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게*
김성신
당신의 침착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혼잣말이 비릿한 냄새로 사방에 번진다
잠깐 삶을 멈췄는데
같이 놀던 아이들이 사라지고
채혈실 LED 등이 식은땀을 흘렸다
눈을 배경으로 촉감이 촉감을 곧추세운다
뒷등 딱딱해진 침묵이 몸을 비튼다
여기는 나의 나락
병 속으로 쌓여가는 파란 질감의 바벨탑
한 걸음 물러서면 신이 지지해줄까요
흔들리는 공간에선 빛도 언어
검은 눈 흰 머리칼, 장신의 저 여자
찌르는 것에 자신 있는 길은 끝이 시퍼렇다
밤이 깊어서야 채혈은 모두 끝났다
혼자라고 느낄 때
밤은 아늑하고 깊은 터널
잠깐, 잠이든 건 나였는데 깨어난 건 당신이다
껍질에 쌓인 채 옆으로 가는 직진이 우아해 보일 때가 있다
가볍습니다
용서하는 게 낫잖니, 죽는 것 보다는
*투구게; 파란 피가 백신의 원료로 쓰인다.
ㅡ계간 《시와 징후》 2024년 여름호
김성신 / 전남 장흥 출생.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등단. 광주대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문학박사.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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