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에 마리아의 고백을 한번 보세요.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0:27)입니다.
이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인자이신 예수님을 알고 있는 고정관념의 믿음입니다.
분명히 저 분은 주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겁니다. 틀림이 없지요?
그런데 그 앞에 요11:25-26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주와 그리스도이며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를 믿으라'고 했는가요?
아니지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그 처방은 부활과 생명이어야 하는 겁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이와 같은 신앙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임재하시면 ‘주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빛으로, 때로는 부활의 능력으로, 생명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변함없는 한 가지의 고백만 하지 말고 더 나아가서 '주님은 나의 위로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빛, 생명, 능력, 지혜 소망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해 보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의 신앙고백이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해요.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만약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내가 너희를 위로하러 왔다 하시면
아멘 주님은 나의 위로가 되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라는 뜻입니다.
바로 who이신 주님께서 그 이름 안에서 우리에게 무엇(what)이 되어 주십니다.
만일 ‘내가 너희에게 힘이 되려고 왔다’ 하시면 ‘아멘 주님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라는 말입니다. 저주 가운데서 고통을 받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너의 복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맞습니다 주님은 나의 복이십니다’ 외치세요.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한 번 입력된 대로 그대로 외우듯 반복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고백이 아니란 말입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고
자신의 실력을 제시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들은 ‘아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렇게 맥이 빠진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는 주님을 민망하게 해 드릴 뿐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때로는 능력이 되는 것이 맞는가요?
때로는 우리의 사랑이 되는 것이 맞는가요? 때로는 위로가 되는가요?
때로는 기쁨이 되는가요? 그렇다면 바로 지금 내게 필요한
그 무엇을 고백하고 주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믿습니다’ 이러지 말고 내 영혼이 허기질 때는
“주님은 나의 영혼의 양식이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설명해도 못 알아들으면 저도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나는 부활이야 생명이야 하시면 그대로 아멘 복창해야 하는데
마르다와 마리아는 고정관념으로 입력된 신앙이 변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자칫하면 요즘 신자들의 고백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답답하면 기껏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이렇게 하고 주여 나를 도우소서 붙잡아 주소서 하고 맙니다.
그러나 마음이 답답하면 ‘주님, 주님은 어두움에 밝은 빛이 되십니다’
하고 나와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답답할 때는 빛만 비춰주면 됩니다.
어둡고 답답한데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모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주님 제 마음이 어둡고 답답하니 제게 빛을 비춰주옵소서’
이런 고백을 할 줄 알아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의 신앙고백이 획일적입니다.
만약 내가 지금 죄를 지어 죄 사함을 받아야 되는데 ‘거룩하신 하나님’하면 어떡하는가?
아니 죄를 짓고 있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르면 난 망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의 거룩한 빛만 보이면 죄인들은 혼비백산하고 혼절하고 죽고 맙니다.
내가 죄를 지어 답답할 때는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신 분이십니다 자비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나의 죄가 사함을 받은 줄로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죠.
그냥 획일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부르고 나오면
현재 마음의 소원과 주님의 마음이 서로 안 맞으니 기도의 송수신이 안 되는 겁니다.
기도하고 구하는 코드가 맞지 않아 주님의 은혜와 복이 내게 수신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현재 주님이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속성과 마르다와 마리아의 믿음과의
사이엔 서로의 관점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과 생명으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길 원하지만 이들은 평소의 신앙고백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토록 무지한 자들을 기어이 설득시켜 믿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첫댓글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 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