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平씨는 두 번째 부인 吳順貞씨와 합의이혼을 한 지 4년 뒤인 1983년 현재 부인인 閔美迎(민미영·47)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健平씨의 세 번째 부인인 閔美迎씨는 현재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화마을에서 健平씨와 딸 希正(희정)씨, 세 명이서 살고 있다. 閔씨는 경남 창원군(現 창원시) 창원면 서상리에서 태어났다.
閔씨는 健平씨와 혼인신고를 한 이후 혼자서 주소지를 네 차례 옮긴 것으로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돼 있다. 경남 김해군(現 金海市) 진영읍 본산리 38번지에서 1989년 1월31일 경남 창원시 서상동 359-1번지로 옮긴 뒤, 다음해인 1990년 4월17일 다시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8번지로 이전했다.
閔씨는 다시 2년 뒤인 1992년 4월5일 경남 거제군(現 거제시) 일운면 망치리 49-1번지로 옮겼고, 10개월 뒤인 1993년 2월27일 다시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38번지로 돌아왔다. 閔美迎씨가 1989년 1월31일 주소지를 경남 창원시 서상동 359-1번지로 이전을 할 때는 健平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希正)도 함께 이전을 했고, 이 때 딸은 8세였다.
기자는 2003년 6월5일 오전 盧健平씨와 閔美迎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봉화마을 집을 찾아 갔으나 健平씨 부부는 집에 없었고, 딸 혼자서 집을 지키고 있었다. 健平씨의 딸 希正씨는 기자에게 『아버지는 출타하셨고, 어머니는 옆집에 가셨다』고 했다. 希正씨는 부산의 신라대학교 성악과에 다니다 3학년 때인 2003년 학교를 그만 두었다.
최근 불법적인 방법으로 653억원을 모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민경찬씨는 閔美迎씨의 동생이다.
첫댓글 그런놈이니까 재판관에게전화걸어 뭐라하지.지가뭐가된줄알고...
왜그리 주소이전했데?? 것두 밝혀야하는거아녀?
83년 노건평과 결혼한 민미영에게는 노희정이라는 딸이 있다. 2003년 대학3학년이니 우리나이로 22이다. 이미 결혼하기전에 태어난 것이다. 여기에 혹자가 의혹을 제기하니 둘의 딸이라는 노희정이 노무현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
당시 노무현의 사무실에 근무하던 여성이 민미영이라는 여자이다. 당시 20중반이던 여성이 임신 후 갑자기 40초의 홀애비에게 갑작스럽게 시집을 가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지체장애자였던 민미영은 건평과의 결혼 후 희정을 노건평의 호적에 올리고 2년뒤 출생신고를 하게된다. 그 후 민미영의 남동생 민상철은 매형건평에게서 3000평의 땅을 명의이전받게된다.
혹자가 의혹을 제기하니 변호사사무실에서 민미영을 성폭행한(혹은 합의하에) 노무현은 민미영이 애를 가지게되자 자기 경력에 치명상을 입을 우려를 가지게되고 그의 재산 후견인이었던 형 건평은 동생의 출세길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민미영을 설득하게 된다.
이 후 민미영은 노무현의 간청과 노건평의 회유로 애기를 낳은 2년 후에 건평과 결혼신고를 하게된다. 그 후 입막음으로 비리세무공원이던 노건평은 그의 처남 민상철앞으로 아무런 조건없이 3,000평의 땅을 이전해준다.
20대 초반의 결혼적령기의 여자가 (비록 지체장애자라지만) 두번이나 결혼을 한 중고 40대 초반의 쭈굴탱이에게 팔려간 배경은 무엇일까? 노건평은 처남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3000평의 땅을 이전해줄만큼 다급한 이유가 있었을까?
앞의 이야긴 어느정도 개연성이 있지만 제기되고 있는 의문들이다.
그의 부산상고 동창중의 한 이는 노희정은 노무현의 자식임이 틀림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DNA검사를 해보면 자기말을 확신할 것이라 한다. 촐싹거리고 방정맞은 놈현의 언행을 보면 당시 주변지인과 친구들에게 떠벌렸을것임을 쉽게 짐작해볼 수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긴다. 행여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놈현 그는 지체장애자 성폭행에다, 결혼빙자간음에다 , 자기자식을 팔아먹은 희대의 사기꾼이며 건평 놈현은 형제끼리 인신매매를 한 흉악범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 민미영은 노건평과 동거중인지가 궁금하다.
복잡한 집안이라 머리가 아픕니다.