저놈의 목을 베어 올 자가 없느냐?"
원소는 노기충천하여 펄펄 뛰었다.
그러자 칠 척 장신의 문추(文醜)가 쏜살같이 달려 나오며 공손찬에게 덤벼들었다. 공손찬은 전력을 다해 싸웠으나 문추를 당할 재주가 없었다.
그러자 공손찬 휘하의 장수들이 번갈아 나와 문추와 대적하였으나 그들도 문추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공손찬이 말머리를 돌려 산속으로 급히 도망을 치는데 문추가 다른 장수들을 순식간에 모조리 죽여 버리고 급기야는 공손찬을 추격해 오는 것이었다.
황급히 쫓기던 공손찬이 문추에게 뒷덜미를 잡힐 위기에 봉착했다.
바로 그때 절체절명의 순간에
산속에서 소년 장수 한 사람이 번개같이 나타나더니 공손찬을 쫓던 문추의 앞을 가로막으며,
"싸울 테면 나하고 싸워 보자!" 하며 싸움을 가로맡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공손찬에 있어서는 천우신조였다.
문추와 소년 장수는 곧 싸움이 붙었다. 그런데 그렇게나 지금까지 호풍 당당하던 문추가 소년 장수에게는 쩔쩔매고 당하는 것이 아닌가? 십 합, 이십 합, 삼십 합이 넘자 힘에 부친 문추가 돌연 말머리를 돌려 본진으로 도망을 치는 것이었다.
문추가 꽁무니를 빼는 것을 본 공손찬이 소년 장수에게 달려와 머리를 수그리며 물었다.
"장군은 누구시길래 나를 도와주셨소?"
소년 장수도 머리를 수그리며 대답한다.
"소장은 상산 진정(常山 眞定) 태생으로 이름은 조운(趙雲)이라 하고, 자(字)는 자룡(子龍)이라 합니다. 얼마 전까지 원소의 수하였는데 그에게 충군애민(忠君愛民) 하는 마음이 전혀 없기에 장군을 찾아뵈러 오던 도중에 뜻밖에도 여기서 뵙게 되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공손찬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였다.
"아, 그러시오? 나는 대단한 인물은 못 되지만 장군이 그런 귀한 뜻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힘을 합하여 도탄 속에서 허덕이는 백성들을 함께 구해 보기로 합시다."
공손찬은 조자룡과 함께 본진으로 돌아와 병사들을 재정비하였다. 공손찬에게는 군마 오천 필이 있는데 모두가 흰말이었다. 일찍이 그가 북방 오랑캐들을 물리칠 때에도 백마 기병대를 선두로 하고 싸워서 크게 이겼기 때문에 그 뒤로부터는 그를 백마 장군(白馬 將軍)이라 불렀고 오랑캐들은 백마만 보면 도망치기가 바빴던 것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안 되어 원소와 공손찬은 반하를 사이에 두고 또다시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원소는 심복 안량, 문추, 두 장수를 좌우 양군으로 삼았고,
공손찬은 대장 엄강(嚴綱)을 선봉장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중군(中軍)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조자룡만은 비범한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으나 이전에 원소의 수하에 있었던 관계로 전적으로 믿을 수만은 없어서 후군(後軍)을 삼아 일부 병사를 맡겼다.
대장 엄강은 원소와의 대치 관계를 깨뜨리고 선제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북을 치고 군사들을 시켜 함성을 지르게 하였으나 원소의 진영에서는 무슨 일인지 일체 응전해 오지 않았다.
참다못한 엄강이 군사를 거느리고 강을 건너 원소의 진지로 향하니 그때서야 적의 진지에서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것이었다.
대장 엄강은 강을 도로 건너오려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공손찬은 당황하여 급히 군사를 뒤로 물렸지만 이런 와중에 공손찬의 총대장 기(旗)가 부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적군의 일부는 강을 뒤로 돌아 후방을 엄습해 왔다. 그때 후방을 지키던 장수는 소년 장군 상산 조자룡이었다.
조자룡은 불과 서너 합만에 적장을 거꾸러뜨리고 다시 말을 달려 중군에서 고전하고 있던 공손찬에게 다가와 적진 속으로 달려들어가 좌충우돌로 적을 물리치는데 마치 무인지경을 달리듯이 활개를 활짝 편 독수리같이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원소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장수들과 함께 공손찬의 선봉 엄강을 물리친 것만을 보고,
"공손찬의 군대는 형편이 없네그려." 하고 의기양양하게 반하를 건너왔다.
그러자 조자룡이 오백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원소에게 달려오며,
"저놈 원소를 쳐부숴라!" 하고 고함을 치며 달려오는 품이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자 원소의 휘하 장수들이 원소를 겹겹이 에워싸고 조자룡을 막아 싸운다.
원소는 그때를 이용하여 최전선에서 몸을 한 발 빼내려는데 홀연 산상에서 세 장수가 비호같이 내달아 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비, 관우, 장비로써 공손찬이 원소와 싸워서 불리하다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온 것이었다.
호랑이 같은 맹장 세 사람이 쌍고검과 청룡 언월도, 그리고 장팔 사모를 바람개비처럼 휘둘러대니 원소의 군사들은 추풍에 낙엽이 떨어지듯 풀밭에 풀이 쓰러지듯 세 장수들이 헤집고 지나가는 길에는 자신의 군사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원소도 전세가 급격히 불리해짐을 깨닫고 여러 장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급히 퇴각하였다.
이날의 싸움이 끝나자 공손찬은 유비 삼 형제와 한자리에 앉아서,
"오늘 내가 목숨을 건진 것은 귀공들 삼 형제의 덕분이오. 또 수일 전에 내 목숨을 구해 준 장수가 또 한 사람 있으니 내가 그 사람을 귀공들에게 소개하리다."
공손찬은 곧 조자룡을 불러 유비, 관우, 장비에게 소개하였다.
유비는 조자룡을 보고 그의 비범한 인품에 내심 경탄을 하였고 조자룡 역시 유비의 온화하고도 위엄 있는 덕성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원소는 이날 싸움에 크게 패한 뒤로는 다시는 공손찬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고 공손찬 역시 좋은 장수를 새로 맞아 전력(戰力)을 양성(養成) 하느라고 당분간 원소와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싸움이 시작된지 벌써 한 달 가까이 되어서 사상자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양군의 기력이 모두 쇠진한 상태였다. 말하자면 쌍방이 모두 피폐해져서 일단 휴전상태로 들어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